세상 사는 이야기
시골에 가면 동네 이장님이 하는 이런 유의 방송을 자주 듣는다. 물론 나이가 좀 든 이장님이다.
'아, 아. 동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올해 필요한 비료의 공동 구매를 위한 설명회가 있으니 저녁을 자시고 마을 회관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집집마다 저녁 식사를 하는 시간이 다를진대, 그냥 저녁을 자시고 모이라고 하니 몇 시에 모이면 되는지 아리송하다.
하지만 저녁을 자시고 모이라는 말에 누구 하나 그게 몇 시냐고 묻는 사람이 없이 모이는 것 같다. 다행이긴 하지만 이것이 정확한 표현일까. 모르긴 해도 30분~한 시간 정도의 시차는 있지 않을까 싶다. 일찍 모인 사람은 잡담하며 놀고, 그러다 보면 다 모일 터. 그리 급한일도 없는 시골 작은 마을이라면 가능한 일 이리라.
아무리 작은 시골이래도 만약 내가 이장이라면 '저녁을 자시고 7시 반까지 모이라'며 시간을 분명 얘기했을 것이다. 회관에서 저녁 제공은 안 한다는 것과 시간을 분명히 하는 멘트다. 내 스타일은 이렇지만 반드시 이렇게 시간을 얘기해야만 되느냐고 반문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는 않다. 시간을 얘기해도 동네는 돌아가고, 그냥 저녁을 자시고 모이라고 해도 때가 되면 동네 사람들은 모이고 농사철이 되면 비료를 뿌리며 동네는 돌아간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이해되지 않는 안내가 있다. 신호등. 신호등 곁에 쓰여 있는 말이 아리송하다. '출퇴근 시간 정상작동'. 출퇴근 시간이 아닌 경우에는 점멸등으로 작동하다가 출퇴근 시에는 적색, 녹색으로 작동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출퇴근 시간은 도대체 몇 시일까. 주야간 2교대 하는 사람의 출퇴근 시간과 주야간 3교대 하는 사람의 출퇴근 시간이 같을 수가 없다. 교대가 아니고 주간 근무라고 한발 양보를 해도 공무원은 9시 출근이지만 일반 기업체는 8시가 대부분이다. 시간제 알바를 하는 사람의 출퇴근은 몇 시일까. 1인 개인 사업자는 자신이 나가는 시간이 그냥 출근시간이다. 시골 이장님도 아닌데 자신을 기준으로 '출퇴근 시간 정상 작동'은 무리수다. 그냥 '08시~ 10시, 17시~19시 정상 작동'이러면 길이가 길어서 안될까?
신호등이야 점멸을 하던 정상 작동하던 신호에 맞추어 가면 되지만 진짜 아리송한 것이 있다. 식당가에 가면 보이는 안내표시. '점심시간 외 주차단속'. 이것은 잘 못하면 범칙금 내는 일이다. 점심시간은 몇 시일까. 대한민국에서 점심시간은 몇 시부터 몇 시까지라고 법에 정해 두었나? 지 점심시간이라고 내 점심시간인가? '12시~14시 외 주차단속' 이렇게 안내하면 객관성 있고 좋지 않나? 이렇게 명확히 해두지 않고 11시에 점심 먹다가 주차단속되었다면, 이 시간이 안내된 점심시간이네 아니네 하면서 다투다 법원에서 판결받아야 할지 모른다.
사는 모습은 제각각이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모이고 그 목적을 달성해 간다. 나는 이런 스타일의 방식을 좋아하는데 상대는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결혼을 하여 같이 마음 모아 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기적에 가깝다. 정답은 아니지만 어릴 때 보고 배운 것이 자신의 기준이 되어버리기에 서로 화합하며 맞추어 간다는 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리라.
사람은 성격과 환경, 습관에 따라 기준이 정해지지만 곧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수평관계라면 피차 양보와 타협을 통해서. 수직관계라면 지시와 복종을 통해서... 나도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이것이 세상사는 방법이니까. 중요한 건 이러나저러나 세상은 돌아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