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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학생들이 탄 수학여행 기차를 보며

by 최민지

잠깐 오사카에 가는 길이었다. 역 플랫폼에서 내가 탈 열차를 찾는데, 4번 플랫폼 전광판에 목적지 지명 대신 [CHARTER / 貸切]라는 글씨가 반짝였다. 앞에는 교복 입은 남학생 무리가 열차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껏 높아진 목소리와 들뜬 표정. 수학여행을 가는 듯했다.

철길 한 줄 없는 통영에서 자라며 친구들과 기차여행을 한 기억은 없는 나는 4번 플랫폼을 신기한 눈으로 보았다. '아니, 기차도 대절이 되는 거였어? 하긴, 비행기도 전세기라는 게 있으니 열차 대절도 있을 수 있겠다. 어디로 갈까? 어디서 뭘 하든, 두고두고 얼마나 기억에 남을까.'

문을 닫고 출발하는 기차 뒤꽁무니를 보며 마음속으로 손을 흔들었다. 진짜로 손을 흔들었다간 나중에 저기 어디 숏츠나 릴스 같은 데서 [기차 보고 손 흔드는 웬 아줌마]라는 제목으로 내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몰라서 최대한 마음으로만 흔들었다.


짧은 오사카 나들이에서 돌아와 남편에게 그날 본 모든 것들을 신나게 전했다.


"오늘 역에서 대절 기차 봤다? 학교에서 빌린 것 같더라고. 근데 기차 한 대 빌리면 얼마나 나올까?"


"자리만 다 채울 수 있으면 일반 운임 정도면 될걸? 대절을 안 하면 다른 승객 탈 자리가 없어지니까 그렇게 했나 봐. 다 같이 기분 좋게 가는 여행이라서 좋네. 내 친구 나카지마 알지? 나카지마 아이들이 다니는 고등학교는 수학여행비가 70만 엔이래. 올해는 하와이라는데."


"70만 엔이면 한국 돈으로는 대충 700만 원이라는 거 아냐?"


"그렇지. 요즘은 교육에 대한 최소 기준이 높아지면서 무리해서라도 사립을 보내려는 경향이 있잖아. 학비는 어떻게든 마련했지만 여행경비까지는 버거운 집이 많은지 수학여행 참가자가 50%밖에 안 됐대."


"수학여행은 어디 먼 곳을 호화롭게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가까운 데라도 다 같이 가는 게 중요한 거 아냐?"


"당연히 그런 학교가 더 많아. 단지, 빚을 내어서라도 남다른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시선으로 보면 그런 학교가 눈에 차지 않을 뿐이지. 지금 시대는 학교도 사람과 사람을 잇고 연결하기보다는 사람과 사람을 나누고 구분 짓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아. 학교만 그런 게 아니라 주거도 이동 수단도 다 그렇긴 하지만."


언제부터일까? 사람들이 추구하는 '남다름'의 기준이 예전보다 더 높이 올라간 것을 느낀다. 남다른 교육, 남다른 주거, 남다른 소유의 기준 같은 것들. 동시에, 다른 이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의 가치는 시소 반대편의 고도만큼이나 낮아진 것처럼 보인다. 공립 학교, 공공 주택, 대중교통이 추구해야 할 대상이 아닌 벗어나야 할 대상처럼 여겨지기도 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친구들 절반을 교실에 남기고 몇몇만 떠나는 하와이보다 로컬 열차를 타고 모두 함께 가는 수학여행 쪽에 마음이 갔다. 그리고 어쩌면, 남편과 내가 기대하는 아이 삶은 하와이행 비행기보다는 일반 운임이면 충분한 대중교통 쪽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나는 아이에게 무언가 남다른 것을 제공해서 특출난 존재로 만들어야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시뽀가 자신과 타인을 소속 집단으로 구분해 우열을 나누거나, 집단 속에서의 지위를 부여잡으려 끊임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보다는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롭고 단단한 개인이 되기를 원한다.

또한 한 사람의 시민이 되기를 원한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하며 산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기 몫을 다하고, 다른 이들과 손을 맞잡고 사회적 안전망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 가장 보통의 시민이 되었으면 한다.

'돈만 많으면 살기 좋은 사회'가 아닌, '경제 상황에 관계없이 모두가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사회'가 더 나은 곳이라 생각하기에 아이에게도 후자로 함께 살아가는 행복을 말하고 싶다.


그렇기에 최시뽀 어린이의 하루, 한 달, 일 년은 '다른 아이들과 차별화된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특별한 교육'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특별한 계층만이 막대한 비용을 내고 이용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아닌, 시민이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아이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공공의 혜택을 차등 없이 누린다. 학교는 물론이고, 아동관, 도서관, 공원, 과학관, 체육관, 박물관과 미술관 같은, 아이 이용요금이 무료이면서도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공공의 시설 속에서 자라나는 것이다.


그런 시설을 하나씩 확대해 관찰해 보자면 이런 모습이다.


아동관은 키즈카페의 역할을 대신한다. 마당과 공터만 있으면 무궁무진한 놀이가 피어올랐던 과거와 달리 요즘의 놀이에는 울타리가 있으며 입장료가 필요하다. 특정 아파트 주민만 이용할 수 있는 놀이터와, 시간당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고 들어가서 상품화된 놀잇감을 갖고 놀게 되어있는 키즈카페처럼.

하지만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아동관은 입장을 위해 아이들을 심사하지 않는다. 어디에 사는지, 부모가 무슨 일을 하고 수입은 얼마인지에 관계없이 모든 아동이 모이고 섞인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공공시설은 과학관. 과학계 노벨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한 나고야시는 과학관에 공을 많이 들인 티가 역력한데, 매주 다른 내용으로 열리는 체험교실 역시 모든 어린이들을 조건 없이 품어안는다.

일단 데려가기만 하면 물 만난 물고기처럼 과학관 구석구석을 쏘다니는 아이는 전시 하나하나를 유심히 본다.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각 구역을 담당하는 활동가에게 질문을 던지고, 활동가들은 아이 연령에 맞게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극 문과인 엄마로서는 이렇게 고마울 데가 없다. 놀라운 건 과학관에 다니는 동안 외국인인 나 역시 시민으로서의 기본 소양과 상식을 쌓는 의외의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무려 원소 기호를 일본어로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시민 전체를 위한 공간은 어른을 위한 평생교육의 역할도 하고 있음을 몸소 느꼈다.


500엔 동전 하나로 아이들을 객석에 초대하는 공연시설은 어떤가.

아이는 무대와 객석을 따로 분리하지 않고 연기자와 어린이 관객이 한데 뒤섞이게 하는 마임극에 열광했고, 악기들이 나와서 자기소개를 하다가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대결' 같은 제목으로 누가누가 높은 음을 내는지 실험하는 공연에서는 침을 꼴깍 삼키며 몰입했다. 무대가 지닌 매력을 전해주면서도 공연문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게 하는 내용이었다.


개인이 소유하거나 접하기 어려운 악기를 공공시설을 통해 누리기도 한다. 아이치현이 20년 전에 20억 엔을 들여서 샀다는 파이프오르간이 대표적인데, 6883개의 파이프가 달려 있다는 이 오르간을 어린이도 향유할 수 있게끔 아이 전용 오르간 공연도 주기적으로 열린다. 교과서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악기는 '시민이 함께 공유하는 자산'이니까.

이런 환경 때문일까. 지역 공연계에는 유명 콩쿠르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스타 연주자도 등장하지만 친근한 동네 연주자가 나오는 무대도 많다. 연주자의 유명세와 관계없이 그저 공연 자체를 일상적으로 즐기는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기 시작할 무렵부터 우리는 이런 곳들을 부지런히도 찾아다녔다. 공공시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그 어떤 교사 못지않게 프로다운 태도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아이는 그곳에서 보고 들은 것들에 자신만의 관심사를 더해 나갔다.

내 입장에서도 마음이 편했다. 누군가를 쫓는 것도,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도 아닌 시간이었으니까. 아이라는 존재를 맞이하고 함께 살아가며 가장 두려웠던 것은 경쟁이 극에 달한 사회에서 내 아이라는 개인을 위한답시고 제공한 모든 것들이 역으로 인위적인 격차를 만들어내거나, 그런 분위기를 공고히 하는 데에 일조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공의 교육기관과 공공의 시설은 특별한 일부만을 위하는 곳이 아닌 모두를 위한 곳이었다. 미래세대의 경쟁을 심화시키지도 않고, 아이를 방치하지도 않는 적정선을 우리는 이곳에서 찾았다.

아이는 이런 곳들을 찾아다니며 '아 나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도시의 이런 이런 곳들을 이용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경험한다. 그 경험이 모이고 쌓이면,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이 성장과정에서 누린 것들을 사회에 돌려줄 수 있는 개인이자 시민이 되고자 하지 않을까.


남편이 생각하는 '좋은 학교'도 결국은 공공성이 있는 학교라고 했다.

"나고야는 도쿄와 달라서 '사립은 좋고 공립은 나쁘다'는 공식이 안 통하는 도시거든. 덕분에 이 동네 소학교에는 기업가, 샐러리맨, 자영업자, 여러 국적의 외국인, 나고야 토박이, 전국 각지에서 온 전근족,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그냥 다 섞여 있어.

특정 욕망을 가진 특정 집단이 선호하는 학교에서는 아이도 그런 어른들의 세계에 자기 삶을 맞추게 돼. 그렇지만 소학생 때는 그저 여러 녀석들을 만나서 자연스럽게 어울릴 필요가 있어. 말 그대로 작은 사회를 경험하는 거지."

남편이 생각하는 초등학교는 소셜믹스의 현장이자 다양한 구성원을 접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곳이라고 한다. 나는? 생각 중. 학교가 뭐 하는덴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남편 의견에는 공감이 간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시뽀가 수학여행을 가려면 아직 한참 멀었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대중교통을 타고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으로 떠나 모두와 같은 것을 보아도 좋지 않을까. 그냥 그렇게 살아도 좋지 않을까.

부러 남달라지려 하지 않아도 어차피 우리는 제각기 남다른 존재다. 그러니 우리 모두를 한데 담는 공공의 공간에서 성장해 그 공간을 지탱하는 사람이 될 것. 내가 아이에게 기대하는 것은, 자기 생을 기쁘게 살아가는 동시에 사람들과 함께 '시민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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