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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entcOllectOr Nov 02. 2015

#4 담아주는 사람, 담기는 사람

감성 심리치유 에세이

a와 b는 15년 된 친구 사이입니다. 어느 주말 시내에서 만나기로 한 두 사람. a는 시내에 나가니 나름 차려입고 b랑 뭐하고 놀까 이것저것 생각도 해보며 나갑니다. 그런데 b의 표정이 심상치 않네요.

세상 시름을 다 진 표정으로 카페에 앉아 있습니다. 얘기를 듣고 보니 직장에서 상사와 트러블이 있었던 b.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만큼의 심각한 상황입니다. 속상한 마음에 하소연이 시작됩니다. 한참을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한숨을 연이어 쉬며 자기는 사실 지금 만사가 다 싫답니다.


" 힘들었겠다. 그 팀장 정말 미친 거 아냐? "

라고 시작해 오랫동안의 맞장구와 위로가 시작되어

결국은 맘이 풀리던 패턴이 원래 그들의 방식입니다.


그런데 a가 여느 때와는 다릅니다.

” 속상 했겠다..... 그 팀장이 좀 비 상식적이네....

그런데 b야~ 이런 속상한 일이 있어도 뭔가 다른 걸로 기분 전환하려고 노력해보면 안될까?

넌 항상 좀 극단적이야~ 좀 전에 바꿔놓은 카톡 상태 메시지 보고 깜짝 놀랐어. 이걸 본 다른 사람들은 네가 사기를 당했거나 뭔가 다른 큰 사건이 생겼다고 오해할 것 같아. 힘들어도 좀 웃으면 오히려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잖아!"

그날 집으로 돌아간 b는 a의 전화를 받지 않았답니다.


여기서 문제는 무엇일까요?

b가 원한 건 아마도 공감과 위로였을 테죠. 본인에겐 직장 내에서의 큰 문제니 까요. 그런데 자기편이라 생각했던 a에게 들은 말은 공감이 아니라 본인의 감정도 컨트롤하지 못하냐는 책망으로 들렸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친구에게 받고 싶었던 위로가 아니어서 서운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from 영글문


그럼 a는 그동안과는 달리 왜 그날 이런 말을 했을까요? 그날의 만남 이후로 마음 불편해하는 a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한참을 생각하다 이렇게 말하더군요.

 : 항상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는 자신의 역할에 지쳤었던 것 같았다고요.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갑, 을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상하, 수직 , 이익 , 권력이 작용하는 관계죠.

심리학 용어에는 담아주는 사람(container), 담기는  사람(contained)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 관계에 적용되지만 갑을과는 좀 다른 의미입니다.

우리가 힘들 때 누군가의 위로를 받으면 큰 힘이 됩니다. 아마도 대부분은 들어주기, 위로하기, 고개 끄덕여주기 일 테고 고작 그런 것들이 큰 힘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 들어주는 사람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경우는 별로 없죠. 그런데 단순히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는 걸로 어떻게 내 마음에 위로가 될까요?

그건 들어주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의 고통을 담아주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들어주는 사람은 담아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죠.


담아주는 사람의 가장 좋은 예로는 엄마와 상담사가 있습니다. 아기가 배가 고프거니 불안해서 울때 엄마는 아기를 보살피며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담아주고 상담사도 마찬가지로 내담자의 힘든 이야기를 담아줍니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 상담사와 내담자의 관계가 아닌 현실 속에서 담아주는 사람과 담기는 사람의 관계는 어떨까요?

친한 친구 한 명을 생각해보세요.

보통 힘들 때 서로서로 힘이 되어주기 마련이지만 엄격히 말해 정확히 50:50의 균형을 지키는 관계는 없습니다. 반드시 관계 내에서 한 명은 좀 더 어느 한 역할을 많이 하기 마련입니다.

담기는 사람은 대체로 그 관계 내에서 만족하는 경향이 많지만 담아주는 쪽은 부담과 불안이 쌓이기 쉽습니다. 우리는 상담사도 엄마도 아니라 그냥 친구사이이거나 애인 사이이기 때문이죠.

항상 한쪽이 담아주는 사람의 역할을 했다면 더 많이 포용하고 위로하고 공감하는 쪽은 지치고 힘들었던 거죠.

아마도 a는 b와의 관계에서 주로 담아주는 쪽이었고 자신도 모르게 지쳐왔던 모양입니다.




이러한 관계가 갑을과는 다른 점은 권력이나 지위의 이동 없이도 교체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배려라는 관점에서요.

 주로 담기던 사람도 안정을 얻게 되면 담아주는 사람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의 그릇을 넓혀가는 것이고 관계를 더 단단히 만드는 것이겠죠.

위로에도 쌍방향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주위를 한번 살펴보세요.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나는 주로 어떤 역할인가?

주로 담기기만 했다면 당신이 상대에게서 받았던 위로와 공감의 힘으로 이젠 여유로워진 마음에 이번엔 상대를 담아보길......


이해받고 싶고 공감받고 싶고

나의 이 속상함을 누군가가 알아주었으면 ,

내 편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마음...

담기고 싶은 마음은

지금은 행복해 보이게 웃고 있는 상대편에게도 마찬가지로 '절실한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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