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 머물고 있다 문득 예전에 잠시 지냈던 고시원 생각이 났다. 나는 여행 경비를 아껴보고자 숙소는 저렴한 곳을 선택하는 편인데, 이번에 묵은 한인 민박은 1박 당 3만원 가량의 가격에 아침까지 해결할 수 있어 가격으로는 너무 좋은 옵션이었다. 다만 중심가에서는 약 20분 가량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산동네 비탈길도 아니고 지하철에서 5분 거리이니 그럭저럭 지낼 만 했다.
숙소에서 그런 생각이 들게 된 계기는 이른 저녁 숙소에서 쉬게 될 때였다. 복도 사이 난 작은 방에는 외부로 난 창이 없었고 3인 벙커 침대 옆에는 풀다 만 짐들이 어수선하게 늘어서 있었다. 나는 예전과 달리 시차 적응이 훨씬 어려움을 겪어 저녁만 되면 잠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나마 숙소가 붐비지 않은 것이 숙소 주인에게는 불행이었겠지만 나 같은 여행객에게는 다행이긴 했다. 그래도 새벽마다 뒤척이는 게 옆 침대의 여행객이 떠난 후 줄어들었으니까.
여행 중 파리에는 봄비가 종종 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다니지 않았지만 나는 악착같이 우산을 들고 다니며 조금이라도 하늘에 기미가 보이면 준비한 우산을 펼치곤 했다. 한쪽으로 부는 바람도 막으며, 별 뜻 없이 이곳저곳을 쏘다니곤 했다. 하루는 근처에 있다는 숲으로 떠났고, 하루는 사람이 가득한 샹젤리제 거리로 향했다.
이번 파리 여행은 조금 더 떠도는 여행에 충실할 생각이다. 너무너무 아름다운 도시이고 가득한 그림들과 건축물들은 볼 때마다 찬사를 보내게 되지만 이번엔 퇴사 기념 여행이니까, 조금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쉬고 싶을 때 쉬고 느긋한 하루들로 보내도 되지 않을까. 언제나 나는 목적지를 긋고 목적지로 가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내일부터는 다시 계획에 따라 움직일 테지만, 오늘까지는 생각나는 대로 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