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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요 Apr 01. 2024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
가장 눈에 띄지 않게 다니기

나 홀로 행궁동 투어(2)

1편: https://brunch.co.kr/@daybreak2017/4


원래는 소품샵을 여러 곳 돌아다닐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품샵이 그러하듯 6시 이후로 영업을 하는 가게를 찾기 어려웠다. 서점 투어를 마치고 나왔을 때는 5시 반 정도였기 때문에 한두 곳만 빠르게 보고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그렇게 들른 곳은 탭(Tab)과 달빛행궁 2호점이었다. 나의 목적은 가방에 걸고 다닐 키링 찾기였으므로 패션잡화점인 탭은 산책하듯 구경만 하고 나왔다. 이때까진 몰랐다. 내가 책보다 키링을 더 많이 사게 될 줄은……. 사실 달빛행궁은 1호점이 유명해서 2호점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2호점은 탭 바로 건너편에 있었는데 굉장히 작은 크기의 아기자기한 가게였다. 그래서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들어갔다. 그리고 가게에서 나왔을 때 내 품에는 2만원어치 소품들이 가득 담긴 종이 봉투가 들려 있었다. 강아지 키링, 고양이 헤어핀, 수원화성 엽서, 그리고 '괜찮아 감자'라는 뜨개 인형을 구매했는데, 이중에서 괜찮아 감자 인형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하찮게 생긴 귀여운 것들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비주얼이었다. 용기를 북돋아주는 감자씨는 현재 내 책상 위에 고이 모셔두었다.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역시 적당한 소비가 필요함을 느꼈다. 별것도 아닌 감자 인형에 어째서 이런 만족감을 느끼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구경하다가 마음에 들면 한두 가지 사서 소장하는 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냥 좋으면 좋은 거지! 오롯이 나를 위해 쓴 시간은 나의 일부가 되어 간간이 기억날 것이다.


이제 밥을 먹을 시간이었다. 사전에 찾아둔 카이센동집은 소품샵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혼밥을 처음 해보는 건 아니었지만 아직 편하게 여길 정도는 아니었기에 걸어가면서 자잘한 걱정들을 했다. 사람이 많을까? 나밖에 없으면 어떡하지? 1인석 자리 남아있겠지? 근데 뭐 먹지? 그와중에 맛있는 음식에는 진심이라 초밥과 카이센동 중에서 뭘 먹을지 고민하고 있으니 식당에 도착했다. 날씨가 좋지 않은 탓인지 내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밥을 먹고 나가는 순간까지 손님이 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혼자 있으면 눈치 안 보고 좋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겠지만, 나는 혼자 있을 때 부담감을 심하게 느끼는 편이고, 차라리 한두 팀이라도 있어야 부담감을 덜 느꼈다. 달그락거리며 식사를 하는 사람이 오직 나 하나뿐이라는 생각이 한 번 들기 시작하면 직원들의 시선이 의식되고, 내 자세는 점점 경직되거나 먹는 속도가 빨라진다. 이번에도 다르진 않았다. 다만 처음 혼밥을 했을 때보다는 익숙해져서, 비 오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음식을 씹을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이센동이 맛있었기 때문에 그저 '오…맛있다.'라고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그릇을 다 비운 후 멍때리고 있었다.


나는 그 시간을 좋아한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생각을 하는 고요한 시간.

걸어다니면서도 늘 자잘한 잡념들이 끊이지 않아서, 생각하기를 그만하고 싶다고 느낄 때 나는 혼자만의 시시한 모험을 떠난다. 그게 내가 남 시선을 의식하고 걱정하면서도 여러 번 혼밥을 시도해온 이유다. 혼자 책 구경을 하고 소품샵 투어를 하고 밥을 먹는 일련의 동작들이 누군가에겐 그저 일상의 한 장면에 불과하더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겐 일상을 벗어난 일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배우는 게 느린 나는 여전히 그 가르침을 습득하는 중이지만 시간을 들여 천천히 배울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하나씩 성과를 낼 때마다 스스로를 칭찬해준다면 소소한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이볼까지 야무지게 마신 후 나는 수원화성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갔다. 프랜차이즈 카페를 제외한 개인 카페, 흔히 말하는 예쁜 카페에 혼자 작업하러 간 건 처음이라 습관 같은 긴장, 친구 같은 떨림과 동행하였다. 라떼가 맛있고 블랙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카페였다. 그리고 낮에 오면 장안문뷰를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았다. 사실 그걸 기대하고 찾아두었던 카페였지만 동선상 카페를 먼저 방문하기는 어려웠고, 더군다나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빗발 때문에 맑은 풍경을 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원래는 저녁을 먹은 후 친구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식후 커피는 또 참을 수 없었다. 비록 저녁이었지만, 뭐 어때. 꾸준히 써야 하는 글도 있고, 마감일이 있는 글도 있고 해서 여행길에 부득불 들고 온 노트북을 드디어 카페에서 꺼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글을 쓴 건 겨우 한 시간 정도였다. 원래 먼 곳까지 나오면 괜히 설레는 마음에 잘 해오던 일도 갑자기 하기 싫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나.

사실 그건 핑계였고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마침 친구도 일찍 집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해서 적당히 앉아 있다가 한 시간 채우자마자 빠르게 빠져나갔다.


……이제와 고백하는 거지만, 비 때문에 예쁜 풍경을 볼 수 없을 거라고 말했어도 사실은 창가 자리에 앉고 싶었다. 하늘이 쾌청하지 않더라도 창에 미끄러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재미도 있기에. 하지만 3층이 루프탑인 줄 알고 망설이다가 올라가보지 않은 나는 주변을 둘러보는 게 괜스레 부끄러워 눈에 보이는 아무 자리, 카운터 맞은편에 털썩 앉았고 한 시간 내내 불편함에 시달리다가 친구 연락을 받고 나간 것이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혹은 돌렸을 때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게 나는 왜 그렇게도 두려운지 모르겠다. 두려운 건 맞을까? 우물쭈물하고 어버버거리는 내 모습을 누군가 목격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닐까?

보지 않은 것을 보지 않았다고 무서워한다면 나는 그 실체도 없는 것을 영영 피하며 알려고 하지 않겠지. 오랜 시간 나를 관찰하면서 알게 된 나의 치명적인 문제였지만 인지했다고 해서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며칠 전 SNS에서 누군가 올린 사진에 이런 글이 써져 있었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뉘앙스였던 것 같다.


모른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숨으려 하지만 누군가는 더 알려고 한다.


나는 명백히 전자의 사람이었고, 어느새 해가 완전히 진 밤공기에 붉어진 뺨을 식히면서 한심함을 느꼈다. 진짜 별것도 아닌데. 별것도 아닌 거에 더 쩔쩔매는 게 이상해보여.

이대로 친구집에 들어갔다간 울적한 마음만 더 커질 것 같아 눈앞에 보이는 수원화성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밤이었고, 우산을 써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켜진 조명은 싱숭생숭한 감정을 무디게 만드는 데 충분했다. 평소 운동은커녕 산책조차 마음 먹고 한 적이 없는 나한테는 무작정 걷는 일도 새로웠다. 특히 처음 방문한 화성은 고즈넉하고 운치 있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비록 화서문을 지나 아무 생각 없이 직진만 하다가 팔달산까지 오를 뻔한 아찔한 기억도 있지만. 그런 엉뚱한 체험을 했기 때문에 혼자서도 즐겁게 웃으며 수원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반나절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행에 정해진 시간이 있나. 그냥 내가 열심히 돌아다니고 먹고 체험하면 그게 여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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