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정 Sep 03. 2020

내가 가끔 눈을 감고 왼손으로 그림 그리는 이유

그림일지 (5)

무엇을 그려야 할지 떠오르지 않거나, 그리는 것마다 마음에 안 들 때 오른손잡이인 나는 종종 왼손을 사용해 눈을 감고 그림을 그린다. 원래는 왼손만으로 그렸는데, 눈을 감았을 때 선이나 그림의 내용이 더 과감해지는 것이 마음에 들어 이제는 눈도 감고 스케치북 위에 손과 연필이 가는 대로 내버려 둔다.


발가락이 여섯개면 뭐 어떠한가.

‘잘 그린 그림’에 대한 정의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사진보다 더 사실적으로 대상을 구현해 내는 그림을 보고 감동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건 나도 그리겠네’하는 생각을 하게끔 하는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불과 몇 년 전에는 나 또한 관점과 명암 그리고 질감 등을 기술적으로 잘 표현한 그림들을 봤을 때 ‘잘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기술적인 묘사가 없어도 작가 본인의 색과 생각이 유쾌하게 들어간 그림을 봤을 때 ‘좋은 그림’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제는 그림을 그리는 게 업이 된 나는 하얀 스케치북에 고민 없이 이해 안 가는 그림들을 그려내는 세네 살 아이들이 부럽다.


얼굴이 없는 기린.

꼬리가 몸과 둥 떨어져 있는 게 마음에 든다.
종이밖에 있을 기린의 머리는 어떻게 생겼을까? 이 기린은 노란색일까? 눈이 두 개일까 세 개일까? 귀는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내가 눈을 뜨고 같은 스케치북에 같은 연필을 사용해 기린을 그렸다면 분명히 네모 안에 얌전히 들어가 있는 착한 기린이 탄생했을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잘 그려진 기린일 수 있었겠지만, 과연 이렇게 궁금증을 자아내는 기린이었을까?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시각을 담당하는 눈의 역할은 감히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눈은 동시에 머릿속의 상상력을 제한시키기도 한다. 아니다, 나의 본능적인 상상력을 제한시키는 것은 내 머리이지 눈은 아닐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끄적인 낙서가 몇 시간 동안 머리를 싸매며 공을 들인 그림보다 몇 배는 나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상력 또한 머리에서 나오는 것인데, 그렇다면 나의 생각을 제한시키는 것은 눈인가 머리인가? 참 어렵다.


자화상.

나는 자화상을 많이 그리는 편이다. 물론 남에게 보여줄 만한 자화상은 많지 않다.
코랑 입술이 그려진 게 마음에 든다. 눈을 뜨고 익숙한 오른손으로 그릴 때는 이런 표현들이 나오지 않는 게 얄밉다.

전적으로 시각적인 정보에만 의존해서 그린 결과물이 좋을 때가 있고,
구도 같은 게 하나도 맞지 않더라도 100% 직감에 맡겨 그린 결과물이 좋을 때가 있다.
답이 없어서 더 어렵다.
십이십 년 후에는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그려야 좋을지 알 수 있으려나.


이 그림은 나중에 내 포트폴리오 웹사이트의 자기소개란에 함께 걸어놓았다.


공룡.


꽃밭.

발가락, 기린, 자화상 다음으로 마음에 드는 꽃밭 그림이다.


포뇨.

동물을 그리고 싶은데 딱히 생각이 나지 않아 친구네 고양이 포뇨를 그렸다. 나중에 친구한테 사진을 보내주니깐 저렇게 고양이 본인 사진을 함께 찍어 보내주었다.


비둘기.

이상한 인과관계지만, 고기를 먹지 않기 시작하면서 비둘기를 더 이상 싫어하지 않게 됐다. 핸드폰 사진첩에는 잔디밭에 앞가슴을 부풀게 하고 앉아 광합성을 하는 비둘기 사진들이 가득이다. 이 그림도 그런 비둘기를 떠올리며 그렸다.




이렇게 손과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들고 나서 그림을 그리면 그래도 꽤 흡족할 만한 그림/낙서/무언가 가 나온다.
한 주 넘게 비가 내리는데, 어서 해가 뜨면 좋겠다.



더 많은 그림은 여기서 보실 수 있어요.

인스타그램: instagram.com/pineconej
포트폴리오: pinconej.com

작가의 이전글 나는 석양을 바라볼 때 눈물이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