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전 쯤 일을 그만뒀다. 아무 준비도 없이. 그리곤 엄마에게 2달 정도의 생활비를 꾸었다. 멍청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분명결국 내 한 몸 건사하지 못하고 있단 걸 증명해버렸으니. 큰 이유는 없었다. 그저 간지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벌써부터 글이 무거워지니 아까 누워서 본 쇼츠 얘기부터 하자.
형태만 다르지 늘 비슷한 류의 동기부여 자극제들이 이젠 쇼츠로 넘어왔다. 누군지도 모르는 대충 나이 먹어보이는 사람이 나와 감성적인 bgm을 깔고, 이런저런 감동 멘트를 하는 그런 시시콜콜한 영상들. 내용은 이랬다.
지난 일에 후회하지 말라. 그 때의 넌 그 정도 판단 밖에 못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교훈으로 삼아라.
그런가하며 무미건조한 감동을 받고, 댓글창을 열어 살아보니 어떻드라하는 글들을 내려본다. 별 감정이 들지 않는다. 솔직히 짜친다. 그리고 쇼츠를 내리다 감정을 까먹는다. 이번엔 염따의 새 앨범 [살아숨셔 4]가 나왔다고 한다. 뭔가 반응이 좋아보여 들어 보기로 한다. 좋았다. 노래 안에서 한 인간의 주름이 느껴졌다. 트랙의 한 구절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엄마 돈만 많이 벌면 되는 거 아냐? 당신 아들은 족밥처럼 굴고 있단 말야
나도 족밥처럼 눈물이 났다. 이유는 모르겠다. 최근에 난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옛날부터 주위에선 내게 늘 뭔가 될 거라고 혹은 이미 된 것처럼 대우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최근엔 일했던 스타트업 회사를 그만둘 때, 아쉬워하는 동료와 대표들을 보며 혼자 근거 없이 어깨가 올라가 있더랬다. 나는 더 큰 꿈을 위해서 나간다고, 나는 뭔가 대단한 걸 할거라고. 참 못났다. 그리고 그만둔 지 이주일 동안, 나는 7번의 거절을 당했다.
생각해보면 대학입시 이후로, 난 뭔가 붙은 적이 별로 없다. 처음엔 단순히 대외활동 불합격, 그리곤 영화과로의 전과 실패, 몇년 후엔 한예종과 영화 아카데미 진학 실패, 최근엔 내가 멋있다고 생각한 프로덕션들에 입사 실패. 그리고 그 사이의 자잘한 실패와 탈락들. 되는 게 없다. 개 같은거.
도전을 해야 실패가 있다며 또 교훈팔이 쇼츠들을 보지만, 솔직하게 난 별로 열심히 안했다. 대충한 도전은 그냥 쓰라린 맹탕인 실패만 낳는다. 지난 2-3년간 뭐 이런저런 것들을 했긴 했다. 근데 정말 그 안에 내가 간절함을 가지고 온 정성을 불어 넣었던 게 있었나. 잘 모르겠다. 그냥 멋져 보이고 싶었던 게 아닐까. 몇 가지 헝겊들을 가지고 온 몸을 열심히 가렸더랬다.
불행하게도, 첫째로 난 대충해서 잘 될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고, 둘째로는 간절해야만 성공하는 분야를 택했다. 이중으로 고난이다. 로스쿨이나 갈 걸. 다행인 건 이미 늦었다! 어떻게든 과실을 내야만 한다.
그렇게 말한 사람도 있었다. 그만두고 나서 오히려 더 조급해한다고. 단 하루도 여유있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마음의 여유를 좀 가지라고. 맞는 말이지만, 여유란 게 빈 지갑에선 참 나오기 어려운 거 같다.
최근 뮤직비디오 프로덕션에 지원했을 때, 어떻게든 붙어보려고 디엠도 보내보고 편지도 세 번씩이나 적어 보내보곤 했다. 솔직히 존나 안 쿨하다. 내가 꿈꿨던 것들은 이런 모양 빠지는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라도 연락이 왔으면 좋았으련만. 모양만 빠져버렸다.
그리곤 질투심에 가득차, 합격한 이로 보이는 이의 인스타그램을 뒤져보는 더 추잡한 짓을 벌였다. 대충 스토리에 태그된 것으로 보아, 아 이 사람이 됐구나 미루어 짐작한 것이다. 난 꽤 음침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포트폴리오를 보고 있는데, 그들이 요구했던 건 그렇게 대단했던 것이 아니었다.
한동안 많이 쓰던 말로 ‘느낌 좋은’ 사람이었다. 무슨 뮤직비디오에 획을 바꾸기 위해 한 몸 불사하는 그런 이들이 아닌, 이것 저것 개인 단편 작업들도 하고 광고도 찍으며 그냥 잘 사는 사람. 무언가 하고 싶은 게 그게 뭔진 몰라도 명확해 보이는 그런 사람. 내가 보기에도 괜찮아 보였다.
그리곤 간만에 내 단편 작업을 드디어 해보고 싶었다. 매일 예산이니, 시간이니 등의 문제로 미뤄왔던. 그것보다도 사실 뭘하고 싶은 지 몰라 미뤄왔던. 그냥 내 뇌를 꺼내서 전시하는 대충 그런 느낌의 걸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단편을 만들고, 단막극을 쓰고. 그렇게 작가가 되고 싶다. 난 그게 나랑 어울리는 것 같다. 각본가겸 생활고형 연출가. 진짜 ‘내’가 담겨 있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사실 여전히 좀 막막하다. 먹고 사는 문제가 계속 걸려서. 정말이지 잘 모르겠다. 자기 길 찾아 취업한 주위 사람들이 볼수록 대단해 보인다. 나도 제법 열심히 살았는데. 그래 곱씹어 봤자 속만 쓰리다.
그냥 좀 멍청하게 하자. 나라도 헛똑똑이보단 성실한 멍청이가 좋을 것 같다.
[멍청하게 사는법]. 2025.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