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 결혼식, 요즘 결혼식
내 결혼식은 소중하니까
2009년에 결혼을 했다. 벌써 15년 전이다. 특별히 꿈꾸는 결혼식의 모습을 그렸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왕이면...'하고 바란 것들은 있었다. 생각해 보면 순수한 내 취향이 반영된 바람이라기보다 기존 결혼식에 대한 반발심 같은 것이었다. 예를 들면 왜 기독교인도 아닌데 주례가 필요한가, 왜 신부가 아버지 손을 잡고 신랑에게 인도되어야 하는가, 왜 어렵게 걸음 한 손님들과는 말 한마디 나누기 어렵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이루어져야 하는가 뭐 그런 식의 의문이 있었다. 주례를 없애자, 신랑신부 동시 입장을 하자, 스몰웨딩으로 파티하듯 여유 있게 해 보자 하며 몇 가지 시도를 해보았지만, 그때 내가 얻은 교훈은 그냥 '대세에 따르는 것이 편하다'는 진리였다.
"아무래도, 주례가 없는 건 보기가 좀 그래."
우선, 주례 없는 결혼식은 엄마의 한마디로 무산되었다. 그때의 주례 없는 결혼식은 '요즘엔 주례 없이 하기도 한다더라'하는 카더라 같은 것이었다. 나는 굳이 쓸데없는 것으로 실랑이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순순히 받아들였다. 주례를 해줄 사람이 아무래도 없어서 모르는 사람을 돈을 주고 세워야 했다면 밀어붙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비슷한 이유(남들 보기가 좀 그렇다는)로 신랑 신부 동시입장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른들이 완강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 역시 그리 고집이 있던 것도 아니어서 결국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는 길을 택했다.
스몰웨딩은 알아보다가 스스로 포기했다. 계약 한번 하면 알아서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기존 결혼식에 비해, 스몰웨딩 또는 그 비슷한 형태로 하려면 비용은 훨씬 비싸고, 품은 몇 배로 더 많이 들었다. 스몰웨딩은 부자나 연예인들이나 하는 것인가 보다 하며 빠르게 마음을 접었다. 결과적으로 하객 수는 삼백 명이 조금 넘었다. 뭐, 결혼식은 부모님 사업이라고들 하지 않나.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 중 하나는, '시간의 여유가 있는 결혼식'이었다. 외국처럼 밤새도록 같이 놀지는 못해도 기계처럼 급박하게 이루어지는 결혼식만은 피하고 싶었다. 화촉 밝히고, 주례하고, 성혼선언을 낭독하는 예식 순서는 하객입장에서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서 5분쯤 앉아 있다가 우르르 밥이나 먹으러 나가는 것이 그때 일반적인 결혼식장의 풍경이었다. 신랑신부 입장에서도 서운한 일이다. 그래서 예식 간격이 여유 있고, 식사를 하면서 예식 할 수 있는 적당한 웨딩홀을 찾는 것만은 열심이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주례 없는 결혼식, 신랑신부 동시 입장, 스몰웨딩 따위는 이미 만연한 예식의 풍경이 되었고, 더 많은 부분들이 조금씩 변주되고 바뀌어가고 있다. 내가 10년 늦게 결혼했다면 이미 그것들이 대세였을텐데, 아쉽다. 최근 몇 년간은 주례 있는 결혼식을 본 것이 오히려 드물다. 그 시간을 부모님의 진심 어린 당부나 신랑신부의 편지 낭독 같은 것들로 채우니 더 관심과 애정을 갖고 보게 된다.
지난주 일요일에도 지인의 결혼식에 갔는데, 대기실에 앉아 있기 싫다며 입구에 서서 인사를 받는 신부와 사진을 찍고, 편지를 낭독하다 신랑이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신부 아버님의 유쾌한 축가에 브라보를 날리며 하객으로서도 즐기다 왔다.
이제는 기존 예식 방식들도 다 나름의 이유와 의미가 있었음을 이해한다. 결혼식의 방식은 사람들이 결혼을 대하는 태도와 관계가 있기 마련이다. 옛날엔 어른들이 '결혼을 시키는 것'이었으니 부모와 주변 어른들이 결혼식을 주도했다면, 이제 두 남녀가 '결혼을 하는 것'이니 신랑과 신부를 중심으로 하는 결혼식이 되어가고 있는 것 아닐까? 여전히 변화의 과정에서 진통이 있기는 하지만 지난 나의 결혼식과 비교해도 많이 바뀌었음을 실감한다. 앞으로 10년 후의 결혼식은 어떨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축의금문화가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