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먼저 알자
모든 글에는 소재가 있다.
소설의 소재는 상상력과 이야기이고, 수필의 소재는 개인의 경험과 감상이다.
소재와 글은 떼어놓을 수 없는 서로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갑자기 무작정 글을 쓰라면 쓰기 어렵지만, '추억', '음식' 같은 글감이 함께 주어지면 더듬더듬 글을 적을 수 있다.
자기소개서에도 응당 소재가 필요하다.
자기소개서는 나를 소개하는 글이기에, 나에 대한 것이 소재가 된다.
채용을 목적으로 하는 자기소개서에 키나 나이, 사는 곳 같은 정량적인 특징은 의미가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는 경험과 느낀 점이 자기소개서의 소재가 된다.
소재의 선정은 정말 중요하다.
좋은 소재로 나쁜 글을 쓰는 일은 있을 수 있지만, 나쁜 소재로 좋은 글을 쓸 수는 없다.
사실상 소재가 글의 품질을 결정짓는다.
자기소개서에 소재가 미치는 영향은 더욱 파괴적이다.
"지원한 직무를 수행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역량과, 그 역량을 기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서술하세요" 라는 단골문항이 있고, 지원한 직무는 영업직일 때,
영업직 인턴을 해 본 경험을 소재로 글을 쓴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글이 쉽게 쓰일 것이다.
전단지 알바나 연극 예매 알바를 소재로 글을 써도 고민은 좀 하겠지만, 영업의 자세를 들어 글을 쓸 수 있다.
축구 동아리 활동을 소재로 글을 쓴다면 적극성이나 인간관계를 중점으로 어떻게 글을 쓸 수는 있겠지만,
직무 능력을 서술하기 쉽지 않다.
연구나 독서 토론 등을 소재로 글을 쓴다면... 영업직무 능력을 쓰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고,
소재를 바꾸는 게 글이 훨씬 쉽게, 그럴듯하게 쓰일 것이다.
소재 선정이 글쓰기의 난이도를 결정 짓는 셈이다.
그만큼 소재는 중요하다.
문항마다 적합한 소재를 생각하는 일은 어렵다.
자기소개서를 한 편만 써도 된다면 시간이 걸려도 천천히 소재를 떠올려 글을 적을 수 있겠지만,
취준을 하다보면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자기소개서를 쓰게 되기에, 매번 문항에 맞는 소재를 찾아내기는 엄청난 고역이고, 시간도 촉박하다.
자기소개서를 쉽게, 잘 쓰기 위해서는
나에 대한 내용과, 내가 해온 경험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장인이 도구를 정리해놓고 용도에 맞는 도구를 쓰듯이,
소재를 정리해놓고 문항에 맞는 소재를 쓸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추천하는 방법은 엑셀에 "취업시트"를 만드는 것이다.
취업시트는 첨부파일로 올려놓을테니, 당신이 취준생이라면 글을 읽으며 직접 작성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모바일로 글을 보고 있다면, 나중에라도 꼭 시트를 직접 작성해보라.
[기본정보/학력사항]
기본정보/학력사항에는 내 이름이나 핸드폰 번호, 입학 및 졸업일자와 같은 기본정보가 들어간다.
지원서를 계속 쓰다보면, 단순 인적사항을 매번 기입하게 되는데
생각보다 입력이 귀찮고 손이 많이 간다.
엑셀시트에 미리 정리해놓고 복사/붙여넣기로 기입한다면 지원서를 작성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자기소개서에 자주 등장하는 나의 강점, 약점 문항에 대비하기 위해 작성하는 시트이다.
면접에서도 인성 면접으로 자주 물어보는 질문이기 때문에 잘 작성해두면 좋다.
장점은 특정 경험을 바탕으로 묘사할 수 있으면 좋고,
약점은 어떤 장점에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특성이면 좋다.
예를 들어 꼼꼼한 성격 탓에 유도리가 없다던지, 집중력이 강한 대신 멀티태스킹이 떨어진다던지 하며, 약점을 말하는 척 슬쩍 장점을 끼워넣을 수 있어야 한다.
또 마지막에 극복하고 있다는 내용을 붙이면 약점을 약점같지 않게 만들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시트를 작성하는 동안이 나는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뭘 좋아하며,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
우리는 대개 시간을 들여 스스로를 돌아본 적이 없다.
채용은 기업이 기업과 직무에 잘 어울리는 사람을 뽑는 과정임과 동시에,
취업준비생이 취업준비생과 잘 어울리는 기업과 직무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시간을 들여 준비한다면, 스펙도 자기소개서도 전부 꾸며서 작성할 수 있다.
제대로된 증명서가 없는 교내 공모전이나 과거 경험을 꾸며내 자기소개서에 적는건 일도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업에 들어가면 직장생활이 불행할 수 있다.
기업이 좋고 나쁘냐를 떠나, 적성에 전혀 맞지 않는 일을 하게될 수 있다.
낯을 가려 영업직이 전혀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이 활기찬 사람인척 자소서를 꾸며 기업에 들어갔다면,
채용에 합격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합격한다 해도 출근하기가 지옥같을 것이다.
필자는 글쓰기도, 숫자도, 사람 만나는 일도 다 좋아해서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B2C 마케팅을 준비하는 중이었지만, 나를 돌아보고 직무를 조사하다보니 마케팅 직무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끊임없는 창작의 압박과 숫자가 아닌 감성이 개입되는 의사결정을 못 견디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B2B 마케팅으로 생각을 바꿨고, 숫자에 파묻혀 행복하게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
우리는 좋은 회사에 들어가는 것을 1순위로 삼기에 자주 간과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행복한 일을 먼저 잘 생각해보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사람은 인생의 1/3은 자고, 1/3은 일하고, 1/3을 쉬면서 보낸다.
회사와 돈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인생의 1/3을 고통스럽게 보낼수는 없다.
자소서와 면접에 쓰는김에 시간을 들여 나를 한번 잘 돌아보자.
내가 원하는 기업과 직무가 정말 나랑 잘 맞는지 생각해보자.
행복하게 일하기 위해서.
[자격증]
내 자격증의 취득일과 등록번호를 매번 찾아 기입하는 일도 생각보다 시간을 엄청 잡아먹는다.
지원서를 작성하는 시간도 줄이고, 또 자격증의 취득 여부가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소재가 되어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사)한국창의인성교육연구원에서 관리하는 E-TEST라는 자격이 있다.
공기업과 몇몇 기업에서 가산점으로 인정해주는 컴퓨터활용능력과 달리 가산점을 주는 곳은 별로 없지만,
컴활과 달리 워드, PPT, 엑셀 기본지식을 모두 배운다는 특성 덕에 사무직 직무능력을 보유했다는 것을 어필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정말 사소한 자격증이라도 상관 없으니, 빠짐없이 작성하도록 하자.
[수상경력]
사소한 상이라도 좋으니 모두 기입하자.
이름 있는 어마어마한 공모전 수상내역만 수상실적이 아니다.
정말 작고 사소한 수상실적이라도 내 능력과 특징을 묘사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된다.
필자는 군복무 시절 공군에서 열린 눈사람 만들기 콘테스트에 참가해 캐릭터상이었나,,, 그런 상을 수상했던 기억이 있다. 상금으로 10만원을 받아 같이 눈사람을 만든 후임들과 PX에서 슈넬파티를 벌였다.
기획공모전이나 대외활동에 비하면 정말 작고 소중한 수상경험이지만,
긍정성이나 팀워크를 작성하는 문항에 항상 단골소재가 되어주었다.
중요한 건 수상의 인지도나 멋짐도가 아니라, 내가 자소서에 어떻게 작성하느냐이다.
꼭 사소한 상이라도 모두 기입하자.
[활동]
수상경력과 같다. 아무리 사소한 활동이라도 꼭 작성하자.
'활동'의 범주는 정말 넓다.
봉사활동부터 평소에 하는 운동, 대학 수업을 들은 내용, 졸업논문 작성, 수업에서 진행한 팀플 등 뭔가 배운 점이나 글에 참고할거리가 있다면 무엇이든 좋다.
중요한 것은 일단 시트에 작성하여, 자소서를 쓸 때 소재로서 고려하는 것이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다가 공기업 취업으로 진로를 바꾼 친구가 있다.
자기는 시험 준비 외에는 한 게 없어서 자소서에 적을 게 하나도 없을 거라던 친구는,
실제로 이 취업시트를 만들면서도 한 줄 쓰고 한숨을 쉬고, 한 줄 쓰고 한숨을 쉬었다.
활동의 크기나 의미가 중요한 것이 아니거늘, 이런 것도 적냐고 생각한 모양이다.
결국 사소한 것까지 아무거나 적으라고 나에게 수십 번의 타박을 듣고 모든 활동을 꼼꼼하게 적어왔다.
대학 신입생 때 떠밀려서 신입생 리더 활동을 한 것과,
평소 꾸준히 마라톤을 뛰고 있는 것, 그리고 졸업 논문을 쓰며 있었던 일을 기반으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했고
지금은 공기업에서 잘 일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보다 당신은 많은 활동을 했다.
억지로 학점을 따러 원하지 않는 강의를 들은 것도, 수강신청에 실패하여 팀플 가득한 수업을 들은 것도, 졸업요건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 봉사활동을 한 것도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자기소개서 작성에는 훌륭한 소재가 된다.
정말 모든 활동을 다 적자.
일기장도 좋고 갤러리도 좋다.
내 대학생활, 혹은 지난 몇 년간의 하루하루를 돌아볼 수 있는 수단을 펼쳐놓고 과거를 잘 더듬자.
활동이 성공적이었는가, 의미 있는 결과물이 남았는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작았던 컸던, 그 활동이 지금의 당신을 만들었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자기소개서의 훌륭한 소재가 되어줄 수 있다.
취업시트를 작성하며 소재를 정리해놓았다면,
문항과 직무/기업분석, 그리고 취업시트를 함께 살펴보며 어떤 소재로 몇 번 문항을 적을지 결정할 수 있다.
소재의 선정은 '전략적 자기소개서 쓰기'와 연결되므로, 해당 주제에서 다룰 것이다.
취업시트를 완성해보면, 막막하던 취준에 조금 길이 보이는 기분이 들 것이라고 믿는다.
혹시 취업시트가 너무 텅텅 비어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해도 상심할 필요 없다.
지식의 기반은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자기소개서의 소재가 되어줄 경험과 수상경력이 없다는 것을 안 것 만으로, 우리는 취업 준비의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다.
취업시트가 비어있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놀기를 좋아한다. 노는 것이 싫고 계속 일하고 공부하는 게 좋다면 셋 중 하나다.
1) 사기꾼이거나, 2) 거짓말이거나, 3) 엄청난 위인이다.
엄청난 위인에 속하는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어릴 때부터 자살충동을 느꼈지만,
수학을 공부하기 위해 자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정도 되는 미친 사람이어야 공부하는 게 좋다.
우리같은 범인(凡人)은 스펙 쌓기가 너무너무 싫다.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일이기에, 스펙 가득한 사람들도 당신과 다를 것 없다.
어느 한 때는 그 사람들도 텅텅 빈 취업시트를 가졌었으리라.
비었으면 채우면 된다. 진짜 하기 싫겠지만, 해야만 한다.
들어가는 글에서 이야기했지만, 하기 싫은 일은 해버려야 안 할 수 있다.
컴활이나 한국사능력시험 같은 자격증을 채우고, 직무에 맞는 경험들을 만들어가면 된다.
불과 몇 개월만 지나도 취업시트가 쭉쭉 채워질 것이다.
파이팅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