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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Mar 05. 2024

이것도 이별이라고......




어반 스케치를 배우기 시작한 지 1년 6개월이 되었다. 15년 가까이 유화에 쏟아부은 시간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지만 그렇다고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더없이 좋은 여행 친구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반 스케치를 하면 할수록 수채화에 대한 갈증이 일었다. 좀 더 제대로 된 수채화의 느낌을 알고 싶다는 생각에 순수 수채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애초의 계획은 수채화의 다양한 맛을 익혀 어반 스케치에 덧 입힐 생각이었다.





© esteejanssens, 출처 Unsplash




그런데 예상과 달리 점점 수채화에만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사이즈가 두 배로 크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묘사를 많이 하다 보니 어느새 어반 스케치는 뒤로 밀쳐두고 수채화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속으로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새롭게 배우는 것에 빠져들고 있었다. 

당초에는 두 가지 다 잘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둘 다 수채화이니 가능할 줄 알았는데 한쪽에 몰입하다 보니 자연스레 나머지 하나는 멀어지고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 lensinkmitchel, 출처 Unsplash




봄 학기 수업 등록을 했다. 나의 생각과 달리 두 가지를 제대로 병행하지 못하는 미안함은 숙제를 하지 않은 아이처럼 늘 마음이 무거웠다. 하나라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등록했던 어반 스케치 수업을 취소했다. 당분간 수채화 수업에 올인하기로 했다.

마지막 어반 스케치 수업에 참석을 하지 못해서 단톡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제야 내가 그곳을 떠나왔다는 느낌이 몰려왔다. 당연히 아무것도 아닐 줄 알았다.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백화점 문화센터 수업이 무에 그리 중할까 싶었다. 단지 필요에 따라 선택했고, 그 필요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이라고만 생각될 줄 알았다. 





© shottrotter, 출처 Unsplash





같이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과 인사말을 나누다 보니 함께 보냈던 시간들이 되살아 났다.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했던 그 처음, 끙끙대며 갈등했던 숱한 날들, 어떻게든 잘해보겠다고 어깨를 망가뜨리며까지 부렸던 극한의 오기...... 그런 시간과 고통이 있었기에 어반 스케치가 함께 여행할 수 있는 좋은 동무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한 바구니 가득 쌓인 스케치북 갈피 사이에 지나온 시간과 갈등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래서 이것도 이별인 걸까? 온 마음을 쏟아부은 것이라 발 길을 돌리고 바라본 그 자리와 그 시간이 자꾸 눈에 밟힌다. 





© photo_tanbir, 출처 Unsplash




사람과 헤어지는 것만이 이별은 아닌 것 같다. 사람처럼 나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지만, 사람 그 이상의 교류와 위로, 선물을 받았다. 쉼터이자 놀이터이기도 했다. 그 안에서 푸릇푸릇한 청춘으로 돌아가 맘껏 꿈을 키우기도 했고, 혼신을 다해 몰입하기도 했다.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의 무게가 반드시 사람과의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사소한 이 인연에 무심코 베인 손가락이 생인손처럼 아린다. 하필이면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오늘, 아무리 향이 좋은 커피를 마셔도 한동안 여기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다. 이것도 이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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