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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Aug 28. 2024

첫 번째 이사 목록




이사 갈 날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서둘러 주변 정리를 했다. 많은 날이 남아 있을 때는 '내일 하면 되지......' 했던 일들을 행동으로 옮기며 하나씩 지워나갔다. 

집 근처에 있는 단골 정비소에서 전반적으로 자동차를 점검하고 손봐야 할 것들을 일괄 교체했다. 그동안 오랫동안 면을 익혀서 여러모로 편했는데 생각보다 적잖이 아쉽다. 아마도 그동안 직원의 친절이 익숙하고 고마워서인 것 같다. 





© jannerboy62, 출처 Unsplash




1년 반 동안 뭐 얼마나 자랐겠어? 하고 미루고 있다가 해치워야 할 것 같아 복부 초음파 검사를 했다. 사람 몸속에 혹들이 텃밭에 아무렇게 씨알을 떨구어 놓은 고구마, 감자처럼 쉽게 크는 것 같다. 쓸개, 콩팥, 자궁에 혹이 몇 개 있는데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몇 년 전, 15센티 낭종으로 양쪽 난소 제거 수술을 받고 나서 혹 관리를 하고 있었는데, 작년 초에 쓸개가 또 추가되었다. 1*1도 아니고, 포인트 적립도 아닌데 돼지 저금통처럼 자꾸 몸속에 혹이 쌓인다. 다행히 크게 변동이 없어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수년 간, 한 병원에서 체크를 하고 있어서 일괄 관리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 마지막 피날레가 되었다. 





© insungpandora, 출처 Unsplash




남아 있는 쿠폰을 확인해서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부랴부랴 영화 예매를 했다. 아쉽게도 이사 가는 곳에는 Art 영화 상영관이 없다. 주로 Art 영화를 즐겨 보는데 몇 회씩 볼 때마다 날아오는 무료 관람권과 할인 쿠폰이 아직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무척 아쉽다. 이따금 생각지도 못한 신선한 주제의 영화를 보고 나서 느끼는 짜릿함은 지쳤을 때 마시던 진한 커피 한 잔 같았는데, 몇 년 동안 유지해 온 시네마 등급도 이제는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 perfectshot4u, 출처 Unsplash





이사를 하는 것은 그저 짐 정리를 하고 내가 쓰던 집기류를 옮기면 되는 건 줄 알았다. 필요 없는 짐은 버리고, 필요한 건 다시 사면 되지만, 그동안 내가 머문 자리에 배인 자취를 거두어들이 것이 어쩌면 이사 목록의 제일 첫 번째가 아닐까? 


앞 베란다에서 고양이가 용변을 보고 모래를 덮으며 뒷처리를 한다. 나를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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