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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Oct 17. 2024

사랑은 움직이는 건데......




극장에 가려고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로 맞은편에 있는 초등학교 앞에는 오늘 무슨 날인지 관광버스가 줄을 지어 서있다. 아마 학교에서 단체 행사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옆에 앉아 있던 젊은 엄마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ㅇㅇㅇ~~~" 하면서 아들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소리쳐 부르는 게 쑥스러운지 한껏 지르는 소리 같지 않았다. 아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젊은 엄마는 연이어 아들 이름을 불렀다. 계속 불러도 아들이 전혀 듣지 못하는 것 같아서 내가 같이 크게 불러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출처 pinterest




그렇게 한동안 애타게 부르던 젊은 엄마의 목소리가 갑자기 밝아진 게 느껴져 고개를 들어보니 드디어 아들이 엄마를 알아본 것 같았다. 마침 창 가에 앉은 아들은 엄마를 향해 연신 손을 흔들다가 엄지와 검지를 접어 작은 하트를 날리더니, 잠시 후 머리 위로 양손을 뻗어 큰 하트도 만들어 보내주었다. 

그런 아들을 본 젊은 엄마는 세상에서 더 이상 환할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힘차게 아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들도 엄마의 기세에 힘입어 쾌속(?)으로 제조한 하트를 종류별로 발사를 했다. 그렇게 그 모자는 관광버스가 떠날 때까지 어느 한쪽도 기세가 기울지 않는 팽팽한 애정 표현을 했다. 





                    출처 pinterest




"그래도 하트를 많이 받으셨네요"

버스가 떠나자 앉았던 자리로 돌아온 젊은 엄마에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녀는 아직도 얼굴에서 환한 미소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네. 우리 아들이 애교가 많아서요......"


나는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 저 하트를 젊은 아낙은 그동안 아마 한 트럭쯤은 받았겠구나 싶었다. 하트가 생산(?) 된 지 오래되지 않아 우리 아들들이 어렸을 때는 없었던 아이템이지만, 만약 그때 생산되었더라도 녀석들은 내게 하트를 저렇게 거침없이 쏟아부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빙그레 웃었다. 





                            출처 pinterest




'지금 아들이 하트를 마구 날려줄 때 많이 받아 챙겨 놓으세요'
'어느 날, 문득 엄마에게 줄 하트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때는 수급이 딸려서 엄마 몫이 없을지도 몰라요'
'사랑은 움직이는 거니까요......'


버스가 와서 올라타는 그 젊은 엄마의 발꿈치를 보며 속으로 얘기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자식의 빈자리를 그녀도 머지않아 똑같이 겪게 되지 않을까? 어쩌면 그때는 오늘의 이 힘찬 하트를 생생히 떠올리며 아들이 변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랑이 움직이는 세상의 이치임을 알고 덤덤히 잘 넘기길 바라며 나도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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