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 합병증으로 갖은 고생을 하던 언니가 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이번에도 그전처럼 치료를 잘 해서 일반 병실로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예전보다 상황이 조금 더 좋지 않지만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연명 치료를 할 것인지 결정을 해 달라는 통보와 가족들 중에 면회할 사람이 있으면 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친정어머니도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보호자가 지켜보라는 의사의 말에 무게를 실어주며 다음 날 돌아가신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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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랴부랴 아침 정리를 하고 나서 차를 몰고 구미로 향했다. 장거리 운전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촌구석으로 이사 온 게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하늘에는 검은 먹구름이 이불 홑청처럼 커다랗게 걸쳐 있었다. 친정어머니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에둘러 표현한 의사의 말처럼 이내 쏟아질 것 같은 폭우가 예보한 대로 대기하고 있었다.
2시간 동안 차를 몰고 가면서 언니와 보낸 시간이 물에 불린 미역처럼 뭉실뭉실 되살아났다. 언니와 나는 두 살 터울이지만 싸운 기억이 없다. 후덕하고 인정이 많은 언니는 부끄럼 많고 소심한 동생을 어려서부터 언니 친구들 사이에 끼워 함께 잘 데리고 놀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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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하는 걸 유난히 좋아했던 언니는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빨랫감부터 찾아서 냇가로 가곤 했다. 비누칠을 한 작은 손수건 하나를 나한테 건네주고 나머지 빨래를 언니는 신바람 나게 했다. 빨래를 다 마치면 내가 주무르고 있던 손수건마저 가져가서 말끔하게 헹구어 집으로 돌아왔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언니 집에 다니러 가면 집 안 가득 빨래가 널려 있었다. 겉옷, 속옷, 수건..... 종류별로, 색깔별로 삶아서 널어 놓으면 오색 깃발 아래 있는 것 같았다. 물이 있는 풍광 좋은 경치를 보면 "아이고! 이런 물에 이불 빨래나 실컷 하면 좋겠다"라고 하던 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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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이불 빨래도 거뜬히 해내던 언니는 중환자실에서 온갖 줄에 매달린 채 빨래처럼 누워 있었다. 아직도 각시 같은 육십 중반의 나이에 혼자 버티지 못해 빨래집게에 꽂힌 빨래처럼 주렁주렁 줄에 달려 있었다.
아들 결혼식에도, 내가 이사한 집에도 와 보고 싶어 했으나 오지 못했다. 이따금 가던 칼국숫집에 같이 가서 먹어 보고 싶어했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어릴 적, 무심하게 건네준 비누칠 한 손수건 같은 언니와의 숱한 기억이 풀 먹인 광목처럼 아직 빳빳하게 살아 있는데, 언니는 작은 바람에도 힘 없이 떨어지고 말 것 같은 손바닥만한 빨래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