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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Nov 10. 2024

 궁색한 추억거리




"커피 사서 냉장고에 넣어 놨으니까 집에 오면 마셔. 엄만 수영하러 간다"
"커피 사 올게요"
"오늘 커피는 내가 살게"
"어머니는 망고 스무디로 사 올까요?"


생각해 보면 아들과 나는 커피로 많이 이어져 있었던 것 같다. 녀석이 커피를 사 오기도 하고, 내가 사기도 하고, 집 근처 프랜차이즈점의 할인 날에는 안 마시면 왠지 손해 보는 것 같아 하루에 두 번도 들락거렸다. 커피를 좋아하는 녀석은 한여름 땡볕도 마다하지 않고 신 바람 나게 사 왔다. 선물 받은 스벅 쿠폰은 잘 쟁여 두었다가 주말마다 둘을 위해 써먹는 요긴한 양식거리(?)였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오늘이 10일이라는 것을 오후가 되어서야 알았다. 집에서 모닝커피를 내려 마셨는데도 일부러 커피를 사러 나갔다. 녀석과 마시던 그 익숙한 커피 향이 맡고 싶어서였다. 커피점으로 가는 길에 문득 생각했다. 녀석과 나 사이에 이것도 추억이었구나...... 늘 하던 일이라서 몰랐는데 내 안에 커피 찌꺼기처럼 진하게 쌓여 있었구나......

무심했던 녀석이라 달달한 기억은 없다. 그래서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이런 것 밖에 없다. 나갔다 돌아올 때마다 꼬박꼬박 커피를 사 오던 녀석, 무사히 퇴근하고 돌아와 인사하던 녀석, 차려준 밥을 맛있게 먹던 녀석, "넵" 하고 짧은 답을 보내던 녀석, 무거운 쓰레기봉투를 너끈하게 들어주던 녀석, 열리지 않는 병뚜껑을 단번에 "뿅" 하고 열어주던 녀석, 고양이 발톱을 깎아 주던 녀석......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하도 무심한 녀석이라 결혼을 해서 떠나도 내 안의 일렁임은 눈곱만큼도 없을 줄 알았다. 그랬는데 10일이라 갑자기 커피와 함께 녀석이 떠오른다. 나와 나눠 마셨던 커피를 녀석은 생각이나 할까? 녀석이 들고 날 때마다 문 앞에서 배웅하고 반겨주던 나를 기억이나 할까?

적응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새로운 생활에 그나마 내가 추억이라고 우기는 이 소소한 것들도 녀석의 기억에서 차츰 비껴 날 것이다. 어쩌면 나 혼자 붙들고 있는 기억일 뿐, 녀석에게는 추억조차 아닐지도 모른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커피가 어느새 식었다. 향도 많이 날아갔다. 녀석과의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서 식고, 날아가겠지...... 오늘 나는 또 보내는 연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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