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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농 Aug 01. 2023

영화 <수라>

영화를 보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 딸이 물었다.

"무슨 내용이야?"

"응, 철새가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다는 이야기."

"뭐?"

'재미없음' 표정을 짓는 딸, 그리고 아무 관심 없다는 듯 그 옆에 앉아 있는 아들.


아름다운, 혹은 참혹한 장면이 숱하게 나오는데, 기억나는 건,

바다를 막고, 늘 들어오던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은지 수개월. 오래간만에 내린 비가 바닷물인 줄 알고 수십 센티미터의 길이의 가문 땅을 뚫고 올라온 조개들과 게들. 바닷물이 아닌 것을 알아차린 그 생명체들이 하늘을 향해 솟구친 채로 일제히  말라비틀어져 죽어버린 장면이다.

영화에서 생태시민단 '동필 씨'가 나온다. 그는 오래전 갯벌에서 보았던 도요새의 군무를 잊지 못하고 남아있는 새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을 한다.

그가 말했다. 아름다운 것을 본 게 죄인 것 같다고, 이 때문에 이 일들을 멈출 수가 없다고.

보는데 촌스럽게  눈물이 계속 줄줄 흐른다. 무슨 일이냐는 듯 자꾸 아들이 쳐다본다.


영화 마지막 크레딧에서 '탐조책방' 이름을 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검색해 보니, 수원역 근처에 있는, 새를 주제로 하는 책방이다. 지하철 두 번 갈아타고, 버스 타고, 내려서 걸어가면 두 시간 남짓.

"새에 관한 책들이 많은 책방이 있대. 내일 갈래?"

"나쁘지 않아." 쿨하게 대답하는 딸, 그리고 옆에서 열심히 축구선수 이적 뉴스 검색하고 있는 아들.


영화 '수라'가 우리 다음 행선지를 이렇게 정해주는구나.

고맙다, 수라.

고맙다. 아들, 딸.

그래도 "가자!" 하면 아직까진 말없이 따라와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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