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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농 Sep 15. 2023

어떤 사람들은 시를 좋아한다 _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욕망의 북카페> 아니, <욕망의 독서실>

어떤 사람들은 시를 좋아한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어떤 사람들 -
그러니까 전부가 아닌,
전체 중에 다수가 아니라 단지 소수에 지나지 않는 일부를 뜻함.
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과
시인 자신들을 제외하고 나면
아마 천 명 가운데 두 명 정도에 불과할 듯.

좋아한다 -
하지만 치킨 수프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럴듯한 칭찬의 말이나 파란색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낡은 목도리를 좋아하기도 하고,
자신의 뜻대로 하기를 좋아하거나,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을 좋아할 수도 있다.

시를 좋아한다는 것 -
여기서 ‘시’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여러 가지 불확실한 대답들은
이미 나왔다.
몰라, 정말 모르겠다.
마치 구조를 기다리며 난간에 매달리듯


그래, 아마 천 명 가운데 두 명 정도에 불과할 듯한 그 어려운 가능성을 뚫고, 옹달샘과 타꼬야끼가 나의 제안을 받아주었다.  휴직을 하면 다시 시 모임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반년 만이다.  6년 전 <시엄니: 시 읽는 엄마들을 니들이 알아?> 때, 여러 시인의 시집들과 니체를 함께 읽었다면, 이번에는 시집들과 노자를 함께 읽기로 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집으로 첫 모임을 하고, 다음 날짜를 정하려는데, 일정이 서로 맞지 않아, <책방산책> 모임 때, 시 모임도 함께 하기로 했다. 책 나눔 시간에 우린 아마들에게 시를 읽어주자고, 그리고 노자 이야기도 해주자고. 그렇게 된다면, 모임 인원이 늘지도 모른다. 그래, 어쩜 아리가, 어쩜 설기가, 어쩜 하다가 낡은 목도리를 좋아하듯,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을 좋아하듯 ‘시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 9월 <책방산책>은 초록별이 소개해 준 자청의 <욕망의 북카페>였다. 그런데 아뿔싸. 여긴 욕망의 북카페가 아니라 욕망의 독서실이다. 기침 한 번 크게 했다가는 큰 일 날 것 같다. 책 나눔은커녕, 시 읽어주는 것은 꿈도 못 꿀 분위기다. 먼저 도착해 책을 읽고 있던 하다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리고 내게 빨간 표지의 책을 내밀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뒤표지에 적힌 이 글 한번 읽어보세요. 저자가 자폐를 앓고 있는 과학자여서 그런지 몰라도, 책 내용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 글은 좋네요.”


# 하다가 건네준 글

실현되지 않은 계획에, 이루지 못한 목표에, 실패한 관계에 절망하지 말 것. 대신 거기에서 배우라.
그리고 다음에는 조금 다른 것을 시도해 보자. 삶이 나아지는 과정은 느리고 점진적이라는 인간의 필연성을 받아들이자.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의 다름을 악마 취급하지 마라. 내가 그랬듯이, 당신이 타고난 초능력으로 차이를 수용하라.
                                                                                                                                                                                           -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카밀라 팡, 푸른숲-


글이 좋아서 카운터에 놓여있던 포스트잇과 볼펜을 가져와 옮겨 적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필담을 나누면 되겠네. 비록 이곳에서 시를 읽어주며 함께 나눌 순 없겠지만, 포스트잍에 쓰는 필담이 서로를 연결시켜 줄 수 있겠다.'   


다음은 그렇게 해서 쓰인 필담이다.



# 시와 필담 1  

인생이란……기다림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인생이란……기다림.
리허설을 생략한 공연.
사이즈 없는 몸.
사고가 거세된 머리.

내가 연기하고 있는 이 배역이 어떤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역할은 나만을 위한 것이며,
내 맘대로 바꿀 수는 없다는 사실.

무엇에 관한 연극인지는
막이 오르고, 무대 위에 올라가야 비로소 알 수 있다.

인생의 절정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는 늘 엉망진창이다.
주어진 극의 템포를 나는 힘겹게 쫓아가는 중.
즉흥 연기를 혐오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임기응변으로 상황에 맞는 즉석 연기를 해야 한다.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사물의 낯설음과 부딪쳐 넘어지고 자빠지면서도.
내 삶의 방식은 언제나 막다른 골목까지 매몰려 있다.
내 본능은 어설픈 풋내기의 솜씨.

긴장 탓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그럴수록 더 큰 모멸감이 되돌아올 뿐.
정상 참작을 위한 증거들이 내게는 오히려 잔인하게만 느껴진다.

한번 내뱉은 말과 행동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법,
밤하늘의 별들을 미처 다 헤아리지도 못했다.
서두르고 덤벙대다가 잘못 잠근 외투의 단추처럼
갑작스런 돌발사태가 빚어낸 안타까운 결과.

어느 수요일 하루만이라도 미리 연습할 수 있다면,
어느 목요일 하루만이라도 다시 한번 되풀이할 수 있다면!
하지만 금요일이 되면 벌써 새로운 시나리오 작가와 함께 어김없이 나를 찾는다
그러곤 묻는다 - 자, 모든 게 이상 없죠?
…… 중략
251쪽 <인생이란……기다림>. 이 시에서 한참 내 눈과 마음이 머뭅니다. 어렸을 적, 이렇게 생각하곤 했어요.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고, 내가 잠자는 동안 내 가족, 내 주변인이 모두 모여 다음 날 계획을 위해 함께 회의를 한다고.

지금도 잠이 안 오는 날에는 생각하곤 해요. ‘이 모든 것이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난 절대자인 신 앞에서 열연하는 한 명의 배우다. ‘4연, 6연, 7연이 정말 와닿네요.



# 시와 필담 2  

선택의 가능성
Mozliwosci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영화를 더 좋아한다.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바르타가아 가의 떡갈나무를 더 좋아한다.
도스토옙스키보다 디킨스를 더 좋아한다.
인류를 더 사랑하는 나 자신보다
사람들을 사랑하는 나 자신을 좋아한다.
실이 꿰어진 바늘을 갖는 것을 더 좋아한다.
초록색을 더 좋아한다.
모든 잘못은 이성이나 논리에 있다고
단언하지 않는 편을 더 좋아한다.
예외적인 것들을 더 좋아한다.
집을 일찍 나서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의사들과 병이 아닌 다른 일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한다.
오래된 줄무늬 도안을 더 좋아한다.
시를 안 쓰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보다
시를 써서 웃음거리가 되는 편을 더 좋아한다.
....... 중략
난 297쪽 '선택의 가능성'입니다. 이 분 영화를 더 좋아하시네요. 난 영화, 드라마가 판타지에 푹 절어 있고 결말을 향해 급히 달려가는 게 별로던데. 난 소설을 더 좋아해요. 고양이 좋아하시네. 그건 같네요. 단언하지 않는 걸 좋아하고, 시를 써서 웃음거리가 되는 편을 좋아하고...

이런 이상한 할머니 대열에 나도 곧 합류할 거예요. 기나긴 별들의 시간보다 하루살이 풀벌레의 시간을 좋아하는, 좀 까다롭고 예민하고 독특한 할머니. 한 사람이 평생 쓴 시들을 다 보게 되니 엄청 풍성한 느낌을 받아요.

오늘 3시간, 크나큰 선물이네요.



# 시와 필담 3  

찬양의 노래 (Wiersz)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그는 이 세상에 단 한 번 존재했었다. 그리고 0이라는 숫자를 생각해 냈다.
이름 모를 어떤 나라에서. 오늘날엔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를 미지의 별빛 아래서.
누군가 서약을 했던 무수한 나날들 중 어느 날에.
심지어 그 위대한 발견에 반대한 사람의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았다.
오로지 0이라는 개념 말고는.
인생에 대한 고귀한 철학이나 명언은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어느 날 장미 꽃잎을 따서 0의 모양을 새겨 넣었다든지,
그 장미를 엮어서 꽃다발을 만들었다든지 하는 전설 따윈 없었다.
죽을 때가 되자 백 개의 혹이 달린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갔다든지,
원시림의 야자수 그늘 아래서 잠들었다는 신화도 없었다.
...... 중략

마침내 고요가 그를 덮친다, 목소리에 아무런 상처도, 흉터도 남기지 않은 채.
부재가 수평선의 형상으로 탈바꿈했다.
0은 그렇게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철학, 명언, 신화, 동화도 남기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각양각색의 모습을 훌훌 털어버리고 목소리에 상처도 흉터도 남기지 않은, 운명에 맞서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위대한 인간이 어쩌면 평범한 우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0'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씩씩이, 옹달샘이 고른 시에 이름을 붙여두고 싶네요. 시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하루라도.


설기가 일정이 있어서 먼저 자리를 떠났다. 그러고 보니 설기와는 필담을 나누지 못했다. 아쉽고도 미안했다. 다음 날, 카톡으로 북카페 소감을 물어봤다. 그러고 보니, 카톡도 필담?



# 북카페 소감


폰을 반납하고 나니 2시간, 책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어 좋았어요. 집에서도 휴대폰에 자물쇠를 채워놔야 하나. 아이들도 핸드폰을 반납하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게 정말 중요하겠구나 싶었습니다.



다음에는 꼭 시를 읽어주리라.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자신의 뜻대로 하기를 좋아하는,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을 좋아하는 설기가 어쩌면 시까지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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