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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농 Oct 27. 2024

이우학교 학부모로 산다는 것

나는 계속 머물고 있는가?

고 3 시 수업 시간,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어요.
"<머물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학생들이 일제히 뭐라고 대답한 줄 아세요?
"스테이."
수업은 가까스로 이어졌지만, 수업이 끝난 뒤에는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어요.

'머물다는 것은 뭘까?'

한참이 지난 뒤,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머물다>는 <흐른다>와 결국 같은 게 아닐까, 라고.

여러분은 어떤 추억에 머물고 있나요? 머물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머물다>는 자칫하면 <고인다>와 같은 의미가 되어버릴 수 있는데,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는데,
지구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데,
내가 그것들과 함께 머물려면
나도 결국 함께 흘러야 머물 수 있는 게 아닐까?

여러분은 어떠세요?
여러분은 계속 그 기억과 함께 흐르고 있나요?
계속 변하고 있나요?
20년 전의 그 기억이 여러분을 호출하고 있나요?
그래서 20년 전의 기억이 여러분 곁에 계속 머물게 하고 있나요?

                   _ 2024년 이우학교 20주년 기념 학부모축제, 김지용 교장선생님 전언>

스티브 잡스와 어느 노조위원장을 닮은듯한 김지용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내겐 선물이었다.


 지난 7월부터  학부모축제 준비 기간이 시작되었다. 올해 나는 학부모임원을 맡게 되었는데, 해치운 많은 일들 가운데, 학부모축제 준비위원은 가장 어렵고도 큰 일이었다. 세 달 동안 일주일에 한두 번 퇴근 후, 왕복 3시간 대중교통을 이용해 회의에 참석하는 일, 우리 반 학부모들에게 지속적으로 축제 홍보를 하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 공연 연습하는 일 등등. 그러나 제일 힘든 일은 학부모축제가 갖는 의미를 내 속에서 찾는 일이었다.

어린이집, 초등 방과후를 공동육아 조합원으로 살아온 내게, 의무가 아닌 자율 참여로 운영되어 온 이우학교 학부모 역할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표였다.

공동육아 조합원은 역할과 책임이 균등하다. 모두가 한 번은 이사를 맡아 조합을 운영해야 하고,  어떤 역할이든지 돌아가며 맡거나 모두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 이러니 조합 생활을 할수록 공동체 소속감은 커져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우학교는 현재 그렇지 않다. 입학 전, 3 주체로서 학부모 역할을 숙지하고, 학부모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고 들어왔지만, 막상 들어오니, 학부모의 절반 정도는 전혀 참여하지 않는다. 학부모축제도 마찬가지. 축제 당일에도 준비한 사람들로만 북적북적. 우리 반만 하더라도 절반이 축제에 오지 않았다. 상한 마음이 점점 커졌다. 그때 축제를 마무리하는 교장선생님 말씀은 내게 선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이우학교를 알게 되었다. 2살 된 쌍둥이들을 재우고, 집 근처 카페에 가서  <굿바이, 사교육>이란 책을 읽었는데, 거기에 이우학교 (전) 교감선생님 글이 실려 있었다. 그 글을 읽으며  '우리 아이들이 이 학교에 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상상하며 가슴 벅차게 느꼈던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

(약 10년 후, 이우중학교에 쌍둥이 둘 모두 입학원서를 넣었다. 추첨에서 아들은 안타깝게 떨어졌지만, 딸은 감사하게도 운좋게 합격하였다.)


지금의 나는 그 기억에 머물러 있는 걸까?

13년 전의 그 기억이 지금의 나를 계속 호출하고 있는 걸까?

나도 그 속도에 맞게 흐르고 있다고 자신 있게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학부모축제를 준비하며 투덜투덜거렸다.

다시 힘들게 반복될 학부모 임원으로서 삶을 걱정하며, 이우고는 생각도 하지 말라며, 딸을 다그쳤다.

자녀들을 학원에 보내는 친구들, 주변 사람들을 보며 내 마음이 흔들린다.

고등학교는 일반고에 가서, 입시경쟁의 삶을 살아도 무난하지 않을까, 지금도 갈림길에서 헤맨다.


아, 13년 전의 기억에 머물고 싶다.

이 글을 쓰며 13년 전의 기억이 나를 호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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