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보면 멈출 수 없다는 <오징어 게임>이 너무나 보고 싶었다. 아이들 자는 틈을 노리다 늦은 밤에 혼자 보았다. 전 세계가 열광한다는 소식에 한껏 기대하고 보았어도 압도당할 만큼 푹 빠졌다. 멈출 수 없을 만큼 정말 재미있었는데 한 회가 끝날수록 심장이 쫄깃쫄깃했다. 겁쟁이 쫄보인 내가 게임에 참가한 456명 중에 한 사람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게임. 운이든 실력이든 속임수이든 단 한 번의 기회로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설정이 무서웠다. 적나라하게 사회의 구조를 드러낸 드라마가 재미있었던 만큼 마음이 아팠고 집중했던 만큼 오싹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이 죽을 때마다 잔인하게 느껴졌는데 나중에는 잔인하게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죽음에 무뎌진다는 게 더 무서웠다. 드라마와 삶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질 때마다 난 얼음이 되었는데 적막하게 내려앉은 밤의 분위기에 꼼짝하지 못할 만큼 겁에 질렸다.
후유증이라면 후유증이랄까. 정주행한 뒤에 왠지 무기력했고 세상이 무서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게임 초반부터 졌을 거 같은 내 환영이 뒤따라서 그런가. 강자 앞에서 절대 맞서지 못했을 거 같은. 머리를 써서 넘어가지 못했을. 지극히 평범하면서 인간적이고 살기 위해서 교활한 기훈(주인공)에게 나와 비슷하다고 희망 걸지만 장담할 수 없음에. 인물들에 나를 대입하고, 나의 위치를 대입하며 또, 사람에 대한 신뢰를 어디까지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며 머릿속이 꽉 찼다. 마지막 부분에 일남과 기훈이 내려다본 장면처럼 아주 오래 전 내가 고등학생 때 일이 생각났다. 실제로 늦은 밤 추운 겨울 골목길에 주차된 차들 사이로 술에 취한 남자가 잠들어 있는 걸 발견했다. 경찰서에 전화했었는데 추워서 얼어 죽을 거라는 생각은 미처 못했고 추운 길바닥에 잠들어서 입 돌아가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었다.
여하튼 한 번은 꼭 보았을, 봐도 좋았을 드라마였다. 그런데 부작용이 생겼다. <오징어 게임>에 빠져서 헤어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난 아직 탈출에 성공하지 못했다. 밤에 혼자 느꼈을 공포가 불쑥불쑥 떠올랐다. 난 엄청난 겁쟁이 쫄보라서 그렇다. 피곤해서 의자에서 잠깐 꾸벅꾸벅 졸았다는 남편이 자야겠다고 했을 때 나는 남편에게 아이처럼 말했다. 혼자 있기 무섭다고.
남편은 내 말을 가만히 듣더니 침실에서 노란 이불을 꺼내온다. 거실 소파에서 잠이 들어도 내 옆에 있어주려는 마음. 왜 잠을 안 자냐고 다그치기보다 옆을 지켜주려는 마음. 무엇보다 잠이 중요한 남편인데 거실에 환한 불빛마저 불사하는 마음. 남편이 덮고 자는 노란 이불을 보자 딱딱하게 얼음이 되있던 마음이 녹아진다. 그런 남편의 손을 잡고 오징어 게임 세트장을 탈출할 수 있었다. 초저녁에 낮잠을 잤지만 왠지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이.
일상을 살아가는 힘은 노란 이불 같은 작은 마음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