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 있는 Oct 09. 2021

초파리의 존재 이유


 모기보다 더 귀찮은 녀석이 있다. 바로 초파리. 모기는 약을 피울 수 있는데 초파리는 속수무책이다. 약도 따로 없고, 검색창에서 알려주는 퇴치방법은 효과가 떨어지고 좀 귀찮다. 음식 찌꺼기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귀신같이(?) 스멀스멀 초파리가 날아든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공격성 제로에 위화감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손바닥으로 내리쳐서 죽일 수 있는 유일한 해충. 롤러장에 연인을 찾는 젊은이들처럼 초파리들의 롤러장인 쓰레기통에 다들 모여있다. 서로 엉켜붙은 것들도 있다. 나는 전기채를 든다. <오징어 게임>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게임을 초파리 상대로 할 수 있다. 움직이면 쏜다! 초파리를 상대로 전기채를 휙휙 휘두르면 ! ! 소리를 내며 초파리가 맥없이 쓰러진다. 우후후, 난 초파리 킬러! 인정사정 없이 잔혹한 아주 무서운 녀석이지.


 헛스윙을 날릴 때도 많다. 분명 눈앞에 있었는데 둔갑술을 써서 금새 사라지는 녀석들. 미스테리하다. 초파리를 없애기 위해선 초파리가 생기는 근원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초파리가 무에서 유로 창조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봉지 안에서 갑자기 나타난다고. 내가 그 말을 순진하게 믿었던 건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었는지 슬그머니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는 그랬다. 달걀껍데기에서 생겨난다고. 진짜 달걀껍데기밖에 없는데 초파리가 날아다니기 때문에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시거나 단 냄새를 맡고 초파리가 외부에서 유입되거나 열매에 알이 붙어 있다가 생겨난다고 한다.


 ‘초파리’를 검색하니 초파리(Drosophilidae)가 ‘이슬을 좋아한다’는 뜻의 그리스어로 유래했다고 한다. 이슬? 초파리 주제에 이슬? 내가 아는 초파리는 단맛과 신맛에 환장하는데. 파리보다 초짜 같이 생긴 초파리가 고상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니. 세상에는 이해되지 않는, 알 수 없는 왜곡된 사실이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게다가 한 번 번식하면 수백 개의 알을 낳는다니. 고작 초파리에게 내 감정이 휘둘릴 순 없지만 결코 만만하게 보면 안 되는 녀석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득 깨끗한 이슬을 찾아다니는 초파리를 상상한다. 공기 중에 있는 수증기가 응결된 것이 이슬이라고 하는데 공기 중에 떠다니는 이야기가 응축된 곳을 나도 찾아다닐 수 있다면. 가장 맑게 담아낸 이슬에게 진수를 길어 올릴 수 있다면. 끈질긴 생명력과 둔갑술로 여러 이야기를 뽑아낼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잠시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막걸리와 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