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책방 다섯 군데가 모여서 가을 행사를 했다. ‘책 읽어주는 동네 책방’이라는 주제로 ‘동네 책방이 사랑한 책’을 전시하고, 매주 토요일마다 서점이 돌아가면서 서점 주인이 선정한 책을 읽고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각 서점마다 특색이 달라서 역사, 에세이, 동화, 사진, 인문사회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진 책으로 지식을, 생각을, 감정을 나누었다.
도도봉봉 서점에서 『감처럼 무르익고 싶어』 책으로 낭독회를 가졌다. 올해 유일하게 책을 출판한 동네 책방이었다. 열 명쯤 모여서 내가 쓴 글을 읽는다니. 특별한 경험이었다. 처음 보는 이들과 공유한다는 건. 우리의 삶에 대한 소소한 화두를 던져보고, 나눔 정도로 예상하여 따로 준비할 게 없었다. 사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긴장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간단하게 내 소개를 마치고, 한 시간 반 동안 여섯 편 정도의 글을 나누었는데 그중에 ‘전, 업(業)주부’라는 글을 나누었다.
그 글을 같이 읽고 싶었던 건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여자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공감하고 싶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라고, 평범한 일상이지만 우리는 부단히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 글을 한 문단씩 돌아가면서 읽었다.
글이 끝나자마자 딸을 데려온 남자분이 말씀하셨다. “전업주부를 하찮게 여기는 게 잘못된 거 아닌가요? 전 아이를 키우면서 한 번도 힘들다고 느낀 적 없는데요.” 생각지 못한 타격에 순간 당황스러웠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말 다음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분은 말을 계속 이어가셨다.
“저는 50대 50으로 같이 집안일을 합니다. 아내도 저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그분은 내가 글을 쓴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
“하찮다고 말한 적 없어요.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들다는 얘기도 없었고요. 밥 먹는 것처럼 중요한 일을 전담하는 전업주부가 별다른 성과가 없고, 실적이 눈에 보이지 않는 삶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각 가정마다 상황이 다르니까요.”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누군가는 엄마를 떠올렸고, 누군가는 아빠를, 또 누군가는 자기 자신을 이입했다. 자기만의 방식대로 이해하면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한 여자분이 남자분에게 말씀하셨다.
“아내도 만족한다면 할 말이 없네요. 하지만 다들 그렇게 살지는 않아요.”
나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동안 내가 잘못 쓴 건 아닌지 다시 글을 들여다보았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에 태클이 걸릴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전업주부를 하찮게 여기거나, 비하한 적이 없기에 오히려 그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밥 먹고 사는 일이 매일 밀착된 것처럼 전업주부의 삶을 드러내고, 대우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의도와는 달리 그분은 자신의 삶을 기반으로 자기만의 논리를 펼친 건 폭력이었다. 그분은 책방 주인 중 한 분이었다. 모임의 절반을 차지한 책방 주인들은 감성보다는 이성과 분석, 날카롭게 비판하려고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지식인 같은 그들이 자신만의 폭으로 이해한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꼭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한 번도 힘들지 않았다는 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이 튕겨지는 말이다. 아이를 키우는 게 어떻게 힘들지 않단 말인가. 보호자의 한계와 힘듦, 탈진, 분노, 화해 등 복합적인 감정이 한데 어우러져 한 인간이 자란다고 난 믿는다. 완벽한 부모가 아이를 키우면 그 아이는 분명 미쳐버릴 것이다. 사람은 입체적이기 때문이다. 한마디 말로 명시할 수 없는, 너무나 복잡해서 한 인간을,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살아가는 게 우리네 인생이 아니던가.
최근에 동아리 모임이 있었다. 워킹맘으로 일하는 여자들 속에서 난 혼자 전업주부였다. 무슨 일을 맡는 데 있어서 다들 바쁜 눈치였다. 직업이 선생님인 한 분이 내게 “전업주부니까 시간이 많잖아. 그러니까 자기가 해”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두 번씩이나 내뱉었다(그 말은 침을 뱉은 것처럼 내뱉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도 나는 당혹스러웠다. 직장 다니는 사람만이 바쁘고 열심히 살아가는 특권처럼 생각하는 사고방식에 대해서 기가 찰뿐이었다. 나의 일상을 얼마나, 어떻게 안다고 그런 말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툭툭 내뱉는 것인가.
그분에게 그렇게 말하는 건 상대방에게 무례한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난 전조등처럼 머리가 하얘졌고 그 순간을 모면하듯 외면해버렸다.
나도 내가 이해하고, 살아가는 선 안에서 사람들을 판단할 때가 많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난 여자가 가진, 특히 전업주부가 가진 권리를 주장하고 싶은 게 아니다. 다만 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좀 더 신중하고 맥락을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는 걸 말하고 싶다. 어떤 현상과 결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저마다 삶을 살아내고 있으니까. 그게 사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