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그릇 어루만지기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최근에 쓴 글이 오마이뉴스에 실렸다. 오랜만이다. 재작년에 한두 편씩 열심히 글을 올리다가 편집장에게 퇴짜 맞은 적이 있었다. 약간의 불편한 감정이 오고 가면서 한동안 뜸했었다. 무안했던 감정이 희미해졌다는 듯 기사를 송고했다. 며칠이 지나 글이 채택되었다. 항상 그렇듯 내가 뭉뚱그려 쓴 제목보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고쳐져 있었다. 좌절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그 정도의 격한 감정은 아니었는데 한 사람이라도 클릭하려는 편집자의 꼼수에 나는 손 놓고 볼 수밖에 없다. 그래도 괜찮다. 채택이라도 되었으니 말이다.
글의 내용은 비건을 안 하는 내가 비건주의자를 만나 겪게 되는 이야기였다. 내가 비건을 할 자신이 없기에 그가 실천하는 일상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가 가진 신념과 의지, 살아가는 세상을 소개하고 싶었다. 비건주의자가 되자는 의견이 아니었다. 방송이나 책으로 비건과 동물권에 대한 이슈가 많았던 터라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을 줄 알았다. 내 경험담은 구태의연한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웬걸. 악플이 많았다. 100개가 넘는 댓글에는 글에 대한 꼬투리부터 시작해서 비건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동물혐오 등이 넘쳐났다.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드는 거 같았다.
2년 전 <오마이뉴스>에 기사가 올라갔을 때는 악플 때문에 시름시름 앓았었다. 원고료로 받는 돈의 가치보다 상처가 되는 말들이었다. 그래도 굳이 글을 올렸던 건 내 글이 우리 집 문턱을 넘어 대중을 만난다는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시민기자라는 자격으로 올라간 글은 전업주부에게 묘한 자긍심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재 뿌리는 댓글들이 달렸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하이에나들을 뿌리치기에는 호기심 때문에 지나칠 수는 없었다.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그들의 입장을 존중하려 했으나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선플에는 좋아요, 악플에는 나빠요를 눌렀다. 심한 악플에는 몇 번의 정제 끝에 코멘트를 달았다.
한 편의 글에 7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닿았다. 100마디 댓글에서 다양한 시선을 느꼈다. 아주 가끔, 때때로 선플에서 위안을 얻기도 하지만 악플 세례를 받은 글을 내가 왜 쓴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나는 사유한 경험을 던졌을 뿐이다. 그럼 혼자 사색하고 지나칠 생각의 파편들을 왜 글로 모아서 정리한 것일까. 처음으로 글을 쓰고 내보일 때는 단 한 사람이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그 한 사람을 위해서 쓰고 싶다고 쓴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난 글을 계속 이어가지 못했다. 한 사람의 입장을 대변할 용기도 힘도 없다. 난 쉽게 침묵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는 게 전부였더라면 악플을 참아야 했다. 하지만 아니다.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난 같이 싸웠다.
누군가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면 아주 큰 행운이겠지만 그저 난 인정받고 싶어서 글을 썼다. 살면서 크게 받지 못했던 인정을 글을 써서 받고 싶었다. 살림하며 사는 내가 글을 쓸 때만큼은 내 손에 들려진 마이크에 대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작고 평범한 내 목소리를 알아주기를 바랐다. 메인기사에 오르면 원고료로 환산되는 생산성이 좋았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손가락 표시에 설레었다. 사람들 앞에 서면 비지땀이 흘릴 만큼 내성적인 내가 말하고, 떠들고, 관계를 맺고 싶은 욕구가 글에서라도 전달되기를 바랐다.
사람들의 냉소와 비난, 무관심은 오히려 주눅 들게 한다. 인정으로 채워지지 않은 내 안의 그릇은 미세한 균열들로 금이 더 선명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오기도 생긴다. 인정받고 싶은 그릇이 산산이 깨어져야 나만을 위한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수없이 부딪히고 깨어져서 사람들의 소리가 잠재워졌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 나에 대한 믿음. 대단한 일이 아닐지라도 기록하고 썼다는 나에 대한 격려. 내가 나를 안다는 속삭임. 그렇게 내가 나를 알아가다 보면 그땐 나를 더 이해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 그래서 오늘도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