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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 있는 Oct 30. 2021

국제도서전이 뭐라고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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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이 없는 내 책은 도도봉봉 서점 또는 나를 통해서만 책을 구입할 수 있다. 판매처가 확실하니 책의 이동 경로를 대부분 알 수 있었다. 소량의 책을 인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책이 나온 지 한 달 동안 나는 책 배달을 다녔다. 책을 사주면 몸 둘 바 모르게 고마웠고, 또 책을 선물하게 되면 몸 둘 바를 모르게 기뻤다. 꿈같은 한 달이었다.


 간혹 책을 우편으로 보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지인들을 만났다. 그동안 고마웠던 분에게는 빚을 갚는 심정으로 책을 선물했다. 또 책을 빌미로 오랜만에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책이 나오고 웅크리고 있던 내게 용기 내서 불러준 사람들. 그때마다 책은 식사 이용권이 되었고, 선물 이용권처럼 쓰이기도 했다. 책을 사주는 게 너무나 고마워서 밥을 사거나 커피를 샀다. 또는 밥을 사주면 책을 선물로 드렸다. 글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고마웠기 때문이다. 홀로 글을 쓰던 시간이 위로받는 기분. 연락이 뜸했어도 생존 보고서 같은 글이 닿아지는 것 같았다.

 

 책에는 운명이 있다고 한다. 내 손에서 떠난 책들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책이 나오기까지 고마운 사람들을 언급하는데 나는 이 자리를 빌어 『감처럼 무르익고 싶어』 초판을 소장한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분들을 찬찬히 떠올리며 기억하고 싶다. 한 달 동안의 뒤풀이 같은 감사 후기다.


 먼저 브런치에 올려진 글을 가끔 읽으면서도 기념으로 책을 사준 동네에 의리 있는 언니들. 처음 연락 주고, 단숨에 읽어준 명옥 언니, 책이 태어난 걸 축하한다며 케이크를 선물해준 선희 언니, 수변공원에 데리고 가서 산책시켜준 영실 언니, 일부러 서점까지 찾아가 책을 사준 혜진 언니. 그녀들은 핫팩같이 따뜻한 맘씨를 가졌다. 뜨거운 눈빛을 발사할테니 내 마음을 부디 알아주기를.


 미국에서 책 읽다가 배꼽 빠지게(언니의 표현) 웃다가 울어준 우리 언니. 언니는 세상에서 제일 바쁜 사람인데 책을 읽고는 너를 몰랐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건네주었다. 사랑하는 막내 고모는 글이 자신과 너무 비슷하여 자신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고, 백신 맞고 후유증이 책 읽으면서 웃느라 싹 나았다고 하셨다. 내게도 백신 같은 이야기였다. 나를 위한 동백꽃 차와 아이들을 위한 과자 꾸러미를 보내준 나를 닮은 아이, 혜숙이가 선물을 보냈다. 홍성에 사는 수수와 톨스토이. 지난 달력 종이로 소담스럽게 싸인 콩깍지와 호박고구마, 요거트가 든 상자를 받아 들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할 만큼 얼마나 벅차오르던지. 너무나 소중해서 아껴 먹었는데 특히 호박고구마는 맛이 끝내줬다. 내게 굳이 말하지 않고 추가로 책을 구입해주고. 왜 그렇게 멋진 건지. 끝까지 간지 나게.


 영원한 친구들 왕십리 불나방 4인방이 모여서 곱창을 먹었고, 동역자인 정규 언니, 은경 언니와 브런치 카페에서 근사한 만찬을 대접받았다. 여운이 오래 남았다. 예전에 다니던 출판사 팀장님을 오랜만에 만나서 회포를 풀었는데 헤어진 지  시간도 안 되어서 책을 다 읽어낸 초능력자 같은 분. 앞으로 또 만날 수 있는 물꼬가 트인 거 같아서 좋았다.


 책은 날개가 달린 것 같았다. 평소 범접할 수 없었던 담임목사님, 교구 목사님을 만났다. 하도 죄가 많아서 눈도 못 마주치고 절절매는 내게 기도를 해주셨는데 ‘꽃은 두려움으로 피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겨주셨다. 나의 첫 글쓰기 선생님, 바람을 만나서 알맹이 같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날 바람이 날 아끼는 마음에 갑작스레 은유 작가님에게도 책을 전달하게 했다. 바람은 은유 작가님의 글쓰기 수업 보조작가인데 마침 우리가 만난 날이 글쓰기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은유 작가님에게 사인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내가 사인한 책을 전달하다니.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얼굴은 빨개지고 횡설수설할 정도로 떨렸다. 동아리에서 독서심리상담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은 돈을 주고 책을 사야 영혼이 보인다는 말을 하시면서 다짜고짜 돈부터 주셨다. 우연히 취재에 나갔다가 자서전을 쓰기 시작하는 어머니들이 참고하고 싶다고 책을 사 가기도 하셨다.


 마지막으로 도도봉봉 서점에서 책이 생각난다며 다시 돌아와 책을 사준 이름 모를 의정부 사는 신혼부부, 국제도서전에 기적처럼 책을 사가신 선물 같은 분들, 그때 처음 만난 수빈님, 같이 수업 듣던 고마운 학인 분들, 브런치에서 보고 어찌 사주신 달팽이님, 미처 내가 다 알지 못하는 고운 꽃잎 같은 분들까지도. 벤댕이소갈딱지 같은 나는 소량의 책을 찍어서 2쇄를 찍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책을 산다는 건, 신중하고 번잡스러운 일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시간을 내어주는 일이고, 책꽂이에 자리도 차지하기 때문이다. 책값을 받을 때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부끄럽다. 오늘 충동구매로 사 먹었던 공갈빵 같은 호떡이 4개에 만원이었는데 엄청 비싸게 느껴졌던 것처럼 내가 쓴 책도 속이 텅 빈 공갈빵처럼 느껴지는 건 아닌지, 쉽게 부서지는 건 아닌지, 머뭇거리게 된다. 그럼에도 나는 이 모든 만남에서 애정을 느끼고 말았다. 서로 만났던 시간과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만남을 가지면서 사실 책은 그들 앞에서 사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책은 만나기 위한 수단으로 거들었을 뿐 그들이 가진 진가를 마음으로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은, 꼭 만나고 싶은 사람들로 채워진, 내 손을 잡아주었듯이 나도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싶은 사람들을 알아가던 시간이었다. 책의 운명처럼 또 새로운 인연이 닿아지기를, 이어지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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