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비밀이 생겼다. 연필로 글자를 또박또박 쓰던 어린 시절, 언니가 예수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였다. 나를 사랑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어린 내가 들어도 다이나믹하고 극적인 사건이었다. 목숨을 건 그분의 사랑 이야기가 귀에 파고들면서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그 사랑에 감격하여 나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싶었다. 진심을 다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글자가 틀리면 지우개로 박박 지우면서 정성껏 적어 내려갔다. ‘예수님 믿을래요. 이제까지 예수님 모르고 살아온 것을 용서해주세요. 부모님이 불교를 믿어서 당장 교회에 나갈 수 없지만 다시는 배신하지 않겠어요’라는 예수님을 향한 의리가 다분히 묻어나오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책상의 첫 번째 서랍 깊이 넣어두었다. 그 서랍장은 왕보석 목걸이, 예쁜 엽서, 사진 등 열어보면 마음이 반짝이는 보물들이 들어있었다. 시간이 흘러 열어보았는데 그 편지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나는 직감했다. 예수님이 진짜 가져가셨구나.
그렇다고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은 건 아니다. 아빠가 장남이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부모님의 이야기는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현실의 무게처럼 느껴졌다. 사랑하는 부모님을 거역하는 일은 마음 아픈 일이었다. 예수님을 전하는 언니는 부모님에게 자주 혼이 났다.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예수님을 믿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뭔지 몰라도 그 아이들에게서 귀티가 나는 것 같았다.
언니는 예수님을 만나고 점점 변화되기 시작했다. 얼굴도 밝아지고, 마음도 따뜻해지고, 무엇보다 날 사랑해주었다. 언니는 내가 힘이 들 때 같이 울고, 기쁜 일이 생기면 나보다 더 기뻐해주었다. 밤에 쥐가 나서 악 소리도 못 지르고 절절 매면 자다 깬 언니가 다리를 주물러주었다.
언니는 밤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예수님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의 수치심을 감싸주신 이야기, 히스기야가 기도해서 해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나 지금도 과학자들이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 등. 언니가 부모님 몰래 교회를 다니면서 들은 말씀을 어미 새가 새끼 새에게 먹이를 물어오듯 말씀을 나누어주었다. 어떤 이야기는 따스해서 안심했고, 또 어떤 이야기는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했다. 점점 하나님을 만나고 싶었다.
중학교 3학년 겨울, 친구들에게 마음이 너덜너덜 지쳤을 때 예수님은 찾아오셨다. “예수님, 만나주세요. 저 기억하시죠? 이제 정말 교회 다니고 싶어요.” 예수님께 무릎 꿇고 기도했다. 언니가 믿고 알던 예수님이, 이제는 나의 예수님으로, 나를 사랑하신다던 예수님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믿음의 고백이 단단히 마음에 자리 잡자 내가 알던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현실은 달라진 게 없는데 웃음이 많아졌고, 친구를 용서할 수 있었고, 마음 깊은 곳에 평안이 다가왔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한다는 게 믿어졌다.
‘예수님, 안녕하세요?’로 시작하는 나의 기도는 형식도, 체계도 없이 예수님을 찾았다. 어두운 밤거리를 걸을 때도, 이해되지 않는 문제에 끙끙거릴 때도 예수님이 떠올랐다. 언니를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인격적인 분이신지, 얼마나 능력이 많은 분이신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교회를 처음 다녔을 때부터 친구는 가정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복음화가 고구마로 들려서 ‘가정의 고구마’가 무엇인지 한참 고민했다. 친구들은 뜨겁게 기도했지만 나는 고구마를 위해 기도하지 못했다.
누군가를 전도하는 일은 참 어렵다. 더구나 가족을 전도하는 일은 더 어렵다. 부모님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신다. 내가 아는 전도는, 언니가 날 사랑해주었듯이 그분들을 사랑하는 일이다. 일상에서 그분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분들의 눈높이에서 예수님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일이다. 내 힘으로 되지 않는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할지 모르겠다. 고구마처럼 속이 꽉 막힐 때도 있지만 언젠가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바라고 기다리고, 기도하는 일. 그리고 사랑의 힘을 믿는 일. 그것이 내가 아는 복음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