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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 있는 Jun 06. 2022

비에 젖은 떡은 처음입니다


 6월 6일 현충일은 우리 가족에게 월남에서 돌아가신 큰 외삼촌을 기리는 날이다. 5남 1녀 중 맏이였던 외삼촌은 열아홉 살에 월남전에 입대해 스물한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셨다. 삼촌은 일 년 넘게 전쟁터에 계시다 수송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지뢰를 밟았다고 했다. 전쟁은 살아서 돌아온 자와 죽은 자를 나누었다.


 외할머니는 마흔넷에 큰아들을 잃었다. 집안의 기둥이 사라졌다. 외할머니가 큰아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일 년에 한 번, 동작동 현충원에 아들의 이름이 새겨 있는 묘비를 찾아가 그의 곁을 지키는 일이었다. 평소 감정 표현을 아끼시는 외할머니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셨다. 한 번 앉은자리에서 떠나지 않으시고, 아무것도 드시지도 못하고, 차디찬 묘비를 쓰다듬으셨다. 하얀 모시를 입은 외할머니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외할머니는 절뚝거리는 몸을 이끌고, 지팡이를 짚고,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큰아들을 보러 52년을 한결같이 참석하셨다. 큰아들을 보러 오는 것이 생의 의미이자 의지였던 외할머니가 작년 이맘때 98세로 생을 이별하셨다.


 현충일은 항상 더웠다. 묘지가 빼곡하고 촘촘히 세워진 현충원에 그늘이 없어 불볕더위로 얼굴이 시뻘겋게 타올랐었다. 땀에 절어 끈적끈적했다. 미세먼지와 황사가 심해서 하늘이 누렇게 뜬 날도 있었다. 코로나가 극성일 때는 인원을 미리 예약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엄마에게는 사랑했던 오빠를 위해 현충일은 꼭 지켜야 하는 가족 행사였다.


 오전 10시가 되면 대포가 터진다. 심장을 관통하는 소리를 들으며 묵념하고 눈을 뜬다. 대포에서 나온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묘지를 뒤덮었다. 어렸을 때는 대포 쏘는 모습을 보러 구경 간 적도 있었다. 두 손으로 귀를 막아도 귀청이 떨어질 것 같았다. 역대 돌아가신 대통령들의 묘지를 찾아가기도 했다. 외할머니에게는 큰아들의 그리움을 달래는 날이었지만 나는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나고, 현충원을 둘러보는 자리이기도 했다.


 외할머니가 건강하게 계실 때는 6남매가 모여 손주, 손녀들까지 4대가 모였다. 많으면 30명이 넘는 친지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엄마는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제사드린 후에 친지들과 둘러앉아 점심을 나누셨다. 커다란 수박을 나눠 먹고, 고급 과일이라고 산 체리를 같이 먹었다. 어른들은 잔디밭에 앉아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은 잔디밭을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친지들이 그날만큼은 큰외삼촌을 기억하며 애틋한 마음을 나누었다. 그렇게 우리는 내년을, 또 후년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는 게 바빠지면서 식구들은 하나둘 종적을 감추기 시작했다. 친지들이 전처럼 모이지는 못했다. 나도 안 갈 수만 있다면 안 가고 싶었다. 이제는 외할머니도 볼 수 없고 친지들도 오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제사음식을 간소하게 싼다고 해도 연세가 70이 넘으신 부모님의 걸음으로는 벅차실 거 같아서 새벽부터 길을 따라 나섰다. 올해는 부모님과 셋째 외삼촌, 나와 남편, 다섯 명이 참석했다. 소란했던 만남이 조용해졌다. 여자화장실을 가려면 줄이 너무 길었는데 어느새 한산해졌다. 현충원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현저히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올해 67회인 현충원에는 양산이 아닌 우산을 든 건 처음이었다. 가뭄이어서 비를 기다렸던 이들의 마음을 식히듯 반가운 비가 내렸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손을 잡고 현충원을 다닌 지 40년이 넘었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현충원은 난생처음이었다. 엄마가 준비한 떡과 김치, 밥과 과일, 고기와 생선은 비에 젖었다. 우리는 우산으로 음식을 바치고 있었지만 계속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돗자리에 빗물이 젖어 들었다. 우리는 먹지 못하고 음식을 다시 가방에 쌌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우리는 서둘러 철수했다. 신발과 양말이 빗물에 흥건히 젖었다. 외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그런지 빗방울이 외할머니의 눈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아들과 함께하는 어머니의 기쁨의 눈물일지도 모른다고 믿고 싶었다. 비가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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