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아래 작은 마을을 좋아한다. 둘레길로 이어지고, 닭장도 있고, 쭉 뻗은 소나무 숲과 냇물이 흐르는 곳. 빠르게 변화되지 않은 그곳을 산책하던 중에 어느 날 생긴 숲유치원을 보았다. 정말 감쪽같이 생긴 곳 같았다. 그곳에 이끌리듯 대책 없이 들어갔다.
백설 공주가 숲 속에서 길을 잃다 일곱 난쟁이의 집을 찾을 때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토마토와 상추, 배추 등 여러 채소와 과일이 자라는 텃밭, 커다란 나무에 걸린 통나무 그네, 산처럼 쌓인 모래사장, 아기자기한 소꿉놀이, 정글짐,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화목난로와 작은 책상들. 그곳은 정말 숲유치원이었다. 마침 숲유치원 개원을 축하하는 날이라고 떡도 받아먹고 그날 기쁨이와 귀요미는 실컷 놀았다. 난 그곳에 틈틈이 놀러 가서 김장도 돕고, 원장님을 위해 쪼그리(무릎, 허리가 아픈 농민들을 위한 의자)도 사드리는 등 인연을 맺었다. 안타깝게도 보석 같은 그곳이 공원 부지로 선정되어 전세로 겨우 자리 잡았던 유치원은 철거되었다. 쫓겨나듯 유치원은 사라지고 그곳에 작은 공원이 생겼다. 그게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오랜만에 숲유치원 원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아이들 대상으로 그림책 수업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목소리에서 그동안 고생하신 무게가 느껴졌다. 새로 자리 잡은 유치원은 인적이 드문 산 아래에 꼭꼭 숨어 있었다. 다시 시작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셨다. 기적이 필요한 곳처럼 보였다. 나는 준비된 게 없다며 고민해 보겠다고 연락을 끊었다.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림책으로 수업했던 건 고작 10년 전, 일 년 정도였다. 그때는 선생님도 여럿이었고, 초등학생 대상이었다. 손에 쥐어 든 무기 없이 나 혼자 준비하고 수업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감사한 제안이지만 자신이 없다고 말할 참이었다. 그런데 거절하기에는 뭔가 마음이 걸렸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끙끙 앓았다. 자신이 없다. 거절해야 한다. 무작정 시작하고 싶다. 내 일을 찾고 싶다. 꽁꽁 숨겨진 그곳에도, 이불속에 있는 나에게도 기적이 생겼으면 좋겠다. 나는 그림책 <딱 그날부터>에 나오는 아이처럼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꾸물거렸다. 이불에 파묻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며칠을 뒤척거렸다.
매일 산책하고 소소하게 밥을 차리는 일만으로 하루는 금방 사라졌다. 전업주부 집순이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일상이었다. 아내와 엄마로서 입는 앞치마가 익숙했다. 가족 울타리 안에서는 무언가를 크게 잘할 필요가 없었다. 욕심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의 미래를 크게 염려하지 않는다면 정말 괜찮은 것 같았다. 아이들이 성인이 돼서 떠나면 내 인생에 남은 것이 무엇일까?라는 생각만 불쑥 찾아오지 않는다면 말이다.
“나의 하루는 꼴딱 꼴딱 꼴딱 넘어가요. 제자리에서만 꽁꽁 벌 받는 것 같아요.”
- <딱 그날부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가 잃어버렸던 시간을 멈출 수 있을까. 내 완벽한(?) 일상에 빠졌던 중요한 한 가지, 나를 찾는 물음에 그림책이 대안이 되어줄 수 있을까.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한번 해보자. 제자리에서 동동거리지 말고 한번 가보자. 목소리가 탁 잠기고 머리가 헝클어진 채 나는 이불속에서 빠져나왔다.
한 걸음 용기를 내니 그때 마침, 지역센터에서 그림책 활동가 수업을 배울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예술 놀이 프로그램도 참여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학부모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 멘토링에서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생겼다. 그림책을 만나며 울고 웃었다. 작은 문의 빗장이 살며시 열리는 것 같았다.
딱 그날부터. 그림책이 온 그날부터. 난 달라졌다.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의 수업을 위해 손에 잡히는 대로 그림책을 읽는다. 4, 5, 6, 7세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여섯 명의 남자아이를 위해 수업을 준비한다. 말을 고르고, 체력을 단단히 하고, 맘을 굳게 먹는다. 아이들 앞에 서면 떨리는 목소리도, 흐려지는 말끝도, 장황하게 널브러지는 단어들도 달라진다.
다음 수업에 대해 가닥이 잡히지 않아 끙끙 앓다가도 그림책을 읽고 또 읽으며 나만의 수업을 만들어 간다. 최선을 다하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림책을 선정하고, 수업 내용을 구성하고, 놀이를 짜지만, 혼자여도 괜찮다. 아이들이 내 말보다 자기들의 말을 많이 떠들어도 괜찮다. 수업은 매번 예상과 달리 아찔하게 흘러가도 괜찮다.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유치원 문에 들어서면 아이들이 달려와 안아주기 때문이다. 말썽꾸러기 아이들이 내 진심을 알아주기 때문이다. 아이들 따라 자꾸 웃게 된다. 딱 그날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