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조계사에서 단기출가를 경험했다. 여러모로 뜻깊은 경험이라 기억으로 남기고 싶어 간단하게 적게 되었다.
1.
조계사에서 출가의식을 진행할 때, 대웅전 앞에 햇빛이 밝게 비추고, 바람은 선선하게 불고, 하늘에서 꽃잎이 떨어져 마치 나의 출가를 축하해 주는 것 같이 느껴졌다. 마치 법화경에서 상서로운 일을 묘사한 장면같이 세상이 화려하게 장엄되고 빛나고 있어서 낭만 그 자체였다.
내 자리는 센터여서 좋긴 했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언론 노출은 피할 수 없었다. 인터뷰 안 해서 좋아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신문기사와 뉴스영상에 얼굴이 이미 다 팔려 있었다.
2.
잠깐동안이었지만 성직자의 삶은 직업만족도 최상이었다. 학원에서 일한 이후로 오랜만에 내 적성에 잘 맞는 직업을 찾은 것 같았다. 하루에 4시간밖에 못 잤지만 오히려 몸은 가볍고 몸에는 에너지가 흘렀다.
하지만 역시 스님 노릇은 직업으로 못 할 것 같았다. 출가해서 내가 좋아하는 조계산 송광사에 들어가 수행하고, 신도분들한테 좋은 말만 하면 나 혼자는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았다. 하지만 과연 나에게 그것이 의미 있는 삶인 것인가 하는 내면의 물음에, 너무나도 빠르게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에 승복은 적합하지 않다.
3.
나를 바라보는 스님들의 눈빛이, 티는 내지 않으시지만 알게 모르게 따뜻하게 바라봐 주신 것 같았다. 평소 다니던 절의 스님께서 '내 얼굴이 순수해 보여서 스님들이 좋아할 얼굴 상이다'고 말씀해 주셨을 땐 그냥 듣기 좋은 칭찬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 말씀이 허황된 거짓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4.
단기출가생활을 같이 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문제를 절 속으로 들고 들어왔다. 그 싸움들의 공통적인 부분은 '나'라는 것을 이룬다고 믿는 것들을 철저하게 깨트리는 것이었다.
그 깨짐으로 인해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들도 있고, 오히려 멘탈이 박살 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라고 하는 허상이 이렇게 무서운 것임을 다른 사람을 통해 보니, 나도 저랬었구나 하고 과거 생각이 났다.
애초에 불교는 부처님을 믿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공부이다. 오죽하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라는 말도 있을 정도니까. 아마 멘탈이 나간 분들은 이번 기회에 큰 공부가 되었을 것이다.
5.
땡볕더위에 땀을 흘리면서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내 뒤에 앉으신 보살님께서 커다란 부채로 바람을 부쳐주셨다. 나는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날씨도 덥고 팔 아프시니 괜찮다고 말씀을 드렸다.
하지만 보살님은 불법(佛法)을 공부하는 젊은 행자님들께 바람을 부쳐드리는 거라면서 계속해 주셨다. 보살님도 덥고 팔 아프실 것 같아 다시 한번 괜찮다고 말씀드렸더니, 이 바람은 부처님께 공양드리는 것이니 부디 받아달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말씀을 듣고 내가 입고 있는 행자복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실감했다. 하물며 승복의 무게는 더 가볍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