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이 많이 피는 시기다. 대학 때 은사셨던 교수님은 '오늘은 꽃을 보며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날'이라고 하셨던 적이 있다. 꽃은 겨울이라는 긴 휴식기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듯 활짝 피어난다. 막 잠에서 깬 내 모습이 부스스한 것과는 달리 막 피어난 꽃에서는 생그러움이 묻어난다.
꽃놀이라면 달이 뜬 밤에 꽃이 핀 나무 아래 앉아 꽃내음을 맡으며 약간의 곡차(穀茶)를 마시는 것이 가장 꽃놀이다운 모습일 것이다. 이때 잔 안에 자그마한 꽃잎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달을 바라본다면 이 나름대로 풍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꼭 잔 안으로 꽃잎이 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즐기고 싶은 풍류는 잔 안에 들어있는 꽃잎과 곡차가 아닌 달빛과 꽃내음이 있는 밤이기 때문이다.
봄에는 소동파가 쓴 춘소일각치천금(春宵一刻値千金)을 많이 인용하는데, 이제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겠다.
春宵一刻値千金 (춘소일각치천금)
봄 저녁의 짧은 시간은 천금과 같아
花有淸香月有陰 (화유청향월유음)
꽃내음 그윽하고 달빛은 그늘이 있네
歌管樓臺聲寂寂 (가관누대성적적)
음악이 흐르던 누대는 고요하고
鞦韆院落夜沈沈 (추천원락야침침)
그네 있는 안뜰엔 밤이 깊어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