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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 Green Grads Oct 25. 2021

기숙사 조교표 집밥: 1달러의 아침

Breakfast for a Buck

아래 글과 어느 정도 이어지는 글이므로, 아래 글을 먼저 읽고 읽으시면 더욱 좋습니다!


고학년 UGA는 꿀알바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정말 외로운 아르바이트이다.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입생 UGA는 이런저런 귀찮은 의무가 많지만 그 의무 덕에 자신의 담당 학생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은 반면, 고학년 UGA는 보통 담당 학생들에게 있으나 없으나 한 NPC같은 존재이다. (실제로 고학년 학생들 중에는 자신의 담당 UGA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꽤 많을 것이다.) UGA에게 담당 학생을 기숙사에서 퇴실시킬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방에서 술을 마시거나 마리화나를 피우는 학생들의 경우 UGA는 어쩐지 학교 측의 프락치 같고, 괜히 피하고 싶은 존재이기도 하다. 


UGA의 고용주(?)인 Office of Residential Life는 모든 UGA가 일주일에 15-20시간 정도 일할 것을 기대한다고 한다. 물론 실제로 그 정도 일을 하는지 체크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매 학기 초에는 이런 고용주의 기대에 어느정도 부응할 수 있다. 누구보다 먼저 기숙사에 도착해 각 방을 체크하고, 호실마다 개성있는 디자인으로 학생들의 네임태그를 만들어 붙히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메일을 작성해 담당 학생들에게 돌리고, 학생들이 무사히 자신의 방에 입실했는지 여부를 방문해 확인하고, 방에 문제가 있는 경우 중재 역할을 해야하기에 그래도 "일을 한다"는 느낌이 든다.  


(기숙사에 처음 입성한 학생들을 반겨주는 아기자기한 네임태그는 모두 UGA의 작품이다)

나는 내가 1학년 때 내 담당이었던 UGA인 미나 선배가 했던 것처럼, 방문 앞에 작은 바구니를 두고 캔디와 콘돔을 섞어서 비치해두기도 했다. (미나 선배는 대학생들의 안전한 성생활을 장려하는데 관심이 많았는데, 혹시 콘돔만 비치해둔다면 학생들이 가져갈 때 눈치를 보일 수 있는 점을 배려해 캔디와 섞어서 비치해두곤 했다.) 이처럼 학기 초엔 소소하게 UGA가 해야할 일이 많지만, 기숙사 입주 후 첫 주가 지나가고 나면 고학년 UGA는 정말이지... 특별히 할 일이 없다....


그렇기에 고학년 UGA에겐 UGA 주간회의가 고문과도 같다. 모든 UGA는 매주 Community Director가 주최하는 기숙사별 UGA 주간회의에 참석해 지난 일주일 동안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자신의 담당 층에서는 어떤 특별한 일이 있었는지 등을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데, 고학년 UGA는 공유할만한 특별한 일이 전혀 없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간신히 머리를 쥐어짜서 생각해낸 담당 학생 중 누군가와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잠깐 나눈 이야기를 부풀려서 "담당 학생과 이런 내용으로 상담했다"고 말할 때면 뭔가 자괴감이 들곤 했던 기억이다. 


한편 모든 UGA는 자신이 담당하는 기숙사 커뮤니티의 활성화를 위한 활동비를 지원받는데,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 학기에 600~800달러 선이었던 것 같다. 자신의 카드로 결제하고 영수증을 첨부해서 서류를 작성하면 환급을 받을 수 있는 식이었다. 모든 UGA는 이 중 일정 금액을 방문 앞에 붙히는 네임태그를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를 구입하는데 쓰고, 신입생 UGA들은 보통 이 돈을 매주 의무적으로 진행하는 Floor Meeting의 다과를 사는데 쓴다. 하지만 고학년 UGA는 애초에 Floor Meeting을 진행할 필요가 없고, 굳이 한다고 해도 아무도 오지 않아서 슬퍼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활동비를 쓸 곳이 없어 참 애매하다. 그렇다고 한푼도 안 쓰기엔 아무 일도 안 하는 것 같아서 더욱 눈치가 보인다.


고학년 UGA의 이런 딜레마는 매년 똑같았는지, 고학년 UGA를 구원해줄 행사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Breakfast for a Buck (BFAB), 즉, 1달러의 아침이었다! 1달러의 아침은 주로 여러 고학년 UGA가 힘을 합쳐 합동으로 진행하는데, 말 그대로, 학생들이 단돈 1달러만 내면 아침을 먹을 수 있도록 UGA들이 기숙사 부엌에서 아침을 만들어 제공하는 행사이다. 메뉴는 팬케이크, 와플, 토스트, 시리얼, 해쉬브라운, 스크램블 에그, 구운 베이컨, 우유, 오렌지쥬스, 쿠키, 각종 과일 등으로 나름 구색을 갖춘 호텔 조식 뷔페 스타일이다. 


1달러의 아침은 높은 참여율을 위해 슬슬 학생들의 DBA¹가 소진될 무렵인 학기 중반 이후의 주말에 하는 경우가 많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이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고학년 UGA들은 우선 역할을 나눈다. 디자인에 자신이 있는 UGA는 포스터를 만들어 일주일 정도 전부터 게시판에 붙히고, 기숙사 학생들에게 여러번 단체 블릿츠를 보내 홍보를 한다. 물품창고의 재고를 미리 확인하는 UGA도 있다. 1달러의 아침은 대대로 많은 UGA들이 매 학기 해왔던 이벤트이기 때문에, UGA들이 사용하는 물품 창고에 팬케이크 굽기를 위한 그릴을 비롯한 각종 주방용품은 이미 마련되어 있긴 하지만 혹시 망가졌거나 추가로 필요한 물품이 있다면 구매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UGA들은 행사 하루 전 미리 근처 마트로 다같이 쇼핑을 다녀온다. 최소 50인분, 최대 100인분을 만들 재료를 사야하므로 차가 있는 UGA와 시간을 맞춰서 가거나, 아무도 차가 없다면 짐을 나눠 들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인원이 쇼핑을 가는 편이다. 쇼핑에 소요된 비용은 여러 UGA의 활동비로 나누어 처리한다. (보통 고학년 UGA는 활동비가 남아돌기 때문에 서로 "자기 활동비에서 더 써도 된다"고 주장하는 훈훈한(?) 광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보통 1달러의 아침은 8시반쯤에서 10시반쯤까지 2시간 정도 진행된다. UGA들은 행사 시작 한시간 정도 미리 모여 장소를 세팅하고 요리를 시작한다. 주말 아침이다보니 학생들이 "학생 식당까지 가기 귀찮아서 아침은 안 먹을까 했는데 잘 됐다!"하면서 잠옷바람으로 몰려오기도 하고, 행사를 하는 줄 몰랐지만 우연히 기숙사 부엌을 지나가다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온 학생들이 가세하기도 하는데 텅 비었던 기숙사 부엌과 공용 공간이 아침을 먹으러 온 학생들로 점점 북적북적해지는 것을 보는 것은 늘 보람있었던 것 같다. 학생들은 지정된 돈통에 1달러를 넣고 접시에 다양한 음식을 담아갈 수 있는데, 특별히 돈을 벌려고 하는 행사는 아닌지라 누가 돈통을 지키고 있진 않았고 100% 양심 기반인 시스템이었다. 


무한리필이 가능하다보니 준비한 음식은 항상 금방 순삭되곤 했다. 일부러 찾아와준 담당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새도 없이 눈인사만 나누고 공장처럼 팬케이크 반죽을 부쳐대다 보면 어느새 솔드아웃! 매번 지난 행사의 참가 인원에 기반해 더 넉넉하게 재료를 사는데도 공지된 행사시간의 끝까지 음식이 남아있는 경우는 거의 없어, 뒤늦게 온 학생들이 아쉽게 빈손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았다. 행사가 끝나면 돈통에서 학생들이 내고간 돈을 꺼내 세서 참가 인원수를 파악하곤 했는데 항상 100달러에 조금 못미치는 돈을 벌었으니 그래도 행사를 할 때면 100명 좀 안되는 학생들이 와주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1달러의 아침은 UGA를 하면서 가장 좋았던 기억 중 하나이다. UGA들끼리 다 같이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얼마 되지도 않는 수익을 어디에 기부할지 매번 다 같이 고민하던 것도 즐거웠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아무래도 "집 같은" 기분이었던 것 같다. 다트머스에서는 기숙사가 집이라고 하지만, 막상 바쁜 학교 생활에 치여살다보면 그렇게 느끼기 어려운데, 따뜻한 음식 냄새가 가득한 부엌에 잠옷 바람으로 나온 학생들이 가득했던 기숙사는 정말이지 꼭 대가족이 사는 집 같았던 것 기분이다. 



¹ DBA: Declining Balance Account의 약자로, 프리페이드 신용카드처럼 일정 금액을 미리 구매해서 차감되는 형식이다. 미국 대학 학생 식당에서 흔히 쓰인다.


Written by El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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