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살림에 보템 좀 되셨습니까?
못 버리고 주워오는 난치병으로 집 안에 살림이 넘쳐나고, 부부가 함께 쇼핑중독이어서 택배박스 뜯고 버리는 게 매일의 일과인 우리 집. 언젠간 쓸 거라는 기대와 ‘그’ 언젠가가 와서 사용할 때의 기쁨으로 살아가던 어느 날, 맘카페를 통해 벼룩시장의 판매자로서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판매자 선착순에 든 이후부턴 ‘이런 것도 팔릴까?’ ‘가격은 얼마를 해야 팔릴까?’ ‘이건 어떻게 설명을 써붙일까?’ ‘이건 어떤 사람에게 어울릴까?’ ‘이건 그냥 가져가라고 할까?’ 수많은 고민과 고뇌 속에서 나의 벼룩나이가 차오르며 나름의 노하우를 쌓아가게 되었고 벼룩시장 판매자 경험으로는 어디 가서 빠지지는 않는 경력직 벼룩러가 되었다.
시, 구, 마을 혹은 여러 단체들에서 운영하는 어린이 벼룩시장에도 아이들과 함께 참여하며 나에게 필요 없던 물건들이 누군가에게 가서 이름이 불리워지고 그들의 꽃이 되는 순간들을 여러 번 경험하고 아이들도 벼룩치 레벨업을 하며 자라게 되었다.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집에 있는 아나바다 물품들과 손수 만든 작은 소품들을 끌고 들고 짊어지고 나갔다가 가벼워진 짐과 소소하지만 무거워진 지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마음마저 행복이 헬륨처럼 가득 차올라 20년 지기 친구인 지독한 관절염도 잊을 만큼 몸과 맘이 가벼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집이 정리되는 건 물론이요, 소소한 간식비도 벌 수 있지만 단점 역시 뚜렷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매대를 각자 준비해야 하는 벼룩시장의 특징 상, 물건을 펼쳐두기 위한 테이블, 행거, 가격표용 라벨지 구입 비용이 추가되었고, 이 모든 것을 홀로 준비하는 내 노동력도 예상치 못한 지출이었다. 어떤 벼룩시장은 참가비를 요구하기도 했고, 몇 푼이라도 벌어온 날이면 한턱 쏜다는 명목으로 번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아져버리는 별 희한한 일도 종종 일어났다. 하는 게 나은건지, 그만해도 상관없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눈에 보이는 소득이나 성장은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티는 그리 안 나지만 집안 어딘가의 어느 공간은 숨 쉴 구멍이 조금은 생겼을 테니 잘한 걸로 하자.
봉사하는 단체에서 아나바다 상점을 집 근처에 오픈한다는 소식은 코로나 이후 잠잠해졌던 벼룩 세포를 팔딱팔딱 튀어 오르게 했고 비록 내 지갑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아닌 게 살짝궁 아쉬운 마음도 잠시. 계속해서 모아두었던 나눔 상자와 나눔 가방들을 뒤적거리고 행거와 옷서랍들을 뒤집어엎어가며 더 나눌 것들이 있나 찾아본다. 작년 여름에 입었던 아이 옷을 아이 몸에 대어보고 입혀보고, 후두둑 고무줄 늘어나는 소리가 나는 건 반짇고리가 있는 안방 의자 밑으로 휙 던져버린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사이 아나바다 상점으로 갈 큰 가방들은 현관에 옹기종기 안 그래도 좁은 길의 길막이가 되어있다.
낑낑대며 차에 싣고 아나바다 상점에 가져다준 옷들과 물건들은 사용 시기나 계절에 따라 바로 행거나 벽면에 걸리기도 하고 운 좋으면 마네킹에게 입혀지기도 한다. 상점의 운영진에게 판매팁, 진열팁, 공간 활용과 꾸미기 등의 의견을 나누기도 하며 어디 상점에 지분이라도 있는 양 상점의 구석구석을 내 새끼 보듯 살뜰히 살핀다.
우리 집에서 나온 나눔 물품들은 어느 집에서 무엇이 되어 빛나는 삶을 이어갈까 생각하며 잠시 쉬다 보면 그곳에 둥지를 튼 다른 이들의 내음이 남은 옷가지들을 힐끗거리며 바라보게 된다. 나와 가족에게 필요한 것, 휴대폰의 살 것 리스트에 있는 물건들이 보이면 정말 이것이어야만 하는가를 한번 더 생각하고 계좌이체를 하기도 하고 백 퍼센트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으로 한번 쓸어보고 상점을 나선다.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른 상점의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보인다. 뭔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스스로를 조금은 교만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도 상점 방향을 향해 지나치는 사람들이 혹시 상점을 바라보나, 상점으로 들어가나 다시 한번 더 돌아보게 된다.
아이들의 옷, 잡화, 장난감, 책들은 언제나 벼룩시작에서 땡품(땡치면 품절) 대상이다. 물론 판매되는 곳에 방문하는 고객들 중 아이엄마들이 많을 때의 이야기지만 신기하게도 나의 벼룩인생에서 9할 이상은 아이를 키우는 젊은 엄마들이 메인 고객이었다. 얼룩이 진하고 많거나, 사용감이 심한 건 일찌감치 판매물품을 준비하면서 폐기되었기 때문에 깔끔쟁이 예민보스 엄마가 아닌 이상은 내 판매물품의 좋은 상태에 호감을 표하며 적게는 한두 개부터 많게는 큰 가방을 가득 채울 만큼을 구매해가기도 하였다. 꼼꼼히 보긴 하지만 큰아이가 입던 거라고 생각하고 천 원 이천 원에 약간의 사용감이 있는 아이들 옷을 몇 벌씩 챙겨가는 엄마들도 생각보다 많았다.
물론 따라온 아이가 엄마아빠를 보채서 필요치 않아 보이는 물건들을 마지못해, 혹은 별 고민 없이 사주는 부모들도 자주 본다. 그런 집으로 팔려간 물품들은 사랑받지 못하고 쓰임 당하지 못하고 버려질 게 뻔히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잠깐의 만족이라도 시켰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하며 다음 고객에게 영업활동, 호객행위를 시작한다.
판매자가 많은 벼룩시장일 경우 공동 판매자나 가족들이 있을 때는 나도 내 부스를 뒤로 하고 주위 부스들을 돌며 우리 가정경제를 심폐소생 시켜줄 A급 아이템들을 찾아 헤매곤 했다. 거기서 득템하고 본전을 찾다 못해 다시 다른 가정의 아이에게 물려주는 옷이나 장난감들도 많았고 쑥쑥 크는 아이들 덕에 사용감이 생길 틈도 없이 다른 가정으로 흘려보내는 물건들의 상태는 여전히 A급인 경우가 많았다. 물론 당연하게도 이름 있는 브랜드의 옷이나 물건들이 상태가 좋은 경우가 많았고 나도 그런 물건들을 선호했다.
최근 들어선 교회나 봉사단체의 바자회에서도 판매자로 경험들이 쌓여가고 있는데 시작시간이 정해지고 한두 시간 전부터 진열을 시작하는 행사 특성상 일찍 온 고객들이나 다른 판매자들로부터 먼저 찜해도 되냐는 문의를 듣기도 한다. 그런 경우 원칙적으로는 안된다며 돌려보내거나 따로 빼놔줄 테니 시작하면 바로 오라고 말하거나 하였는데 아주 가끔은 시작 몇 분 전에 현금을 받으며 조용히 뒷거래 아닌 뒷거래를 하기도 했다. 다른 판매자의 상태 좋은 장난감은 천 원이라도 깎아주길 바라면서 내가 내놓은 물건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 판매를 한 뒤에는 천 원이라도 더 부를 걸 하고 뒤늦은 후회를 하곤 한다.
그렇게 버리고 나누고 팔았지만 ‘왜 때문에!’ 우리 집은 아직도 성경에나 나오는 좁은 길, 고시원 거리에나 있는 좁은 방들이 이리도 많은 것인가 하는 철학적 고민에 잠김도 잠시, 또다시 벌떡 일어나 매의 눈으로 나눌 것, 당근이나 벼룩으로 판매할 것, 고쳐서 사용할 것, 버릴 것을 찾아 고래눈으로 도리질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