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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은돌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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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미쓰다 Nov 15. 2024

꿈에서 여름 될 거야

반짝반짝한_

2014년 2월 7살
은돌이는 꿈에서 여름 될 거야. 
그래서 수영장도 가고 바다도 가고 
큰 조개껍질 안에다 반짝반짝한 돌 넣을 거야. 


까맣게 탄 피부에 엄마표 까까머리는 은돌이의 트레이드 마크다. 

겨울에도 바깥에서 놀다 땀에 절어오기 일쑤이긴 하지만 봄, 여름, 가을에는 다른 아이들처럼 더 길~게 더 자주 나가서 돌아다녔다. 아이의 피부는 날이 갈수록 구릿빛을 넘어 브라우니 빛에 가까워지는 듯했으며 겨울이 중반에 접어들어서야 더 이상 타지 않고 조금씩 원래 피부색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음 해 봄이 시작됐나 싶은 어느 순간 다시 까무잡잡한 피부가 되어있다.(이 정도면 원래 피부색이 뭔지 잘 모르겠긴 하다.)


아파트 단지 안의 분수대 물놀이 시간을 좋아했던 은돌이는 바다와 물놀이를 좋아했다. 사람들이 많을 땐 쭈뼛거리며 구석에서 놀았고 수영을 좋아하거나 잘한 것도 아니었지만 겨울마다 여름의 낭만과 추억을 이야기하곤 했다.


버킷리스트에 '바닷가에 앉아서 예쁜 조개나 돌 줍기'가 있는 엄마 덕에 은돌이는 어려서부터 돌, 조개껍데기, 나뭇가지나 나뭇잎들을 주워다 나르고 모으기 시작했다. 이미 엄마 것만으로도 조개상자들, 돌 상자들이 여럿인데 아이가 가져온 것들이 늘어나자 따로 상자에 담으며 나의 옛날 추억들은 하나씩 보내주었다.





은돌이가 살 건데 당연히 보태야지
ㅡ20140208

전세 비용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전화를 받은 엄마아빠의 대화를 어느새 듣고 있었나 보다.

세뱃돈, 용돈들이 모아지고 있는 통장의 존재를 알고 있던 은돌이에게 엄마아빠가 돈이 없어 보였나.

어쨌든 내 돈을 보태고 싶었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로 너무 많이 감동했던 날이었다.



쪼끔, 별만큼, 우리가 보는 별만큼만 그렇다고...
ㅡ20140310

상황이 자세히 기억은 안 난다. 서운했던 이야기를 하던 중에 많이 서운했구나 하며 마음을 읽어주니 은돌이는 들고 있던 책에 고개를 돌리며 이렇게 얘기했다. 그 와중에 너무 예쁜 표현이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지나고 곱씹어보니 쪼금은 아니었나 보다.



와.. 저건 물고기 모양이다!  
저건 면도기 같다!      
ㅡ20140310

할머니댁 가는 길 고속도로에서 창 밖의 풍경만으로도 재잘재잘 입을 쉬지 않던 시절.

철새 떼가 날아가며 이리저리 무리지은 모습들이 움직이는 걸 보고...

물고기에서는 대충 보며 응, 그렇네~ 했는데 면도기에서 빵 터질 뻔했다. 

은돌이는 아빠의 면도기를 유심히 관찰했구나.



은돌이는 최대한 오래 살게.
살만큼. 909년까지 살 거야.
엄마 많이 보고 살려고.
ㅡ20140401

909년만큼 오래 살면서 뭐 할 건데? 하고 물으니 예상치 못한 대답이 들려왔다. 

나는 또 감동의 도가니 속으로 풍덩 들어갔다. 네 살 동생이 태어나기 전 어린이집에 처음 갔던 몇 달간 이 기억난다. 엄마가 데리러 가면 활짝 웃으며 달려와서 

"엄마 이런저런 놀이가 재미있었는데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라고 얘기하곤 했다. 나는 너무나 행복한 엄마였다.



엄마, 은돌이는 요리사는 못하겠어요. 맨날 상 닦아줘야 되잖아요.
ㅡ20140829  

식당에서 밥 먹다가 손님이 떠난 테이블을 정리하는 직원을 한참 바라보더니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상을 닦는 행위를 주방의 수천 가지 일 중에 난이도 상위권에 랭크할 만큼 힘들어한다. 무릎과 손가락이 안 좋은 이유로 여러 가지 쉬운 방법을 찾아 잔머리를 굴리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아이가 보기에 즐겁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상을 닦는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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