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대신 나에게 온 너는

그냥 대형견 아니고 반려견입니다

by Miss Traveler

요즘 내 삶의 키워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개껌이나 개 병원비에 돈을 쓰는, 혹은 개를 침대에 올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남몰래 엄청 흉보던 때가 있었다. 그럴 돈과 애정을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나누지 그러냐는 아집에 사로 잡혀 개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던 때.


예전의 나와 같은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우리 집 개(이하 산이)가 그저 몸집이 크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대형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이를 ‘개같이’만 취급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지만. 좌우간에 그들은 결국 ‘과거의 나’와 같으므로 예전의 나를 닮은 그들을 이해하고자 무던히 참고 살아간다.


오래 살다 보니 변한 건 사실 개를 좋아하지 않던 내가 아니라 결혼을 하고 엄마를 떠나보내고 그런 일련의 과정으로부터 생겨난 나의 현재라 하겠다. 더는 아가씨가 아니고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은 것들이 세상에 많다는 것도 알며 줄곧 하고 싶은 것만 맘에 품을 수는 없는 새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예전과는 조금 다른 오늘의 내가 되었다.


그래서 산이는 이제 내게 그냥 개가 아니다. 산이는 어느 때는 우정이 되었고 어느 때는 연애 같았다. 그리고 엄마가 몹시 그리운 때는 꼭 엄마와도 같았다.

갑자기 혼자가 되신 아빠가 강아지를 키우시면서 조금이라도 덜 외로우시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엄마가 떠난 그 해에 산이는 우리 집 새 식구가 되었다.


처음에는 아빠를 보러 아빠 집에 갔지만 나중에는 산이를 보러 아빠 집에 갔다. 처음에는 산이가 마당에 묶여 지내도 아무렇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그게 그렇게 화가 났다. 결국 나는 산이를 서울에 데려와 우리 집에 들이고 한술 더 떠 몹시 사랑하게 되었다.



크기와 상관없이 어느 개가 사람과 함께 나란히 걷고 있다면 그 개는 더 이상 그냥 개가 아니다. 우리 집 개는 엄마를 대신해서 우리 집에 왔고 다른 집의 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사연으로 존재하는 것이니 함부로 충고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러니 산이와 같은 산만한 개를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다면 큰 개라는 이유으로만 욕하지 마시길 바란다. 그냥 지나가시길 요청드린다. 무서워서 놀라는 건 물론 진심으로 죄송하다. 그럴 때엔 꼭 사과를 드린다. 그래야 맞다. 다만 그게 아니라, 훈계하고 싶은 거라면 정중히 사양하겠다.



예전의 나와 같던 마음으로 사는 삶을 책망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늘의 나와 같은 마음으로 사는 삶을 인정해 주길 바랄 뿐. 왜냐하면 세상은 진짜 오래 살고 볼 일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