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본사에서 매니저인 An이 내려와 크리스마스 회식을 했더랬다.
이번에는 재작년에 후보로 놓고 탈락했던(?) 프랑스 레스토랑으로 정했다.
사실 내가 정한 거나 다름이 없는데, 나는 이왕 먹을 거면 맛있게! 먹어야 한다는 주의라 음식은 모험을 즐겨하는 편이 아니라서 먹어보고 맛있었던 곳을 추천했다.
외식을 거의 안 하는 편이라, 레겐부르크에서 20년을 살았어도 가 본 레스토랑이 별로 없다. 누군가 물어보면 그나마 귀동냥으로 들어서 좋다는 데를 추천하곤 하는 편이고, 가보고 추천하는 곳은 대부분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잘 맞아 실패가 없다.
이 레스토랑은 고기랑 해산물이 맛있는데, 나랑 An은 스테이크를 시켰는데 다른 동료는 닭다리와 수프, 크레페등을 시켜서 그다지 맛있게 먹은 거 같지 않아 보였다. 나오면서 지난번 스페인 레스토랑이 훨씬 나았어. 한다.
지난번 스페인레스토랑에서, 내가 너무 많이 먹어서 An이 적잖이 놀랐었나 보다. 아니, 초밥 접시만큼 쪼끄만 접시에 조금씩만 담겨 나오는 타파스가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양인데 그 정도가 뭐 많다고... 아무튼 이번에도 디저트까지 먹을 거지? 했는데 이번엔 참았다. 사실은 시간이 모자라 서였지만. 언제부턴가 우리 동네 레스토랑도 2시간씩 예약시간이 정해졌다. 크리스마스시즌이라 2 타임씩 받느라 그런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날도 그랬고 예약시간이 끝났다고 누가 말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되어 나왔다.
An은 어느 날 유튜브로 한국 여자의 먹방을 봤는데, 엄청 많이 먹더라는 이야기를 하며 너도 그렇고, 한국 여자들은 다들 많이 먹느냐고 물었다.
나는 단호하게, 아니! 내가 제일 많이 먹어. 보통의 한국 여자들은 적게 먹어.라고 얘기했지만,
코끼리를 눈으로 보지 못하고 만져보고 아는 사람들이 귀를 만진 사람은 아 코끼리는 이렇게 생겼구나. 다리를 만진 사람은 아 코끼리는 이렇게 생겼구나.라고 한다는 것처럼 An은 한국 여자가 먹는 거라고는 딱 2명 봤는데 그게 나와 먹방 유튜버였으니... An이 보기에 한국 여자들은 다! 많이 먹는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선입견이라는 것이 무서운 게, An의 아빠가 30년쯤 전에 한국으로 일하러 2주 정도 간 적이 있었는데 산낙지 먹는 것을 보고 놀라서 말한 게 어린 An에게 큰 충격이었었나 보다. 나를 만날 때마다 아직도 그 얘기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보신탕집에 안 가신 거겠다. 감사하다.
외국에 살면 우리나라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든지 내가 우리나라의 표준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다고 늘 홍보대사인양 살기는 어렵다. 외국이지만 나는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곳이기에.
늘 잘 보여야지. 하는 생각으로 산다면 내 일상은 적잖이 스트레스가 될 것이다. 다만 잘 못 알고 있을 때 정정해 주고, 대외적인 일에서는 좋은 이미지를 주도록 노력하는 정도의 일상을 살아가려고 한다.
한국 음식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제대로 맛보게 해주는 것만 빼고 말이다.
아들이 친구들과 뮌헨으로 놀러를 갔다. 친구들이 다 한국 음식을 좋아해서 지난번에 뮌헨에 갔을 때도 한국 음식 하는 곳(한국사람이 주인은 아니지만)에 가려고 했는데 예약이 차서 자리가 없어 못 갔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곳에 가서 먹을 수 있었는데 맛이 괜찮았다고 한다. 이름을 들어보니 한글학교선생님에게 들은 뮌헨에서 한국분들이 잘 가신다는 곳이었다. 독일 한국 음식점이 그렇듯 다소 비싸긴 했다. 여러 가지 음식을 시켜서 같이 먹었는데, 각자 30유로씩 냈다고 한다. 그리고는 며칠 후, 대학 학생식당에서 친구들이랑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며 자기가 치킨을 해간다고 했단다. 뮌헨에서 치킨도 먹었다며? 했더니 친구들이 우리 집 치킨이 더 맛있다고 했다며... 다행히 이번에는 20명이 아니고 4명이라며 나를 토닥거렸다. 평일 점심이라 나는 출근해야 하니, 양념과 튀김옷을 해주고 나왔는데 나름 잘해서 간 모양이다. 집으로 온 아들이 치킨집을 해야 한다며 의기양양했다.
융, 볶음밥 할 때는 맨 그룹까지 다 먹을 수 있게 만들어
난 남는 밥으로 하는 건데? 양이 충분치 않으면 그럼 밥을 더 해야 해?
응, 밥을 더 하면 되지. 맨 끝 그룹에서 볶음밥 때문에 컴플레인이 들어왔어.
An이 말했다.
표면적인 목적은 우리와 크리스마스 기념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 내려왔지만 2박 3일 동안 학교와 컨텍을 하고, 주방 컨트롤을 하고 이런저런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고 조정했다. 그러다 학교에서 '볶음밥'이야기가 나왔나 보다.
아니, 그 볶음밥이 뭐라고. 나는 그저 전날 남은 밥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었을 뿐인데. 그거 좀 모자랐다고 아주 그냥 난리였다.
그러다, 볶음밥이 너무 맛있어서 그렇다고 얘기가 나왔나 보다.
볶음밥 할 때 레시피 좀 써 줘, 레시피북에 넣자! 다른 학교들에도 알려주게.
그리고 가능하면 김밥도 해줘
(그날 하던 만두를 보고) 이거 뭐야, 딤섬 아니야? 이것도 해줘.
샐러드바에 들어갈 발사믹모짜렐라샐러드와 콘계란샐러드를 했는데, An은 연신 사진을 찍으며 샐러드 레시피까지 해달라고 했다.
1시간 동안 샐러드바 7개를 채우느라 바쁜 내게 말을 시켜서 일이 더뎌지고 있었지만, 가까스로 5분 전에 샐러드를 다 채우고, 숨을 돌리는데 레시피타령이다. 그러더니, 하나를 끝내고 다른 걸 하지 않고, 이거 삶는 동안 저거 썰고 하면서 멀티로 준비하는 내가 신기한지 이거 하다 저거 하다 하면서 이걸 다 하네? 한다. 다 해냈다는데 대한 칭찬인지, 정신없게 한다는 말인지...
레시피... 외국사람들이 나에게 자주 부탁하는 일이긴 한데 나는 지금까지 딱 한번 레시피를 줘봤다. 정원에 뿌려놓은 돼지감자가 해마다 너무 잘 돼서 우리 집에도 늘 나눠주는 남편 직장 동료인데 늘 샐러드로만 먹으니 질린다길래, 장아찌를 해서 줬는데 너무 맛있다고 레시피를 달라고 해서였다.
레시피라는 게, 정확한 계량이 필요한 건데... 한국음식이라는 게 정확한 계량이 어려운 손맛이 아니던가?
나는 유튜브에서 따라 해본 음식이 맛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리고 유튜브영상의 끝은 결국 각자의 입맛에 맞게 조절.로 끝날 때도 많다.
장아찌 레시피 하나 만들어 주는데도 한나절이 걸렸었다. 양재고 시간재고, 저울 0점 안 해놔서 다시 한번 더 하고... 보통일이 아니었더랬다.
학교를 위한 레시피를 과연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해놓으면 좋을 일이긴 한데 엄두는 안 난다.
Irgendwann(언젠가) 해볼게.라고만 했다.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자!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