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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야 어디......

by SCM Facilitator

생산관리라는 업무를 맡고 있었던 저의 오지랖은 한없는 책임감과 뭐든지 다해내는 척척박사 같은 노하우로 인해 더없이 넓었다고나 할까요?

제때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는 생산과 출하로 인해 스트레스는 나날이 더 해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저녁 늦은 밤까지 다음날 출하할 제품을 챙기던 저는 제가 보았고 느꼈던 것들을

나의 강한 책임감에서 우러나오는 직장인의 당위성을 더해서 메일을 써내려 갔습니다.


퇴근 시간이 되면 1분이라도 늦으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마무리도 안 하고 바로 달려 나가는 사람,

다음 날 생산해야 할 모든 자재를 라인 앞에 가지런히 정리를 해 놓지 않고 가는 사람, 자재가 다 준비가 안 되어 있어도 그냥 퇴근하는 사람, 내일 출하해야 할 제품의 수량이 아직 마무리가 안되었는데도 일을 끝내는 반장, 포장된 팔레트를 1층 제품창고로 보내야 하는데도 그대로 놓고 나가는 사람 등등 제가 보기에는 이 회사가 과연 제대로 유지가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사람들의 행동이 한심하게 보였습니다.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그림을 그려 내듯이 글을 적었고 제대로 된 회사의 직원이라면 이래야 하는 거

아니냐를 주장했습니다.


다음 날 저의 상사들 중의 몇 분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대단하다는 말도 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후배는

그 긴 글을 읽어가며 오탈자가 몇 개나 있는지 세어 봤다는 후배가 있었습니다. 사실 글을 쓰고 나서 몇 번을 다시 읽어 보고 이상한 말은 없는지 글의 흐름은 적절하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세심히 검토했습니다.

그만큼 정성을 다해 썼었습니다.


글의 효과가 있었던지 제가 가는 곳에서는 사람들의 행동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시장의 확장과 함께 1개였던 라인은 점점 더 늘어서 1개 층을 다 차지할 정도로 많아졌습니다.

12개까지로 늘어났던 것 같습니다.


우리 공장에는 3개의 제품군을 만들었었고 우리가 만드는 제품군을 처음 생산할 때만 해도제품을 계획하고 생산하고 출하하는 우리를 보면서 초짜 취급하고 병아리 취급하던 타 제품군의

구매, 생산, 생산기술 사람들이 하나 둘 우리 쪽으로 넘어오더니 어느덧 타 제품군들은 공장 내에서

점점 힘을 잃어 갔습니다. 생산도 줄고 매출도 줄어갔지요.

자연스러운 성장 산업으로의 인력이동이었다고나 할까?

타 제품군에서 일할 때에 시스템도 안 갖춰져 있다고 비웃던 사람들, 속칭 실력자라고 인정받고 있었던

사람들이 우리 제품군으로 이동해서 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의 희열이나 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달라고 해도 안된다고 했었고 와달라고 간청해도 콧방귀를 뀌었던 그들이었는데

이제는 고개를 숙이며 들어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 혼자였던 생산관리도 인원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서울에서 전입을 오기도 했지요. 말 그대로 인기가 점점

높아져 갔습니다.

실력 있는 인원들이 늘었으니 이제는 빠르게 안정이 되고 늘어나는 고객의 수요도 여유 있게

대응하겠구나라는 희망을 품었지만 실제로는 기대만큼 빠르게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타제품군의 업무를 담당하다 합류한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능력자처럼 회의 시마다 소리를 높이고 존재가치를 높였던 사람들이 막상 우리 제품군에서 일을 하려고 이동하였으나 쉽게 Output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타제품군에서 속해 있을 때는 그들 일의 대부분을 시스템이 해주고 있었고 시스템 안에 들어 있는 기준, Logic, 계산 방식에 대해서는 그리 지식이 많지 않았으며 시스템이 만들어 내는 결과물을 가지고자재 공급업체에게 전화하고 메일을 쓰고 해 왔던 것인데 우리 제품군에서는 그런 시스템이 많이 없었습니다.

즉, 엑셀로 본인이 만들어서 Simulation 하고 어떤 위험이 있는지 Check 하고 위험이 있으면 대응방안을

수립해야 하는데 이게 안 되는 것이었지요.

그동안의 거만함과 우리를 가볍게 여겼던 말들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힘들게 걸어왔던 길이 앞으로도 더 쭉 펼쳐져 있는 것을 산등성이 고개에 올라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기다려라. 나의 젊음을 불태울 전장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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