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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복은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by SCM Facilitator

저는 거창한 배경도, 반짝이는 이력도 지닌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남들처럼 누구나 다 알 만한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연줄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들꽃처럼

조용히 피었다 지는 계절들을 따라 무던하게 자라난 아이. 그저 큰 말썽 없이 바람이 불면 바람결에,

비가 오면 흙냄새 속에 잠기며 살아가던 평범한 청년이었지요.

지방 국립대를 졸업하고 우연히 찾아온 기회 덕분에 대기업에 취직하게 된 것도, 지금 돌이켜보면

간절한 노력 위에 내려앉은 작은 복이었습니다.


군에 입대한 스무 살 무렵, 저는 몸집만 성인이었지 마음은 여전히 풋내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부대의 부관님께서 제가 한심해 보였는지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삼국지를 읽어보라고

권하셨습니다.

당시 TV에서는 만화 삼국지가 방영되던 때였고, 저는 그 재미에 빠져 있었지요.
“애들도 아니고 책으로 읽어 봐라”

그 말은 마치 제 안의 잠든 어른을 톡 건드리는 듯했습니다 창피하다고도 느꼈었고요. 곧바로 이문열의

삼국지 전집을 사서 밤마다 탐독했습니다. 책을 덮고 마지막 장면이 마음속에서 잦아들 때, 저에게

남은 단어는 단 하나였습니다. 리더십.
그 후로 제 독서는 마치 흐름을 찾은 강물처럼 리더십과 자기 계발이라는 두 지류를 향해 굽이쳐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부관님은 단지 책을 권한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지휘관들에게 제가 중책을 맡을 만한

사람이라 말해주었습니다. 처음 맡아보는 책임의 무게는 두려웠지만, 이상하게도 그 두려움이

제 안의 또 다른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처음 해보는 일은 낯설지만, 그 낯섦 속에서 새로운 길이 열린다.” 그 깨달음은 스무 살 즈음의

저에게 주어진 인생의 첫 번째 선물이자, 가장 오래가는 방향표지였습니다.


제대한 뒤, 저는 그분을 단 한 번 찾아뵈었을 뿐이지만 그는 여전히 제 마음속에서 ‘인생의 은인’이라는 이름으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군 생활에서의 그 경험은,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 놓았고,

무엇보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제 가슴 안에 처음으로 심어 주었습니다.


대기업에 입사하고 난 후 사원, 대리, 과장을 거쳐 차장 2년 차까지 차장 바로 전 다섯 해 연속 최고 등급의

평가를 받고, 보통의 속도보다 빠르게 승진을 하며 팀장이 되었을 때 그 성장의 뒤에는 보이지 않는 손길들이 있었다는 것을 저는 알고 기억합니다,

같은 팀장으로 제가 업무로 곤란을 겪을 때 제 편이 되어 임원분께 이야기해 주던 선배님, 때로는 따끔하게 꾸짖으면서도 저의 경제적 어려움을 듣고서 바로 도움을 주셨던 마음이 따스했던 임원분, 제 의견을

귀 기울여 듣고 업무의 방향을 함께 만들어 주던 상사님들… 줄도 백도 없던 한 사람이 과분한 혜택을 누릴 수 있었던 건 결국 사람들의 온기였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정말 복이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은 농촌의 어느 집에서 조용히 시작된 삶이, 인연이라는 다리를 건너며 조금씩 넓어지고 깊어졌으니까요.

그 길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손이 있었고, 그 손길 덕분에 저는 한 발씩 더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생각합니다.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건, 결국 사람의 마음이라고.

그리고 그 마음들 덕분에 열린 이 길 위에서, 저는 오늘도 조용히 감사함을 잊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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