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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Aug 17. 2023

등록도 덜 된 네이버 플레이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변호사 사무실을 8월 1일에 개업하고 이것 저것 신경쓸게 많았습니다. 사업자등록증도 떼고, 개인사업자 용 공인인증서도 만들고, 전자세금계산서도 발행해 보고, 세무사인 고등학교 친구놈한테 오랜만에 연락해서 이것저것 염치없이 물어보고. 


오늘은 카드 계산기를 구매하고, 기업은행에서 사업자계좌 개설 후의 절차인 실지조사를 나온다길래 괜히 쫄아 있었습니다. 실지조사가 끝나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길래 냉큼 받았습니다. 월급 받을 때는 모르는 번호는 절대 안 받았는데, 대표가 되다 보니 안 받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런데 여보세요 라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네이버에서 연결시켜 드립니다" 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내 개인 번호가 아니라 네이버 서비스용 번호로 전화를 걸면 흘러나오는 네이버의 기계음


흠칫 놀랐습니다. 네이버  플레이스에 써 있는 전화번호를 보고 저에게 벌써 전화를 건 고객이 계신 걸까요. 전화를 받아 보니 건물을 세 놓고 있는 임대인 분이 제 사무실 근처(영등포입니다) 누수 하자보수 관련해서 상담을 요청하셔서, 내용증명 발신으로 일단 해결해 보자고 상담을 해 드렸습니다. 


그렇게 마무리해 놓고 밀린 일을 정신없이 하던 중, 일이 잘 해결될 것 같다고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변호사들은 이럴 때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앞서면서도, 고객 한 명이 떠나갔다는 생각에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 변호사에게는 밥줄이니, 의뢰인 분들도 이해해 주시겠지요? ㅎㅎ


잘 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행이다는 생각이 듣고 덕담을 해 드리고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에, 제 '네이버 플레이스' 는 아무런 광고도 하지 않고 등록한 지 3일도 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정보 수정 검토중이라서 '황재림 변호사' 라고 딱 맞춰서 검색하여야 검색에 걸린다는 점을 퍼뜩 떠올렸습니다. 


아직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은 나의 대문.


"혹시 저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라고 여쭤봤습니다. 


아, 저번에 그~ 현대아파트 아줌마가 추천해줘서, 여기 변호사님 잘해주신다고~

누구 말씀이실까요?(진짜모름)


아 저기 그 왜 누구냐 김0숙 사장님 있잖아~


아~~ 생각났습니다. 몇억 대 사기를 당하셔서 사기꾼이 살던 집을 빚 대신 받아놨는데, 그것조차도 받기 어려워하셨던 분이셨어요. 제가 너무 안타까워서, 목소리도 듣기 싫은 사기꾼과 직접 전화를 해서 어르고 달래기도 하고 협박도 하면서 담당 사건 판사님한테 빌어, 겨우겨우 집을 팔아서 피해금액 일부라도 받아 드린 분이었습니다. 


어쩐지, 네이버에서 저를 검색하고 찾아 오신 근처 분은 아니셨습니다. 그래도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오늘 짧은 통화였고, 그 통화로 제가 무슨 이득을 본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냥 무료 상담만 해 드린 셈이었지요. 그래도 이렇게 소중한 인연이 제게 또 생긴 것은, 제가 진심을 다해서 도와 드렸던 분에게 제 진심이 조금이라도 가 닿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호사는 정말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호사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좋은 사람이고,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는 아니라도 종종 생기거든요. 그런 순간들이 찾아올 때마다 저는 변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과거의 제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어집니다. 오늘은 또 그런 하루 중 하나였습니다. 기록하고 싶어서 글을 적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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