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인 가치는 매우 높은 작품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썼으니 당연하다. 주인공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와 '현실' 두 가지 무대에서 병렬적으로 이루어지는 이야기이고, 꽤나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자칫 집중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하루키는 타고난 이야기꾼답게 흡인력 있게 독자를 가둬둔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좀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았다. 문제의식이 좀 흐릿하다고 해야 할까, 장르가 불분명하다고 할까. 하루키 본인도 '썼다 말았다' 하면서 자신을 괴롭힌 소설이라고 이야기했기에 면책된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서 그런지 소설로서의 완성도는 그의 다른 소설들에 비해서는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가장 아쉬운 것은 결말 부분이다. 어떻게 끝나도 이상하지 않은 이야기인데도 하루키는 작중 어떤 인물의 입으로 문제의식을 명시적으로 정리해 버린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당신의 마음은 새로운 움직임을 원하고 또 필요로 해요. 하지만 당신의 의식은 아직 그 사실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그렇게 간단하게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 상처는 딱지가 되어 우리 마음 깊숙한 어느 곳에 숨겨진다. 어느 깊숙한 곳에 가둬 놓은 '마음'의 움직임을 '의식'은 어지간해서는 알 수 없고, 마음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 라는 것이 이 소설의 문제의식이라는 것을 웬만한 독자라면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소설의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하루키는 위와 같이 세살 먹은 아이에게 이유식을 떠먹여 주듯이 보여 주고 만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 소설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을까? 그답지는 않은 전개였다.
전개는 아쉬웠지만 내게는 큰 울림이 있는 이야기였다.
'진실로 내가 원하는 것=마음'과 '나의 의식'이 엇나가는 경우에 관하여서라면, 나는, 나만큼 이 간극을 많이 '의식'하는 자는 드물 것이라고 종종 생각해 왔던 것 같다.
종종 나는, 아니 내 '마음'은 현실의 그 어떤 것에도 필요 이상의?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나와 달리 의미를 잘 부여하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나는 이 세상-현실에 약간씩 정나미가 떨어짐을 느낀다. 그러나 내 '의식'은 지나치게-고도로 사회화되어 있다. 현실의 한국인들이 가치를 매겨 놓은 그대로 현실의 사물과 가치들에 의미를 부여한다. 내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정신적 고통은 대부분 여기 - '마음'과 '의식'의 가치매김 차이- 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으면서 나는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