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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Dec 23. 2022

혼자 술집

워킹맘 다이어리


인생에서 처음으로 술을 처음 먹었을 때. 그때의 기분을 상기한다. 땔감 더미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는 불을 지켜보는 느낌?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얽히고설키는 와중에 불처럼 술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술집에 혼자 술을 마셔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내게 술은 항상 함께 먹는 것이었다.


혼술은 항상 집에서 해결해 왔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고모네집에 하숙할 때는 옷장 안에서 몰래 맥주를 마셨고, 혼술은 대학교 기숙사에서 처음 해보았다. 빨래 너는 베란다에 몰래 담금주를 만들어 두고 홀짝홀짝 마셨다.


혼자 나가서 술집에서 마셔볼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나는 혼자 술집은 어쩐지 늘 어색했다. 지난 월요일 퇴근길에 갑자기 혼자 술집에 갔다. 아이가 둘씩이나 있는 아줌마라서 집에서 혼술을 하려면 세 명이나 내좇아야 한다.


그럴 바엔 내가 나가는 게 낫다. 회식한다고 뻥치고 혼술 하러 갔다. 칼퇴 하자마자 간 술집은 이제 막 가게 오픈 준비를 하고 있는 사장님, 눈에 총기 없는 아르바이트생, 꼬치 몇 개에 혼자 낄낄대며 유튜브에 맥주를 홀짝 거리고 있는 나, 이렇게 세 명뿐이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들어올 때쯤 혼술을 마치고 집으로 갔다. 


혼자 간 술집. 서른다섯이나 먹고 왜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까. 굉장한 아쉬움까지는 아니지만 살짝 아쉬움이 들 정도로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종종 가족 몰래 해보고 싶은 은밀한 취미로 삼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에는 혼자 몰래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요즘 자꾸 목과 어깨가 결려 병원에 가려던 참이었는데 그냥 혼자 마사지를 받고 왔다. 요 며칠 은밀한 사생활을 즐기고 나니 왜 어른들이 뒷주머니를 차는지 알 것 같았다. 꼬치 여섯 개 세트에 맥주까지 이만육천원이 나왔다. 남편과 마셨다면 오만 원 가까이 나왔을 텐데 딱 1인분 어치를 먹고 나온 것이다.  


혼술은 어쩐지 마실 때보다 집으로 가는 길이 더 쓸쓸하다. kf94 마스크 위로 목도리를 칭칭 감고 또 그 위로 안경을 걸치니 안경에 하얗게 김이 서리고 나는 그 하얀 안경 너머로 버스 번호를 확인한다. 잠시 후 도착 버스는 우리집에 가는 버스가 아니다. 15분이나 기다려야 한다. 취기가 올라 어지럽고, 내가 먹은 꼬치 냄새가 내 온 사방을 에워싼다. 


집으로 들어오니 거실에는 아이들이 각자 놀고 있고, 침대에서 눈에 총기 없는 남편이 누워있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는 대신 외투만 벗고 부엌에서 설거지를 한다. 다음에는 집 앞 술집을 가야겠다. 버스 기다리는 건 너무 쓸쓸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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