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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백반 Aug 13. 2024

선택을 강요받는 세상

어느 자가면역질환자의 투병기

나는 자가면역 질환자다.

자가 면역이라는 질환을 작년 처음 알게 되었다. 

아토피, 건선, 류머티즘 관절염, 루푸스.. 등등

나는 그중에서 원형탈모를 앓고 있다.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2%의 사람들이 걸리는 질환이라는 흔한 질환.

작년 5월 코로나에 걸리고 한 달 후에 뒤통수에서 원형탈모를 처음 발견 하고

석 달만에 모든 털이 다 빠졌다.

전두에 이어 전신까지 털이 빠지는 경험을 한 사람들은 과연 원형탈모를 겪는 2%의 사람들 중  

몇 %가 속할까?


작년 8월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만 급급했다.

혼자 있으면 자동스레 우울해졌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이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의 힘이 세졌다.

거울을 바라보면 낯선 내가 나를 바라보았다.

핸드폰으로 두피사진을 찍으면서 새롭게 생겨난 자국들이 이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결국, 다 빠져야 끝날 거야?라는 말을 되뇌면서..

용하다는 한의원에 가서 한약을 지어먹었고, 

스테로이드와 면역억제제를 처방받아먹었다.

고용량 스테로이드는 불면을 동반했다. 

원형탈모에서 가장 잘 지켜져야 할 생활 습관이 숙면이었는데, 

열대야가 한창이던 그때의 나는 뜬 눈으로 밤을 새우며 떨었다.


모자는 7월 말부터 썼고 그전에는 헤어밴드를 했다, 

허리 좀 위로 오던 머리는 단발로 잘랐으며 몇 개월 후면 종료되겠지란 기대를 품었다.

신약은 9월부터 먹었다. 

한 알에 2만 원이라고 했다.

내가 가진 실비청구는 하루 5만 원이 전부라 나머지 금액은 내가 감당해야 했다.

몇 개월 먹고 좋아지면 당장 끊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니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0월 말부터는 솜털이 나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신약을 먹어도 반응이 없다고 했는데 나는 다행히 반응이 있었다.

한꺼번에 빠진 털은 한꺼번에 자랐다.

미용실에 가지 않았지만 마치 스포츠머리를 자른 것처럼 함께 자랐다.

1월이 되자마자 모자를 벗었다. 

머리가 시렸지만 상관없었다. 

모자 없이 솜털이 보송보송했던 내 머리가 기특해서 바람을 쐬어주고 싶었다.

몇 달 동안 보지 못했던 엄마를 보러 친정에 갔다.

빡빡머리인 40대인 딸을 보는 엄마를 그때는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으므로... 


2월에는 원하는 회사에 취업제안을 받았다.

꿈만 같았다. 

쓸모와 가치에 대해 늘 물었던 나는

광야에서 그저 소리를 치고 있는 것 같은 몇 년의 시간에 대한 보상 같았다.

누군가 내 목소리를 들어준 것만 같았다.

다 나은 것만 같았다.

아니 다 나았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기회를 잡고 싶었고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두 달, 4월 초 다시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설마 이번에도 같은 증상이 나타날까 싶었는데, 

보송보송하게 잔디마냥 잘 자라던 머리에 한 달 만에 다시 원형탈모가 생기게 되었다.

나는 내가 미웠다.

나는 나를 어리석었다고 생각했다. 

다 낫지도 않았는데 덜컥 취업을 해서 사단을 냈다고 생각했다.

동료들에게도 면이 없었다. 다행히 그들은 나의 건강을 가장 높은 우선순위로 삼아주었다.

두 달 만에 퇴사를 결정했다.

이번만큼은 내 머리를 지키고 싶어서..

다시는 23년의 여름을 겪고 싶지 않아서...


할 수 있는 걸 해보자고 결심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니 힘이 빠져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언지 생각하고 해내기로 결심했다.

밀가루를 끊었다.

운동을 늘렸다. 

숙면을 위해 침대에 핸드폰을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고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다. 

나는 나을 거라고, 나을 수밖에 없다고 

몸에 좋은 건 다 해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재발이 된 날짜는 4월 말.

밀가루를 끊은 지 100일이 넘는 지금.

한 알에 2만 원을 하는 신약을 1년 먹은 지금.

나는 정수리가 훤히 다 보인다.

이제 가릴 수가 없어서 작년에 썼던 모자를 꺼넀다.

누군가의 말처럼 자가치료로 마음을 돌려야 하나라는 기로에 서있는 지금.

이제 신약의 약효가 없을 때 차라리 끊는 게 어떻겠냐라는 의견을 받은 지금.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미 이 고민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저울은 기울어진 것도 같은데 말이다.


웃기게 살고 싶었다.

즐겁고 재미있게, 

누군가를 만나면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히죽거리고 낄낄거리고... 

정수리가 훤해지고 머리를 들추면 구멍이 난 두피를 보니

모습이 웃기게 되어버렸다. 


자기 연민을 잘 피해서 다독거렸던 지난 몇 달이 떠오른다.

인생은 늘 그렇듯 나의 노력과 비례하는 경우가 매번 있는 건 아니다.

속상해서 눈물이 찔끔 나지만, 

결국은 또 시간은 지나가버릴 테니까..

나의 선택에 더 이상 후회나 미련을 두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한다.

나는 프로 결심러니까.

나는 희망 없이 살기 어려운 사람이니까.


머리카락은 잃어도, 

인생을 잃을 순 없잖아?

나의 전부는 나의 머리카락이 아니고

나 자체니까..

잊지 말길 바래.. 

나를 구성하고 있는 무언가의 상실이 나의 상실이 아니라는 것을.

부디 감정에 잡아 먹히지 않기로 다짐하며

내일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려야겠다.

이제 더 이상 그 독한 약은 먹지 않기로,

설령 지금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은 시기를 만날 테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의 글을 보며 힘을 낼 것이다.


세상을 살며 선택을 강요받는 순간들이 있다. 

피할 수 없는  순간들.

모두 나에게 좋은 결정이 될 수 없겠지만

적어도 후회와 회한을 갖지 않기로

나는 이 상황에서 가장 좋은 선택을 늘 해왔으니까.

이번 역시 그런 경험이 될 거야 라며 나에게 말을 건넨다.

고생했고, 고생하고, 고생할 나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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