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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백반 Jul 25. 2024

오늘의 애도

아빠에게 술이란 무엇인가

아빠는 술을 좋아했다. 

나는 아직도 아빠의 날숨에서 섞여 나오는 술냄새를 기억한다.

아니, 기억할 수밖에 없다. 

후각이 각인한 기억은 강렬하므로, 아빠에 대한 대부분의 기억은 술과 투병 밖에 없었으므로...


아빠는 술을 좋아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대체로 밥을 먹지 않고 술만 먹는 아빠의 버릇 때문에 엄마는 늘 안절부절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나를 아빠 옆에 앉혔고 나는 아빠에게 밥을 먹였다. 

" 아빠. 아~  " 숟가락에 밥을 떠서 아빠의 눈치를 살피고 입에 밥을 넣었다. 

아빠는 눈을 이내 흘겼으나 내가 준 밥은 먹어주었다. 

나는 묘한 안도와 우월감을 느꼈다. 

나는 아빠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라고 느껴졌다.


아빠가 엄마의 눈치를 살피고 잠시 밖으로 나가면, 

엄마는 나에게 손짓을 해서 아빠 뒤를 밟게 했다. 

어느 정도 아빠 뒤를 밟다가 뒤에서 다가가 아빠 손을 잡으면

아빠는 그런 나의 존재를 알았다는 듯 손가락을 하나 내주었다. 

아빠의 손은 커서 나는 손을 벌려 아빠의 손가락하나를 잡았다. 

아빠가 내준 건 손가락이 아니라 허락 같았다. 

아빠 옆에 있어도 된다는, 아빠랑 같이 가자 라는..


그렇게 향해 간 아빠의 행선지는 작은 슈퍼였다. 

그 슈퍼는 소주를 잔 단위로 팔았다. 

사이다를 따라먹는 유리잔에 아빠는 소주를 콸콸 부어 세 번에 나눠 마셨다. 

안주는 주로 양갱이나 누룽지였는데, 어렸을 때 나는 소주가 아주 달디 단 물로 알았다. 

성인이 된 이후 먹었던 소주는 생각보다 너무 써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아빠는 이 쓴 걸 세 번에 나눠 마셨구나라는 놀람과 경탄이 섞였다.

이 쓴 걸 그렇게 달게 먹었던 아빠가 궁금했다. 


양갱은 슈퍼에서 주로 구입했고, 누룽지는 화장지에 싸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셨다. 

나에게 간혹 먹을래? 이렇게 물어보곤 했지만 

나는 휴지가 붙어있는 말라버린 누룽지를 먹고 싶지 않았다. 

머리를 도리도리 하면 아빠는 휴지 속 누룽지를 한입에 털어 넣고 와그작, 와그작 씹어 먹었다. 

너무 맛있게 드시고 계셔서 순간 후회를 하곤 했다. 

막상 먹었다면 맛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빠는 술을 마시고 취한 후 집에 돌아오면,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이야기의 주제는 엄마가 싫어할만한 것들이었는데,

엄마와 결혼하기 전 누군가를 좋아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걸 웃어야 할지 이상하게 여겨야 할지

평소에 말이 없던 아빠가 해실거리며 나에게 

농담을 섞어 이야기하는 것이 좋아

그저 듣고 웃고만 있었다. 

가끔은 " 아빠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냐? "라고 말을 하기도 했지만, 

아빠는 "알지~근데 그렇게 돼 불더라고 "라며 

미워할 수 없는 말을 했다. 

지금은 그 말들이 무엇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기억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아빠와 유쾌한 시간을 보낸 감정은 남았으므로.. 


아빠가 술에 취해 들어오시면 평소 하지 않았던 요리를 하곤 했다. 

요리라고 할 것도 없는 음식이었으나, 

아빠에게는 대단한 자부심이었다.

라면을 끓이고 거기에 국수를 넣은 다음 계란을 풀어서

언뜻 보았을 때 사람이 먹는 음식보다는 집에서 키우는 포유류가 먹을만한 비주얼이었다.

라면은 아무것도 넣지 않는 것만 먹었던 나에게 

아빠가 "먹을래? 아빠가 끼린 라면? "이란 권유를 하면

나는 나도 모르게 홀린 듯 한 그릇 받아먹었다. 

라면에 넣은 계란을 먹지 못했던 시절이었으므로 나는 몇 숟가락 먹다 남겼다. 

아빠는 그 많은 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마치 오늘 하루 한 끼도 먹지 않았던 사람처럼.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었다. 

술이 취한 아빠 옆에는 나밖에 없었으므로. 

나는 아빠와 단둘이 있었던 밥상이 좋았다. 


아빠가 술이 취해 기분이 좋아지는 금요일이면 우리는 설렘과 우려가 공존했다.

차가 있었던 큰오빠에게 마트에 가자고 대장처럼 말하고선

마트에 도착하면 고르고 싶은 게 있음 다 고르라고 지령을 내렸다. 

우리는 아빠가 술에 취해 잠이 들면 어쩌나란 생각을 하곤 했지만,

눈은 이미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로 가있었다. 

'도전 쇼핑왕'처럼 주어진 시간 안에 원하는 것을 골라야 했고, 

고른 물건은 엄마가 흘겨보는 눈빛을 통과한 다음 결제가 되었다. 

신용카드가 없었던 아빠는 지갑에 늘 현금을 가지고 다니셨는데, 

현금을 세지도 못할 만큼 취한 아빠 대신 내가 돈을 세야 했다. 

결제를 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빠는 잠이 들었다. 

뒷날 잠이 깬 아빠는 그 일을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오전 내내 숙취로 고생을 했다. 

 

아빠는 왜 그렇게 술이 좋았어?라고 정작 묻지 못했다.

아빠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아빠가 술에 취해 있었을 때였으므로.. 

아니 그렇게 궁금했을 때는 아빠가 너무 많이 아파있었을 때였으므로, 

묻지 못했다. 그래서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신 지 6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후회가 든다. 

아빠가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영영 알 수 없게 되어서 말이다.


아빠는 술 때문에 병을 얻었지만, 

나는 아빠가 취한 모습이 그리 싫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술에 취한 아빠는 행복해 보였으므로,

술에 취한 아빠와의 추억이 많았으므로.

술 좀 먹었다고 그 긴 시간을 아파야 했을까?

아빠의 인생 절반을 그렇게 보내야 했을까?

소용없는 질문이 떠돌지만, 

세상은 늘 그렇듯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천국이 있다면 아빠는 천국에 있을 것이다. 

아빠의 천국에 술이 있다면 

아빠는 디오니소스처럼 매일매일 술을 마시고 있을 것이다. 

아빠에게 술이 어떤 의미였는지 모르겠지만, 

아빠에게 너무 좋았던 것이라면

아무 걱정 없이 매일 행복하게 그곳에서 마시고 계시면 좋겠다. 


아직도 나는 매일 아빠를 기억한다. 

나에게 보내준 미소들.

나에게 보여준 사랑들.

눈빛으로 나에게 빛을 심어준 나의 아빠.

지금은 억울함 보다는 그리움이 더 커지게 되었는데,

그만큼 아빠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진다. 

그 흐릿한 기억을 이렇게 글로 잡아본다. 

더 흐릿해지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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