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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하 Aug 11. 2020

한 여름의, 정동진 독립영화제

2019 정동진 독립영화제에서의 기록


/ 프롤로그 

어렸을 때부터 그냥 영화가 좋았다.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주고, 사회문제를 고발하고, 소수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공감하고 위로받고 또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은 점점 더 커졌고 막연하게 영화인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열정 가득했던 고등학생 때는 직접 내 이야기가 담긴 짧은 영화를 만들어보고, 영상도 자주 찍고, 영화과 진학을 꿈꾸며 살아갔다. 하지만 꿈을 반드시 이룰 수는 없는 법. 영화인이 되기 위해 세워둔 첫 번째 목표이자 꿈이었던 영화과 진학은, 처참히 실패했다. 애초에 용기가 없었던 내 탓일 거다.

그렇게 영화와 전혀 관련 없는 전공으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도 여전히 날 위로하고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준 것도 영화였다. 하지만 나 스스로 그 어떤 것도 해낸 게 없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는 두려운 존재가 되어버렸고 그저 취미 정도로만 남겨놓자는 어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결국 내게는 꿈을 잃지 않도록 용기를 가져다줄 터닝포인트가 필요했다.




/ 지원과 합격

한참을 고민하던 시기에 마침 정동진 독립영화제에서 자원활동가를 모집하고 있었다. 언뜻 이름은 들어본 영화제였지만 자원활동가는 어떤 일을 하고, 영화제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몰랐기 때문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정동진 독립영화제에 대해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했다. 자원활동가들을 '심장'이라고 표현하던 이 영화제의 모든 것들에는 자원활동가들의 손이 닿아있었다.

모든 것을 함께 꾸려나간다는 의미가 가득 차 있던 영화제에 일원이 되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글을 쓰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순간을 기록하는 데일리팀으로 참여하길 원했다. 일주일을 고민해 지원서를 가득 채워 넣었고 면접도 후회 없이 보고 왔다. (횡설수설 파티였지만..^^)



그렇게 감사하게도 정동진 독립영화제 자원활동가에 합격했다. 오랜만에 보는 '합격'이라는 글자가 어찌나 행복하던지.




/ 영화제 개막 D-2


합격 문자를 받은 뒤 약 한 달이 지나 어느덧 개막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말 그대로 '짧고 굵은, 짤꾹'으로 참여하는 영화제였기 때문에 개막 이틀 전부터 시작된 활동. 가장 먼저 강릉 독립예술 극장 '신영'에 모든 자원활동가들이 모여 어색한 공기 속에서 사전으로 몇 작품을 관람하고, 집행위원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팀장님이 진행한 오티를 들었다.


그렇게 오티가 마무리되고 숙소로 이동해 간단히 짐을 풀고 다 같이 저녁을 먹으며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낯을 가리는 편이지만 '영화'라는 공통된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니 조금 편해졌다. 그렇게 자정까지 시간을 보내다가 내일을 위해 숙소로 돌아갔다.




​/ 영화제 개막 D-2

개막 하루 전에는 영화제가 열리는 정동초등학교로 향했다. 노란 빛깔의 아기자기한 정동초등학교에 마음을 뺏긴 순간. 멀리 보이는 산과 논까지 다 좋았다.




제일 바빴던 하루였다. 신영 극장에서 가져온 영화제에 사용될 모든 짐들을 옮기고, 가장 중요한 에어 스크린을 설치하고, 운동장에 의자를 깔고, 지프 홀도 정리했다. 날씨도 덥고 직사광선에 취약한 사람인지라 머리가 띵하고 얼굴도 빨개진 상태였지만 하나씩 완성되어가는 게 정말 뿌듯했다.




어느 정도 세팅을 다하고 다시 강릉으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데일리팀은 신영극장에 가서 따로 회의를 진행했다. 데일리팀이 해야 할 일은 사진 촬영, 기사 작성, 그리고 관객수 집계. 회의할 때는 기사 작성이 제일 걱정됐는데 막상 영화제 당일이 되니 관객수 집계가 가장 힘들었다. 어둠 속에서 사람 수를 세기란 하늘에 떠있는 별 세기와 맞먹는 듯했다.




/ 영화제 개막 및 1일 차

드디어 영화제의 개막일. 꿈꿔왔던 시간이 찾아왔다. 오전에는 지프 홀에 테이블과 의자를 깔고, 부스에 짐을 옮기며 본격적인 개막 준비를 했다.



그렇게 개막식이 시작되는 오후 7시 30분에 가까워지자 많은 관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언제 봐도 귀엽고 신박한 아이디어인 '땡그랑 동전상'과 일 년 뒤 내게 보낼 수 있는 별밤 우체국 등 비롯한 개막 전 정동진 독립영화제의 순간을 사진에 담아내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돌아다녔다. 그렇게 개막 시간이 다가왔고, 이상희 배우와 장우진 감독의 사회로 본격적으로 정동진 독립영화제가 시작되었다. ​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서서 영화를 보기도 하고, 이곳저곳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관객수 집계도 하고, 사진도 찍고, 내일 적을 데일리 기사의 틀도 잡았다.

그렇게 첫날 상영이 끝이 나고 땡그랑 동전상 수상작도 발표했다. 첫 날을 무사히 잘 마쳤다는 안도감과 함께 첫 데일리 기사를 올리고 짤꾹끼리의 뒤풀이도 시작되었다.



함께한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해가 떠버렸다. 밤새는 걸 제일 못하는 내가 이렇게 멀쩡한 정신으로 깨어있을 수 있다니! 진짜 신기하고 웃기기까지 했다. 아무튼 그 길로 해가 더 떠버리기 전에 얼른 정동진 해변으로 달려가서 일출을 봤다.

새해에도 보지 못한 일출을 한 해의 반이 다 지나간 지금에서야 보게 됐는데, 왜 정동진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출을 보러 모이는지 알 것 같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출임에도 하나의 새로운 현상을 본 것 마냥 신기하고 아름다웠고, 몸이 방방 뛸 정도로 멋진 광경이었다. 일출을 오래오래 눈에 담고 나서 숙소로 돌아와 씻으니 어느덧 아침 6시. 영화제 2일 차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에 얼른 눈을 붙였다.




/ 영화제 2일 차

3시간 자고 일어나 영화제의 둘째 날이 시작되었다. 오늘도 역시나 바빴다. 오전에는 <유월>의 BEFF 감독님과 인터뷰를 진행했고, 웹데일리에 올릴 기사 두 개를 작성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GV 현장, 자원활동가 친구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바쁘고, 모기에 여러 방 물렸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만큼 행복한 게 없어서 그런가.




2일 차 상영을 마치고 오늘의 땡그랑 동전상은 <나는보리>의 김진유 감독에게 돌아갔다.




워낙 바빴던 하루라 2일 차의 데일리 마감은 새벽 3시에야 마무리되었다. 힘들긴 했지만 뿌듯한 시간이었고, 마감 후에 먹는 새우탕의 맛이 이렇게 완벽하다니.








/ 영화제 3일 차. 폐막일

어느새 다가온 영화제의 마지막 날. 오전에는 심희섭 배우님과 백은하 소장님과 함께한 <5교시 영화 수업> 프로그램에 사진 기록을 위해 참여했다. 사람 심희섭의 배우로서의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 나눈 2시간가량의 프로그램이 마무리되고 조심스럽게 백은하 기자님께 다가가 사인을 받았다. 영화기자가 꿈이라고 말씀드리니 '꼭 꿈을 이루세요'라고 적어주셨다. 이 한마디가 내게 용기와 힘이 되었다.




점심을 먹은 오후에는 2일 차 땡그랑 동전 상의 수상작 <나는보리> 김진유 감독님, 곽진석 배우님, 허지나 배우님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갑작스럽게 요청한 인터뷰임에도 응해주신 감독님과 배우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다. 특히 이번 인터뷰는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오늘처럼 웃고 울컥하고 공감하는 인터뷰를 다시 해볼 수는 있을까.




그렇게 오후 8시에 맞추어 영화제 3일 차, 마지막 날의 상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오늘은 촬영과 관객수 집계를 맡은 날.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니 손톱 달이 예쁘게 떠있었다. 벌써 마지막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났지만 정동진에서 보낸 3일은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관객수 집계를 하고 난 뒤에는 부스 쪽에 가서 1년 후 내게 오는 편지도 작성해 별밤 우체통에 넣어보고,




오전에 진행한 인터뷰 데일리 기사도 작성해서 업로드 완료.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흘을 함께했던 내 데일리팀 자리도 사진으로 담아봤다.




그리고 영화제 마지막 날 뒤풀이에서는 자원활동가 증서와 영화제 배지, 정동진 영화제 에세이 등을 받았다. 전달받은 자원활동가 증서에 자원활동가들끼리 서로서로 롤링페이퍼를 적었는데 내 활동가 증서가 예쁜 마음들로 채워졌다. 덕분에 감동이 한가득.





/ 영화제 마무리

영화제가 끝난 다음 날에는 정동초등학교를 깨끗이 정리했다. 지프 홀도 제자리로, 에어 스크린도 제자리로, 운동장도 제자리로. 다 치우고 나니 영화제의 기억이 마치 신기루 마냥 느껴졌다.




그렇게 정리를 다하고 짐도 창고로 옮겨두고 나서 다 같이 식사를 먹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데일리팀을 담당해주셨던 사무국장님과도 아쉬운 인사를 하고, 집행위원장님과도 악수를 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



/

터닝포인트가 필요했던 시기에 좋은 영화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고 왔다. 첫 영화제 자원봉사활동을 정동진 독립영화제에서 하게 된 건 내게 큰 행운이 아닐까 싶다. 또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남기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6일이라는 시간 동안 얻게 된 소중한 경험은 앞으로 나아갈 길에 큰 자리를 차지할 거라 믿는다.

'별이 지는 하늘, 영화가 뜨는 바다'라는 슬로건처럼 낭만이 가득했던 정동진. 고맙고 또 고맙다. 정동진 독립영화제 안녕! 다음에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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