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이야기
오늘은 20km를 달리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장마라고 하는데, 가끔 천둥 번개와 함께 소나기가 잠시 내리고는, 이내 35도가 넘는 불볕더위가 기승입니다. 이런 무더위에는 새벽이나 해 질 녘에 달리는 것이 최선입니다. 저는 새벽 달리기를 더 좋아합니다. 해가 사라진 후, 낮에 뜨겁게 달궈진 대기의 온도가 밤새 식어 새벽이면 조금은 더 시원하기 때문입니다.
더워지기 전에 돌아와야겠기에 아침 5시부터 몸을 움직이며 달릴 채비를 합니다.
저의 달리기 속도로 20km를 달리면 대략 2시간 반 정도가 걸립니다. 오늘 달리기의 목표는 호흡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심박수 130~150 bpm 범위를 유지하며 꾸준하게 달리기입니다. 저의 경우, 심박수가 155 bpm을 넘으면 코로 숨을 들이쉬기가 힘들어져 자꾸 입을 벌리고 호흡을 하게 되어 안정적인 호흡이 어렵습니다. 페이스를 조절하여 안정적인 호흡을 해야 오래 달릴 수가 있습니다.
이번 달리기의 코스는 소양강변을 따라 소양댐 근처까지 돌아오는 소양강 상류 코스입니다.
5시 반쯤 집을 나서니 이제 막 해가 뜨기 시작해 아직은 햇살이 강하지 않습니다. 산책로에는 벌써 시원한 새벽바람을 맞으며 산책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나와 걷고 있습니다.
탁탁 탁탁... 조깅하듯 경쾌하게 하지만 천천히 달리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오래 달려야 하기 때문에 초반부터 페이스 조절을 잘해야 합니다. 산책로 옆 지천에는 물오리와 백로가 먹이를 찾는 모양입니다. 바닥에는 여러 모양의 애벌레와 개미가 여기저기 바삐 움직입니다.
손목에 찬 달리기용 스마트 워치에서 이내 심박수가 100이 넘었음을 알리는 비프음이 들립니다. 시원한 새벽바람과 아직은 깨어나지 않은 아침 풍경 덕에 다리의 움직임도 가볍게 느껴집니다.
소양강 철새도래지 앞에 이르니 물안개가 자욱합니다. 낮 기온이 높은 요즘, 새벽이면 거의 매일 물안개를 볼 수 있습니다. 새들도 시원한 곳이 좋은지 유독 철새들이 모여 있는 지점의 물안개 속 산책로를 지날 때는 서늘한 기운마저 느껴집니다. 산책로를 따라 3km 정도 달려 아파트 단지에서 좀 벗어나니 새벽 운동을 나온 사람을 만나는 것도 뜸해지기 시작합니다. 이마에서 눈앞으로 땀도 뚝뚝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이제 걷는 사람은 거의 볼 수 없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라이더를 종종 만납니다. 해가 뜨는 동쪽 방향을 마주하고 뛰는 코스라 구름 뒤에서 점차 햇살이 비칩니다. 여름 햇살이라 새벽 해인데도 벌써 강렬한 열이 느껴집니다.
8km 지점에서 작년에 새로 생긴 소양 7교를 건넙니다. 소양 7교에서는 소양댐이 보입니다. 소양교 옆으로 새 다리가 생기기 전 이곳의 유일한 건널 다리였던 콧구멍 다리가 보입니다. 새로운 다리가 생긴 후 안전 문제로 출입이 금지되어 지금은 들어가 볼 수가 없습니다. 달려서 이곳을 지나자니 야트막한 콧구멍 다리에서 불던 시원한 강바람이 유독 그리워집니다.
이미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지만, 얇은 운동복에 배인 땀이 강바람에 식으며 몸의 온도를 낮춰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소양강을 건너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가 잘 정비된 반대편 코스로 접어듭니다. 이곳은 소양댐으로 올라가는 길목이라 소양강 풍경을 보며 쉴 수 있는 유명한 카페와 음식점들이 많습니다. 조건반사로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 생각이 절실해집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연 곳은 없네요.
12km를 달리니, 달리기 시작한 지 1시간 반이 넘었습니다. 다리의 움직임이 묵직해져서 페이스를 더 올리지 못합니다. 아침 7시가 넘으니 햇빛은 이미 따갑습니다. 목도 마릅니다. 신북 5교 앞에서 코스를 잠시 이탈하여 근처 편의점으로 가서 음료수를 하나 마십니다.
이때쯤, 잠시 갈등을 합니다. 원래 계획했던 코스가 아닌 좀 더 빠른 길로 되돌아가면 3km를 덜 달릴 수 있습니다. 어차피 혼자 나선 길이라 20km 달리기는 다음으로 미뤄도 뭐라 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고쳐 먹습니다. 출발점을 나서며 20km를 목표로 했으니 느리더라도 나머지 8km를 달려 20km를 채워보렵니다.
편의점에서 나와 다시 코스에 진입합니다. 이제부터 8km 달리기가 시작됩니다.
햇빛은 더욱 따가워지고, 자전거 도로에는 나무 그늘도 사라져 갑니다. 귀에 꽂은 에어팟을 통해 들려오는 라디오 방송의 날씨예보에서는 오늘이 중복이라고 합니다. 중복이라니… 복날 더위 속을 달리고 있습니다.
16km 지점에서 그늘이 없는 산책로에 접어들며 무더위가 온몸으로 느껴지고 다리의 움직임은 더 무겁습니다. 몸이 힘드니 목이 마른 것 같다는 신호를 뇌가 계속 보내는 듯합니다. 몸보다는 마음의 소리를 따르기로 합니다. 다시 주변 편의점을 찾아 음료수 한 캔을 더 마십니다. 코스를 벗어나 편의점까지 걷는 동안 몸은 잠시 휴식합니다.
다시 코스로 들어와 소양 1교를 건너 남은 4km를 달립니다. 이 구간은 찻길 옆 자전거 도로라 이제 출근 차량들의 소음과 함께 달립니다. 8시가 넘은 시간이라 햇빛은 더 뜨겁고, 차도의 열기까지 가세해 무거운 다리를 끈적한 중력으로 당기는 듯합니다. 이제 뛰는 건지 걷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겨우 겨우 출발 지점까지 도착했는데 아직 500m가 모자랍니다. 500m를 더 달려 20km를 꽉 채우고 달리기를 멈춥니다. 5시 반에 시작한 달리기가 9시가 거의 다 되어 끝났습니다.
2시간 29분 18초.
오늘 20km를 완주하는데 걸린 시간입니다. 중간에 음료수를 마시며 쉰 시간은 뺀 시간이지만요.
내 페이스대로 달리니 장거리를 달렸어도 무릎이나 다리 통증이 없습니다. 1년 반 동안 꾸준히 달려온 결과이겠지요. 요 몇 달은 짧은 거리라도 거의 매일 달리며 내성을 키우기도 했고요.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땀을 옴팍 뒤집어쓰고, 호흡도 거칠지만, 20km를 달려도 거뜬한 몸과 다리의 상태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기에 더없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