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살, 달리기를계속 하는이유
작년 2월 1일부터 달리기를 시작해서 꼬박 1년이 되었다. 얼마나 가겠냐는 주변의 염려는 관두고라도 나 스스로도 달리기를 계속하게 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해보고 싶은 걸 시도는 많이 하지만, 삼일이면 시들해지고 그저 유야무야 대충 끝내버리는 성격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특히나, 운동이라면 그저 찌뿌둥한 일상에 필요하다고 하니, 얇은 귀로, 헬스, 요가, 필라테스 등을 하다 말다 하면서 결국에 말아버리곤 했다.
그런 내가 달리기에 입문한 지난 1년간, 처음 걷듯이 뛰어 본 4km를 시작으로, 마라톤 대회의 10km 코스도 달려보고, 혼자서 19km를 뛰어보기까지 해 보았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2020년 한 해 동안, 달린 거리는 500km가 넘고, 올해는 벌써 누적거리가 200km를 넘었다.
어쩌다가 달리기를 계속할 수 있었는지 나도 의아해서 하나씩 그 이유가 될 만한 것들을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글로 남겨 본다.
러닝크루
함께 달릴 사람들이 있으면 달리게 된다.
맨 처음 달리기를 해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자마자 인스타그램을 검색했다. #달리기 를 검색하니 러닝크루라는 단어가 보였고, 곧 #춘천러닝크루 를 찾을 수 있었다. SNS에 공지된 시간에 공지된 장소에 나가서 정해진 거리를 뛰고 오면 된다. 이렇게 공지된 정기 러닝에 참여하면 처음엔 초보 러너를 위해 준비된 비교적 느린 페이스와 짧은 코스로 달리기를 시작할 수 있다.
러닝크루에는 젊은 친구들이 많다. 친목도모보다는 운동을 위한 모임이다 보니 나이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여러 번 정기 러닝에 참여하며 낯을 익히게 된 친절한 크루들이 달리기에 대한 여러 정보도 알려준다. 함께 달리며 페이스와 거리에 익숙해지면, 혼자서 달릴 수 있는 자신감도 생긴다.
춘천
이왕이면 경치 좋은 곳을 달린다.
내가 사는 춘천은 소양강을 끼고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집 앞 산책로를 따라 1~2km 정도 달리면 소양강 산책로와 연결되니, 3km, 5km, 10km 코스를 만들어 달릴 수 있다. 소양강의 철새, 저녁노을, 아침의 강바람 등이 달리기를 더욱 즐겁게 한다. 게다가, 각종 마라톤 대회가 열리기도 하는 의암호 주변으로 러너들을 비교적 자주 마주칠 수 있어서 달리기에 대한 자극을 받을 수도 있다.
운동시간
비교적 짧은 시간에 운동이 가능하다.
하루에 20~30분 정도 달리면 3km~5km 거리를 달리게 된다. 1km 이상을 달리면 숨이 가빠지고, 몸이 더워지고, 3km부터는 흐르는 땀에 눈이 따갑다. 어느 정도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달리면, 3~4km 정도 지점부터 다리의 움직임도 안정되며, 달리기가 편안하게 느껴진다. 하루 30분 정도 운동으로 땀범벅이 되는 개운함을 경험할 수 있다.
심박수
심장이 뛰는 경험을 매일 할 수 있다.
사실 달리기를 처음 해보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이 가쁘게 올라가는 숨소리와 심하게 쿵쾅거리는 심장이었다. 갑작스럽게 심장이 뛰는 건 좋지 않겠지만, 서서히 페이스를 올리면서 심박수를 올리는 경험을 하게 되고, 어느 정도의 심박수가 나에게 무리를 주지 않는지를 알게 된다.
단순함
아침에 눈을 뜨면, 땀을 잘 흡수하는 옷과, 발목을 잡아주는 러닝 양말과 러닝화로 준비를 마친다.
집 앞 5km를 달리고 오면 되니 이렇다 할 준비랄 게 없다. 물론, 나가기 전 날씨와 기온 확인은 필수이다. 내 두 다리로 하는 운동이다 보니, 번거롭게 준비할 게 많지 않아 좋다.
페이스
처음 정기 러닝에 참여했을 때, 페이스를 물어봐서 모른다고 했다. 1km 이상을 달려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처음 페이스는 아마도 800 (팔공공, 1km 달리는데 8분이 걸림.)이었을 거다. 지금은 600~630 정도를 달린다. 페이스를 더 올리고 싶다는 욕심도 들지만, 심장과 다리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는 나이인지라, 그 정도 페이스에 만족하며, 페이스를 유지하며 장거리를 달리는 것에 더 집중한다.
거리 갱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무런 준비 없이 처음 4km를 오기로 달리고 난 후, 며칠은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그래도 평생 달리기는커녕, 걸어서도 잘 안 가는 거리를 달리면서, 내가 느껴온 멀고 가까운 거리에 대한 감각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거리에 대한 욕심이 생겨 달리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매일 5km를 달리는 미션에 도전했다. 달린 지 이틀 만에 다리 통증과 족저근막염으로 거의 한 달을 쉬고 난 후에야 욕심을 버렸다. 5km를 부상 없이 달리려면, 최소 10회 이상 3km를 달려보고, 몸의 상태를 살펴본다. 그렇게 1km씩 늘려가며, 달리는 거리와 내 몸의 상태를 살피며 달린다. 달리기 전후 스트레칭과 마사지는 필수다.
나이와 지구력
빠르게 달리지는 못하지만, 오래 달릴 수는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한다. 특히, 8km 이상의 장거리 달리기는 처음부터 페이스 조절을 잘하면서 천천히 피치를 올린다. 나이가 들어가니 다행히(?) 인내심이 늘어간다. 덕분에 오래 달리며 고비를 넘기는 지구력도 늘어가는 것 같다.
무언가를 시작해서는 오래가지 못하고 금세 싫증 내는 성격도 나이 덕에 사라진 건지, 달리기는 일 년 이상 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민워치
처음 나간 정기런에서 크루들이 달리기 시작 전에 모두 손목을 보며 뭔가를 누르고, 옆에서 달리고 있는 나에게 페이스와 거리를 알려준다. 러너용 스마트워치인 가민워치이다. 처음엔 핸드폰 앱을 켜고 핸드폰을 들고 달렸지만, 가민워치는 GPS로 연동되어 핸드폰을 들고 달리지 않아도 모든 정보가 가민 서버를 통해 핸드폰 앱으로 전송된다. 내가 달린 코스, 거리, 페이스, 시간, 심박수, 운동성과 등이 표시되고, 히스토리가 저장되니, 달리기를 보다 체계적으로 지속할 수 있다.
SNS 공유
달리기를 하며 매일 달라지는 풍경을 사진으로 찍는다. 함께 달릴 때면 크루들이 서로 달리는 모습을 찍어주기도 한다. 이 사진을 달리기 앱에 올리면 사진 위에 그날그날 달린 거리, 페이스 등을 표시할 수 있다.
사진을 SNS에 올리며, 매일의 기록과 내가 본 풍경 등을 함께 공유한다. 다른 크루들이 달린 코스가 올라오면, 내일은 저 코스를 한 번 달려봐야겠다고 생각한다. 또, 장거리를 달린 크루의 기록이나 아침 일찍 달리기를 끝내고 공유한 사진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하게 된다.
코로나로 실내 운동이 어려워진 요즘에도, 마스크를 쓰고 달리면 답답한 마음이 해소된다. 달리다 보니 몸은 물론, 마음까지 건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인생은 마라톤이라고들 한다.
달리다 보니 알겠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달리며,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가 다시 차분해지는 경험을 해보며, 처음 목표했던 거리의 반환점을 돌면서, 매 순간, 내 발을 딛는 그곳에서 인생을 내가 살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