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품고 있던 가시들
둘째를 학교에 등교시키는데 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네모가 제가 말할 때 자꾸 친구들과 떠들고 방해를 하는데 집에서 좀 교육시켜 줄 수 있나요?"
그 순간 첫째 세모의 ADHD라는 그림자가 드리우던 그날이 겹쳐졌다. 세모의 담임 선생님께 같은 말을 들었었다. "세모가 친구가 노는데 자꾸 방해를 하고 대집단 수업 때에도 방해를 많이 합니다." 이번에도 같다. 딱 한국나이로 5살 그 나이. '올 게 왔나? 믿었던 너마저.' 캐나다 학교가 더 자유로울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더 직접적으로 피드백을 주시며, 한 가지 더 이 모든 걸 영어로 소통해야 한다는 것. 쉽지 않다.
처음엔 선생님께 이렇게 말했다. "원래 잘하는 아이인데 그날만 그랬던 것 아닐까요?" 그러고 돌아서 학교를 나오는데 마음이 욱신댔다. '너도 알고 있잖아. 둘째도 ADHD일 수 있다는 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인정했다. 내 아이가 어디서든 칭찬받고 싶길 원하는 그 같잖은 마음이었다.
학교에서 늘 칭찬만 받고 싶었다. 내 행동과 말, 성적 등 많은 것들을 통제하며 자랐다. 그런 내가 ADHD 아이를 만났으니 통제되지 않는 것에서 오는 엄청난 공포를 맛보고 있다. 왜 내 맘대로 안 되는 것들에 나는 화가 날까?
서울의 유명 학군지에서 자녀를 의대를 보낸 엄마가 운영하는 오픈채팅방에 들어간 적이 있다. 세모의 나이가 6살이었다. 그 방에는 5살부터 영어유치원을 다니는 아이, 7세에 열심히 레테(레벨테스트)를 보러 다니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오갔다. 물론 그 채팅방에 정작 이야기의 대상이 되는 아이들은 없었다. 모두 엄마들. 의대를 보내고 싶어 유치원 때부터 관리해 주러 모인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 채팅방에 대략 7일 있었다. 그 7일 간 나는 잠을 자지 못했다. 새벽에도 오가는 채팅방 정보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은 알까? 엄마들이 이렇게 자신의 20년 후의 미래를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그 채팅방에 있는 동안 난 세모에게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과학 인강을 보여줬다. 열심히 수학 문제집을 골랐다. 갖태어난 둘째를 업고 인강에 집중하지 않는 세모에게 다 보고 나서 저녁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7일째 되는 날, 나는 그 방을 도망 나왔다. 세모의 ADHD 증상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땐 ADHD인 줄도 몰랐다.
그 채팅방에 들어가 있는 동안 나는 나 자신의 허영심의 끝을 봤다.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정보왕, 내 아이는 의대 준비하는 유치원생이었다. 아무 목적의식도 없었다. 세모가 하루의 일상을 잘 지내고 있는지 들여다보기보다 채팅방에 빠져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필체가 고른 아이들이 쓴 영어 일기를 보며 세모에게 실망했다.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는 엄마였다. 사실 내가 비교한 건 세모와 다른 아이들이 아니라 얼굴도 모르는 엄마들과 엄마라는 나 자신이었다. 나 자신을 그곳에 밀어 넣어 스스로를 저울에 올려 누가 누가 잘하나 비교하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니 ADHD 아이를 키우면서 나 자신의 가시들을 마주한다. 잘해야 인정받는다는 인정욕구라는 가시 하나, 내가 많은 것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함 가시 하나, 공부-대학-취업-결혼이 삶의 성공 공식이라고 여겼던 편견의 가시 하나.
아이들이 기어코 들춰내는 나의 바닥.
마주하면 아프지만 마주하고 나서야 뽑아낼 수 있다.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깊이 꽂혀있나
며칠이고 몇 달이고 들여다본다.
그래야만 아프지 않게 뽑을 수 있다.
아직도 열심히 바라보고 뽑는 중이다.
아이들 덕분에
나는 세상이 더 편해졌다.
아이들 덕분에
이렇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