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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펄미 Apr 30. 2024

이것도 공부라고?

세뇌의 비법 3. - 그럴듯한 이유 갖다 붙이기.

 사이비 종교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들이 피해자들에게 사기를 쳐 금품 갈취, 납치, 성폭행 등의 범죄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들이 '사기'를 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절대로 피해자들에게 본 목적을 드러내지 않는다. "네가 거지가 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고, 한 푼도 빠짐없이 전 재산을 다 나한테 갖다 바쳐라." 또는 "네 젊고 예쁜 육체로 내 하룻밤 욕정을 채워다오."라고 얘기한다면 누가 그 말에 "알겠습니다, 교주님." 하고 돈과 몸을 갖다 바칠까?


 피해자들이 사이비 종교에 속아 모든 걸 갖다 바치는 이유는 그들이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 붙이기 때문이다. 가령 조상님을 달래기 위해 제사를 지내야 한다던가, 구원을 받기 위해 정성을 보여야 된다던가 하는 이유로 말이다. 실제로는 그 돈이 신이 아닌 교주의 주머니에 들어가는데도 말이다. 성폭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적인 힘으로 치료를 한다는 둥,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둥, 네가 하나님의 신부라는 둥 갖다 붙이는 이유도 참 다양하다. 이 모든 건 처음엔 납득 가능할 만한 아주 작은 것으로 시작했다가 피해자의 믿음이 커질수록 점점 범행도 대담해져 간다. 처음에는 몇십 만원씩 뜯던 것이 나중에는 전재산이 되고, 가볍게 어깨를 터치하던 것이 성폭행이 되는 것이다.


 나도 비슷한 과정을 통해 J선생에게 노동 착취를 당했다. J선생이 처음 갖다 붙인 이유는 바로 이거였다.


 "이런 것도 다 공부야."


 처음 시작은 내가 중학생 때였다. J선생의 화실에는 우리 외에도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 애들도 많이 다녔는데, 본인이 몸이 안 좋다며 우리 보고 대신 애들 그림을 봐주라고 했다. 이런 것도 공부라는 말에 처음에는 납득이 갔다. 실제로 학교 공부를 할 때에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친구한테 과외하듯이 가르쳐주면 머리에 더 쏙쏙 잘 들어오고, 한 번 더 정리가 되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핀터레스트 이미지


 물론 한두 번 정도는 정말로 그림 공부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그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본인이 몸이 안 좋다며, 그다음에는 외출을 해야 한다며, 또 그다음에는 한숨 자야겠다며 우리에게 애들을 맡긴다. 이걸 이미 공부의 일종이라고 받아들인 나는, 이게 잘못된 건 줄도 모르고 내 시간을 써가며 공짜 강사가 되어간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거의 모든 초등학생 애들을 우리가 가르쳤을 정도로 심해졌었다. 아마 그 당시 J선생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돈 벌기 진짜 쉽네. 개꿀!'


 문제는 이미 공짜로 노동 착취 당하는 데에 익숙해진 터라 J선생이 점점 말도 안 되는 걸 요구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 있다.


 "이번에 OO초등학교 불조심 포스터 대회가 있으니까 펄미 네가 애들 포스터를 맡아라. 우리 화실에서 수상자가 많이 나와야 우리 화실의 위상이 사는 거다."


 우리 화실이 잘 되기를 바랬던 난 당연히 내가 J선생의 제자로서 그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그림도 제쳐두고 화실 애들의 포스터 수십 개를 서로 겹치지 않는 내용으로 공장처럼 찍어낸다. '문구는 참신하면서도 색칠은 깔끔하게, 대신 그려준 티는 나면 안 될 것!' 이 원칙을 지키면서 여러 개 그려내느라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게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은가?불조심, 환경보호, 어버이날 등등 각종 행사 때마다 매년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그것도 2~3곳의 학교를 전부 담당해야 하니 내 손에서 탄생한 포스터가 과연 몇 장이었을 것 같은가?


 그 외에 더 말도 안 되는 것도 많았다. J선생 큰아들의 수학 과외를 해주고, 국어 숙제를 도와주고, 과학의 날 행글라이더 만들기까지 내가 해줘야 했다. 둘째 아들에게는 덧셈, 뺄셈을 가르쳐주고 보모 역할까지 해야 했다. 이유는 항상 뭐든지 갖다 붙인다. 네가 제일 수학을 잘 하니까, 네가 손재주가 좋으니까, 우리 OO이가 네 말을 잘 들으니까.


 제일 황당했던 것 중에 하나는 부활절 달걀을 만들었던 일이다. J선생 큰아들의 반에 부활절 달걀을 나눠준다면서 새벽 4시까지 계란에 그림을 그리게 했다. 본인은 들어가서 쳐 자면서 말이다. 다 그리고 나면 맛있는 칼국수를 해준다고 했지만, 돌아온 건 귀찮은 표정으로 끓인 소금 칼국수였다. 말 그대로 소금물에 칼국수 면만 넣은 '소금 칼국수' 말이다. 새벽 4시까지 화실에 있는데 부모님이 항의를 안 하는 게 신기하지 않은가? J선생은 그것까지 예상했는지 항상 선수를 쳤다. 부활절 계란을 그렸던 날, J선생이 엄마들에게 직접 전화해서 이렇게 얘기했다.


 "어머님, 오늘은 제가 애들한테 특별 교육을 할 게 있어서요. 오늘만 조금 늦게까지 하고 화실에서 재우도록 하겠습니다."


 J선생에게 이와 같은 노동착취를 당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반항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이것이 모두 공부이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여진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아무리 부당한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난 사이비 종교에 빠져 돈과 몸을 바치는 피해자들을 무작정 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된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 한 가지. 위에 나열한 노동착취의 사례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J선생의 만행이 내 글에 담기게 될지 궁금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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