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이따금 내비치는 흐린 날씨, 뉴욕 시내 공중에서 걷고 있다. 높은 빌딩들 사이에 놓인 긴 하인라인 파크를 산책 중이다. 한국은 새벽 3시라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시차 적응에 이만한 게 없다.’는 생각에 지금 낮이라고 스스로 세뇌시킨다. 그러나 점점 퀭한 눈이 되어간다.
찍은 사진을 보니 긴 여정의 피곤함을 도저히 숨길 수 없다. 사진 속 남편은 웃는 건지 찡그린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이다. ‘졸림과 피곤함이 좋은 기분을 이기도록 놔둘 수는 없지!’라고 생각하며 걸었다. 산책로의 출구가 보인다. 이 길을 충분히 즐기지는 못했어도 줄지어 놓인 벤치가 언제든지 쉴 수 있다는 ‘안정감’을 주어 피곤함을 덜어줬다.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뉴욕점을 찾아갔다. 엉뚱한 방향으로 가려는 남편을 시간이 얼마 없어 팔짱을 끼고 끌었다. 들어가자마자, 굿즈 판매대로 직진해 아이들 선물부터 챙겼다. 깔끔해 보이는 머그잔 2개와 우리 집 장식용에 좋을 컵 세트로 정했다. 이 지점에만 있는 것들이다. 이젠 커피를 음미할 차례구나.
이곳도 닉네임을 부르는 것이 재밌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1잔을 주문하고 발음하기 쉬운 내 이름을 알려 주었다. 곧 로스팅하여 줄 것이다. 나오는 커피가 우리 것 같아 확인하니 맞다. 눈치 빠르게 픽업했지만,'내 이름을 못 들은 것은 좀 아쉽네...'
난 동작이 어떨 땐 너무 빠르다. 여행지에서 ‘느긋함’을 키우고 싶다. 예전과 달리, 나는 소신껏 선택하고 사는 편이다. 살아보니 때때로 그것을 잊고 있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어정쩡한 태도를 싫어하는 ‘나’를 풀어, 선택지 중간에 그냥 멈춰 있어도 별일 없을 텐데 말이다.
‘특이하네!’ 남편에게 “얼른 마셔 봐. 신기해.” 유난 떨며 컵을 건넸다. 이 맛과 느낌을 내 문장력으로 표현하기에 역부족인가. “분명히 아이스 아메리카노인데, 딱 첫 느낌이 걸쭉했어. 근데 쓰진 않더라고. 농축된 것 같으면서 맑아.”라고 딸아이에게 톡을 했다.
“어떻게 그게 걸쭉해요?”라고 반응한다. 그 후 설명은 포기했다. 그 맛을 이 엄마 아빠가 봤다니까. 언제 또 올지 모르는 바로 이곳에서 마신 인상 깊은 커피 맛, 그 독특함은 뇌리에 정확하게 남아 있다. 경험은 진실이다.
가본 자와 가보지 않은 자, 맛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알기 위해, 다른 세계에 속해보려고 떠나는 것이 아닐까? 하나를 알수록 더 알고 싶어 진다. 여행은 불확실한 세계에서 예측이 안 되는 인생을 배우기도 한다.
뉴욕의 상징, 자유의 여신상에 가까이 가는 유람선 좌석에 다행히 자리를 잡았다. 늦게 탄 유람객들은 난간으로 안내되었다. 탁 트여 시원스러웠던 시야가 그들의 등으로 가려 답답하다. 배는 영화로 유명한 덤보브릿지 아래로 지나간다. 마음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 앞 쪽 난간으로 옮겼다. 역시나 소신이 발한다. ‘내 여행이기에 내 선택은 자유다!’
유람선 투어-자유의 여신상 보며 달리는 중
그곳은 주로 젊은이들이 기대어 있다. 틈새 공간에 한 손을 넣어 난간을 꼭 잡고 경치를 구경했다. 저 멀리 여신상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투어 전에는 흔하게 사진으로 봐와서 별 흥미가 없었는데, 직접 실물을 보니 약간 흥분이 된다. 아주 조그맣게 보여도 아우라가 있다. 서있던 자리의 틈이 어느새 넓어져 ‘내 자리’가 만들어졌다.
덤보브릿지(왼쪽), 가까워진 자유의 여신상(오른쪽)
한국 출발 전부터 기대한 모마 현대미술관과 뉴욕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원 월드 전망대’에 갈 예정이다. 가는 길에 뉴욕 증권거래소의 상징인 커다란 ‘황소동상’의 뿔에 대롱거리며 매달렸다. “우리 돈 많이 벌게 해 줘.”라며.
전망대로 다가갈 때 이미 뉴욕 마천루의 웅장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단순히 인공 건물의 빌딩숲 같지가 않네.’ 직접 보니 도시가 화려한 또 하나의 예술품 같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쉬워 이리저리 옮기며 보고 또 보았다. 남편이 이제 내려가야 한다니 그 말이 서운하기까지 하다.
교사의 설명을 질서 있게 듣고 있는 견학 온 학생들 사이를 지나가는데, 미안한 듯 얼른 비켜주는 아이들이 이쁘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의 인격을 존중해 주는 어른들에게 배운 대로, 본받은 것이리라. 어른, 아니 ‘사람에게 보인 작은 배려’는 동양의 ‘예의’ 그 이상으로 느껴진다. 아이들이 ‘당신의 공간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모마 현대미술관에 우리가 알만한 많은 화가들의 작품들이 이곳에 있다고 한다. 가장 좋아하는 화가, 모네의 작품을 찾았다. 대형 회화 작품인 <수련> 연작은 멀리서 보일 때부터 두근거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미술 감상을 늘 정면에 서서 지긋이 진지하게 바라보기만 해왔구나.' 그러나 앉아서도 보고 걸어가면서도 돌아보는, 내 일상 시간의 한 부분으로 스며들게 하고 싶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겨우 찾아냈다. 생각보다 화폭이 작다. 저절로 가까이 가게 된다. 고갱과 다툰 후 귀를 자른 사건으로 병원에 감금된 상태에서 자유시간에 그린 그림이다. 회오리 모양의 붓터치는 볼 때마다 특이하다. 구름 같기도 하고 바람 같기도 하다. 감상하며 고흐의 마음을 알아주려고 애썼다.
이제 어느 쪽으로 갈까 두리번거리다 멈칫했다. <우체부 조셉 롤랭의 초상화>다. 사진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한 눈동자의 따뜻한 빛을 보았다. 따뜻함에도 강도가 있는 것일까? 푸근하고 선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다! 온화한데 강렬하다. 눈 부분을 간직하려고 클로즈업해서 한 번 더 찍었다. 반 고흐에게 편지를 배달해 주며 가깝게 지낸 우체부라고 한다.
고흐가 얼마나 그를 좋아했는지, 그의 인간미를 표현하려고 정성을 얼마나 기울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맑은 영혼의 소유자, 빈센트 자신의 선함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고흐의 또 다른 자화상’이라 여기기로 했다. 이어 다른 많은 화가의 작품을 둘러보고 나왔다. 내 머릿속에는 그 눈빛만 내내 맴돈다.
별이 빛나는 밤(왼쪽),
어스름해질 무렵, 우리를 태운 버스는 숙소가 있는 뉴저지주를 향해 달리고 있다. 차창으로 뉴욕의 퇴근길모습을 구경했다. 두 번째로 가는 길이라 그런지 벌써 익숙하다. 뉴욕이 초면인 나, 조금씩 환대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