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티드 살롱 후기
내가 속한 조직 내에서 들어오는 인풋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나에게는 그 순간이 작년 12월이었는데, 그 '무언가'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스스로도 딱 잘라 정의하기 어려워서 나에게 답을 줄 것만 같은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찾았다. 프로덕트 매니저, 서비스 기획이라는 커리어 패스에서 레퍼런스 삼을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고(나 혼자만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까), 어딘가 답답한 이 마음을 같이 나누고 해소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찾고 싶었다.
직장인의 오프라인 네트워킹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는데 그 중에서 평소 눈여겨보던 wanted의 커리어 이벤트 중 2022년 회고 모임을 신청해서 다녀왔다. 강연이나 컨퍼런스가 아닌 오직 네트워킹만을 위한 네트워킹 자리는 처음이었는데(게다가 유료인!) 느낀 바가 있어 기록해 본다.
원티드는 이미 여러 차례 정기 살롱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신청과 운영방식이 체계적이었다(신청 후, 최종으로 대상자로 선정되어야 참여할 수 있다). 실제로 본인 회사에서도 사내 네트워킹 행사를 기획하고 있는데, 참고 삼기 위해 살롱 이벤트에 참여했다는 분도 있었다.
내가 느낀 점을 몇 가지 포인트로 솔직하게 정리해 본다.
1. '네트워킹을 위한 네트워킹' 자리에 참여하려는 사람이라면, 내가 무엇을 목적으로 참여하는지 명확해야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단순히 '나도 네트워킹 해야 할 것만 같아서' 참여한다면, 생각보다 허무할 수 있다.
1-1. 실제로 같은 조원들 간 라포를 형성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3시간이라는 네트워킹 시간이 턱없이 짧게 느껴져서 아쉬웠다.
2. 각자 자신이 사전에 선택한 '직군' 혹은 '연차별' 테이블로 배정받아서 한 조를 이루었는데, 나는 서비스 기획/PM 직군을 선택해서 같은 직군끼리 모였다. 서로 다른 규모와 환경에서 일하는 기획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었다(게다가 연차도 다양해서 더욱 좋았다). 그렇지만 대부분 스타트업이나 소규모 기업에 재직하는 케이스여서, 나와는 상황이 달라 깊은 공감대까지 공유하기는 다소 어려웠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다음에 참여하게 된다면, 전체 직군을 대상으로 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프로덕트 매니저 직군만 참여하는 이벤트에 참여하는 게 내 목표 달성에 더 적합할 것 같다.
3. 원티드의 살롱 이벤트는 재참여하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조의 리더 역할을 맡은 분들은 이미 여러 차례 살롱 이벤트에 참여한 경우가 많았고 운영진과도 구면인 듯 했다. 조원들 중에서도 서로를 알아보고 반가워하시는 분들의 비율이 체감하기로는 꽤 높아서, 처음 참여한 사람으로서는 그 사이에서 살짝 어색함을 느꼈다(물론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3-1. 자유 네트워킹 시간에 인사를 나눈 어떤 분은 '원티드 살롱에 개인적으로 감사함을 느낀다'라고 표현하셨는데, 원티드라는 브랜드가 이렇게 팬덤까지 형성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4. (PM 커리어 패스에 도움을 받고 싶다는 나의 목표와는 잘 맞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오랜만에 다양한 직군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특히 원티드가 구인/구직 플랫폼인 만큼 HR 직군의 참여도가 높다고 느껴졌다. 게다가 HR은 직무 특성상 회사 내부의 타 직무 사람들과 업무 관련 고충을 나누기 더욱 어렵고, 다른 회사의 정보나 프로세스에 접근하기도 어려운 것을 생각하면, HR 담당자들이 바로 이런 오프라인 네트워킹에 큰 니즈를 가진 핵심 세그먼트가 아닐까 한다.
5. 내가 네트워킹을 통해 나에게 인사이트를 주는 멋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좋은 인맥'을 형성하고 싶어 한다. 결국 네트워킹이라는 것도 내가 잘 되어 있을 때 시너지를 발휘하는 것이지, 내가 남에게 아무 유용도 제공할 수 없는 시기에 참여한다면 크게 소득이 없을 수도 있다.
6. 실제로 원티드의 사무실 라운지에서 이벤트가 진행된다(그래서인지 왠지 집 같고 따뜻한 분위기였다). 네트워킹 종료 후 사무실 안쪽까지 구경시켜 주기도 했다. 남의 사무실에서 음식을 먹고 네트워킹 이벤트를 한다는 게 생경했지만 특별한 경험이었다. 더 많은 회사의 업무 분위기를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트워킹이 끝나고 만났던 사람들의 명함을 정리하는데 문득, 즐거웠지만 사실 나와는 그렇게까지 잘 맞지는 않는 자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사람에 따라 정말 다른 경험일 수 있다).
네트워킹에 깊이와 너비라는 두 가지 축이 있다면 1회성 네트워킹에서 깊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1회성 네트워킹은 가벼운 기분전환이나 환기를 위해서는 꽤 좋은 방법일 것 같지만, 나처럼 깊은 인간관계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허무하게 느낄 수도 있는 방법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충분히 인간적인 호감을 갖게 된 분들도 여럿 있었는데('와, 이 분 성격 너무 좋다!' 같은), 왜인지 문자를 보내고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더 해 보자는 등의 행동을 취하기가 어렵게 느껴졌다.
그래, 이렇게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면서 나에 대해서 더 알아가는 거지. 올해는 정말 대학원에 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