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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비축기지 Sep 19. 2023

바르셀로나구엘 공원

자연이고 싶었던 가우디의 유산

안토니 가우디의 예술은 어디에도 끼워 넣을 수 없을 만큼 독창적이고 독보적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자연을, 그것도 태초의 자연을 깊이 탐구했다는 사실이다. 가우디의 자연주의는 자연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내재한 자연을 이끌어낸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는 자연이고 싶어 했던 것 같다.




해마다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구엘 공원을 살펴보면 태초의 지구와 그 지구 위를 천천히, 그러나 어설픈 동작으로 살아가던 거대한 공룡을 떠올리게 된다. 가우디는 공룡에게 지구를 되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구엘 공원은 물론, 그의 다른 건축물에서도 공룡의 뼈, 공룡의 비늘, 공룡의 꼬리, 공룡의 다리, 공룡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 진입 공간의 거대한 계단을 오색 피부의 공룡이 지키고 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타원형 광장이 나오는데, 이 거대한 광장은 86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공중 광장이다. 광장 한쪽 가장자리에 난간 대신 타일 벤치를 설치했다. 110m 길이의 용이 구불거리는 듯한 이 벤치는 구엘 공원의 상징이다.

그러나 진정한 공룡의 움직임은 동쪽 사면을 오르는 독특한 동선에서 드러난다. 구엘 공원 정상에 오르려면 약 70m의 높이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 계단을 만들 수도 있었으나 가우디는 여러 번 크게 방향을 틀며 돌아가는 고가 교량으로 디자인했다. 비아둑테Viaducte라고 하는 이 동선은 3km에 달하며 상층에는 차량이, 하부에는 사람이 다니도록 고안했다. 대형 흙기둥이 비스듬히 열 지어 서서 이마로 상층을 받치고 하층에는 시원한 터널을 만들어준다. 이 흙기둥은 흙으로 범벅된 공룡의 다리만큼 육중하다. 그 사이를 걸으면 공룡의 다리 사이를 걷는 것 같은 스릴이 느껴진다. 공중에서 내려다보아야 짙은 숲속을 힘겹게 올라가는 공룡의 꿈틀거림을 한눈에 인지할 수 있는 가우디의 삼단 비아둑테는 구엘 공원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가우디의 예술에 심취하다 보면 문득 구엘 공원이 밀림을 방불케 하는 깊은 숲임을 잊기 쉽다. 이 많은 나무를 가우디가 심었을까? 아니면 본래 숲이 이렇게 우거져 있었을까? 둘 다 아니다(가우디가 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지만 당연히 심었을 것이다). 땅의 소유주이며 가우디의 각별한 후원가였던 구엘이 야자나무를 좋아했다고 하니 구엘 공원의 야자나무는 구엘의 의도였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재 공원을 뒤덮고 있는 숲은 바르셀로나시의 작품이다. 구엘 공원이 자리 잡은 곳은 원래 민둥산이었다. 오래전 농부들이 올리브나무도 심고 포도나무도 심어보았으나 땅이 너무 척박해 하나둘 밭을 버리고 떠났다. 오래 방치되었던 땅을 1900년, 바르셀로나 최고 갑부였다던 사업가 구엘이 구입해 고급 주택지로 개발하고자 했다. 당시 산업혁명 이후 도시가 팽창하다 못해 터질 지경이었고 도심의 위생 문제가 심각했다. 

구엘은 부유층 60세대를 위해 한적한 곳에 튼튼한 고급 주택을 짓기로 하고 가우디에게 디자인을 의뢰했다. 도시, 조경, 건축을 모두 아우르는 종합예술 작품을 의뢰한 것이다. 가우디는 우선 높은 담장을 치고 이곳이 안전한 별세계임을 과시하며 기다렸으나 필지는 단 하나만 팔렸다. 입주 조건이 까다로워서 그랬다는 설도 있고 가우디가 전차 노선 연결을 극구 반대해서 그렇다는 설도 있다. 이에 구엘과 가우디가 입주해 단 세 세대만 살게 되었다. 주택단지를 처음부터 파크라 이름한 것은 영국의 전원도시 운동에서 영감을 받은 까닭이라고 한다. 그것이 후일 진짜 파크, 즉 시민 공원이 되리라고는 본인들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1921년 시에서 이곳을 구매해 공원으로 개방했다. 이후 무수히 많은 나무를 심었다. 올리브나무, 우산소나무, 알레포소나무, 아몬드나무 등 약 32종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민둥산이던 시절, 뜨거운 돌 사이를 스치는 도마뱀과 곤충이 동물의 전부였으나 지금은 25종이 넘는 새가 깃들여 관광객에게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주고 있다.


고정희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 아카데미 대표 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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