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도 이미지를 활용해 관람자가 몰입하도록 이끄는 VR과 평면에 프로젝션하는 영화. 이 둘은 얼핏보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감독은 최선을 다해 자신이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갖은 수를 쓴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슬픈 장면은 최대한 클리셰를 끌어다가 눈물나도록 만들고, 공포를 느껴야만 하는 장면은 점프컷을 이용한다. 영화에서 관객은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와 상호작용할 수 없다. VR은 영화와 다르다. VR은 관람자가 스스로 눈을 굴려 상황을 판단하고 리모컨을 매개로 움직이고 상호작용할 수 있다. 이 과정은 감독은 관람자를 강제할 수 없는 구조다.
영화는 인간의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영화는 그 시대에 맞는 기술을 영화 안에 도입하고자 한다. 관객을 완전히 상황에 몰입시키는 VR은 인간의 재현욕망이 탄생시킨 양날의 검일 수도 있다. 이번 전주컨퍼런스 세션7에서는 VR과 영화를 비교하고 VR이 지금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몰입형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는 두 가지의 다큐멘터리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러티브를 제공하지 않고 몽타주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관객은 화면에서 멀리 떨어져 그 이야기를 평가하고 이야기하게 하는 다큐멘터리. 그리고 개인의 내러티브를 따라가 관객이 그것에 완전히 동화되어 공감을 이끌어내고 행동하게 하는 다큐멘터리, 이것에는 감독에 따라 다르겠지만 관객이 더욱 몰입하기 위해 화자를 더욱 타자화시키고 대상화시키곤 한다. 심지어는 어떤 특수한 상황에 화자를 밀어넣기도 한다. 같은 이야기를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감독이 소격효과 혹은 몰입 중에 원하는 것에 따라 전개를 달리 한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몰입형 다큐멘터리, 주로 자연다큐멘터리에서 취하고 있는 VR을 활용한 다큐멘터리를 소개했다. 국제 동물권 옹호 단체인 애니멀 이퀄리티Animal Equality의 공장식 축산을 비판하는 세 편의 360도 비디오 시리즈인 ‘아이애니멀iAnimal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이 VR을 선택한 이유는 같은 인간이 아닌 동물같은 경우는 소통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동물이 받은 피해와 고통은 인간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뿐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동물권 단체들은 동물이 흘리는 눈물과 고통을 최대한 관객에게 그들이 느끼는 것과 가깝게 전달하기 위해서, 그 장소로 관객을 부르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인간이 동물을 위해 만든 잔인한 세계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다. 시청자의 극도의 감정 이입 경험은 이 삶들을 바꾸고 구할 것이다.‘ 이 문장은 그들이 인간의 고통을 역설적으로 바라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VR을 통해서 인간은 공장식 축사에 들어간다. 사용자는 축사를 둘러볼 수 있으나 이 시스템을 벗어날 수 없다. 유일한 방식은 눈을 감는 것 뿐이다. 인간은 이 영상을 통해 무력감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신체가 무시되는 경험인 것이다. 하지만 VR이 구성하는 공간은 어떤 표상으로 작동한다. 애니멀 이퀄리티에서 구성한 ’축사‘라는 표상은 고통과 무자비의 의미로 작동하고 있다. 만일 이 비윤리적인 축사에서 인간이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지금 잠깐의 무력감을 지우고 죄책감을 덜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지, 그 표상 너머에 진짜 실제에는 닿을 수 없다.
시각과 감각
VR이 간단히 인간의 스펙타클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인간의 다양한 체험과 감각을 일깨우는 흥미로운 기계라고 진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흥미로운 볼 것리를 제공하는 것을 초과하고 있었다. 서현석 발제자의 ‘미라의 아우라(에 대한 열 개의 모듈 관점)은 VR이 발명되기 이전의 연구자들의 관점에서 VR을 진단한다. 그 중 흥미로운 부분은 ’바르트의 관점‘과 ’리커의 관점‘, ’물리뉴 혹은 시각장애인‘의 관점이었는데, 이 세가지 관점 모두 VR이 신체와 매개되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아주 음모스럽겠지만, VR은 그 시대의 가치관과 이데올로기를 가시화하기 위해 고안되었을 수도 있고 또 인간의 신체(뇌)를 통해 모두 연결되어 있는 시각과 감각, 이성이라는 것을 모두 분리하는 사고실험을 진행하고 있을 수도 있다.
VR에 푹 젖어 다양한 가상세계를 탐구하는 것도 물론 좋은 사유 방식일 것이다. 그렇게해서 문화이론을 탐구하는 것도 세상에 이로울 것이고 하지만 그것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관점에서 VR을 해석하여 한 발자국 멀어지고 이것이 어떤 이상 행위와 이상효과를 낳는지 지켜봐야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