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set
제주 시내버스를 타는 게 익숙해질 때쯤 제주도 여기저기로 서핑을 다니기 시작했다. 여느 주말같이 서핑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급행 버스 안이었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우연히 창밖을 내다봤는데 주황과 분홍 중간 어디쯤 될 것 같은 색의 노을이 피어있었다. 그동안 바다 위에서 봤던 노을과 색부터 달랐다. 후로 파도가 없어 서핑을 못하는 날이면 일몰 사냥을 떠났다.
서귀포시의 법환포구, 외돌개, 성산, 섭지코지에서 제주시의 월정, 함덕, 이호테우, 애월, 한림 그리고 몇 개의 오름까지. 어떤 날은 구름 없이 맑아 노을이 넓게 넓게 드리웠고, 어떤 날은 적당한 구름에 노을이 수채화 같았고, 어떤 날은 많은 구름에 노을이 마저 번지지도 못한 채 어두워졌다. 그리고 가장 최근 제주에서 가장 멋진 일몰을 사냥했다.
처음에는 타는 듯이 일자로 길게 뻗은 이차선 도로를 달궜다. 해변으로 걸아가 돌아봤을 때는 시골길 가로등 색 조명이 되어 웨딩사진을 찍는 몇몇 신혼부부를 비췄다. 신부의 면사포와 드레스의 끝자락에 스며들어 파도와 함께 펄럭였다. 마지막에는 오징어 등 켜진 배에, 바다 앞 작은 횟집 손님들의 소주잔에 잠깐 들렀다 남색 하늘에 눌리듯 아래로 사라졌다.
제주의 서쪽에서 만났던 일몰은 주인공이었다. 조금씩 작아지는 해에 사람들은 눈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본 가장 최고의 일몰은 동쪽 가까운 곳에서 만났고 조연이었다. 특유의 색으로 주변을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 이차선 도로에게, 신혼부부에게, 오징어 등 달린 배에게 그리고 횟집 손님들의 소주잔에게 주인공을 양보했다. 동쪽 조연이 함계한 장면들은 전부 따뜻하게 빛났다. 대놓고 나서지도 그렇다고 존재감 없지도 않게.
나는 그 멋졌던 조연을 김녕에서 만났다. 일출은 동쪽, 일몰은 서쪽이라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색다른 풍경을 마주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