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nguevara Nov 05. 2022

다시, 튀르키예

파랄리아에서 알른자

하루 종일 내리는 비로 호텔에 발이 묶였다. 절벽 구간이 많은 길의 특성상 하루는 어쩔 수 없이 쉬어가야 했다. 뒤쳐졌다는 생각은 이른 아침부터 리키안 웨이를 걷게 했다. 호텔에서 나와 얼마 걷지 않아 끝없는 오르막을 시작됐다. 턱까지 차오르는 숨에 어깨까지 들썩거렸고 하루 걸러 다시 멘 배낭은 더 무겁게 느껴졌다. 처음 한 시간은 도로 구석으로 걸어야 했는데 오르막도 오르막이지만 큰 트럭들이 오가는 통에 위험했다. 그래서 산으로 이어지는 다른 루트로 걸어가기로 했다. 산속을 걷는 루트는 굽이져서 도로로 가는 루트보다 더 걸어야 했지만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는 나무들 덕에 조금은 시원하게 걸을 수 있었다. 걷다가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나무들 사이로 하늘빛 지중해가 빼꼼거렸다. 두어 번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고 넓게 뻗은 평지가 보였다. 평지 위로 첫걸음을 내딛자마자 바다 바람이 뺨을 만졌다. 나지막이 제 멋대로 자란 풀들 너머로 넓게 누운 지중해와 기둥에 칠해진 리키안 웨이 표시를 보며 걸었다.


튀르키예 남부에는 멋진 해변이 너무 많다. 아이보리 색으로 깔린 모래와 극단적으로 하늘빛인 지중해 바다는 볼 때마다 내 감수성을 쥐락펴락하며 감동하게 했다. 다소 우울한 날에는 날 위로하는 듯, 다소 기쁜 날에는 더 신나게 춤추는 듯했다. 그래서 이 리키안 웨이가 더 재미있는 걸지도 모른다. 언제나 고대하던 지중해를 반려견처럼 끼고 걷는 기분 그리고 언제라도 뛰어들 수 있을 만큼 바다가 가깝다는 사실은 따가운 햇볕도 견디게 해 줬다.

평평한 평지를 걸어 도착한 곳은 카박 해변이었다. 파도 가장 가까운 자리에 배낭을 내려놓고 숨을 돌렸다. 해변 주위에는 지난 며칠과 다르게 나와 같은 모습으로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뒤통수까지 올라온 배낭을 그늘 삼아 걷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굵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네다섯 명의 여행자를 보내고 다시 발을 뗐다. 내 키 만한 나무들을 헤치고 걷다가 돌로 쌓아 만든 계단이 길게 펼쳐졌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배낭이 점점 무거워지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 점점 따가워지는 햇빛은 시원하게 들고 온 물을 금세 미지근하게 만들었고 아이보리색 절벽에 반사되어 미간일 구기게 했다. 그렇게 1시간쯤 걸어서 view point라고 쓰인 아담한 간판을 보고 10분쯤 더 걸었을 때 카박 해변을 액자에 넣은 듯한 풍경을 볼 수 있는 바위가 보였다. 그리고 그 풍경을 친구 삼아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점심 메뉴는 호텔의 주방장 이브라힘이 손수 싸준 샌드위치였다.

"이브라힘 잘 있어. 어제 걷지 못해서 오늘 빨리 출발해야 해."

"아침식사는?"

"시간이 없어."

"잠깐 5분만 기다려줘."

이내 이브라힘은 싱싱한 토마토와 오이, 치즈가 듬뿍 들어간 커다란 샌드위치와 물을 들고 나왔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적어도 한 사람. 진심으로 나의 길을 응원하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이른 아침부터 힘이 났다. 그리고 이브라힘이 준 샌드위치는 카박 해변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내 마음도, 허기짐도 가득 채워줬다. 세상 가장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고 또다시 걸었다. 이 후로는 쭉 좁은 숲길을 걸었는데 해를 피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신기한 건 걷는 중간중간 콜라와 물, 음료수들이 선반 위에 올려져 있고 작은 바구니와 몇 마디 글이 대충 찢은 박스 위에 쓰여 있었다. '돈은 바구니에 넣어주세요.' 그리고는 콜라는 얼마, 물은 얼마 가격이 적혀있었다. 바구니에 들어있는 돈들을 걱정하며 작은 무인 상점을 지나갔다. 끝날 줄 모르는 오르막은 그 자리에 드러눕고 싶게 만들었다. 흙길 사이로 울퉁불퉁 모나게 솟은 돌들에 발바닥이 아플 때쯤 인기척이 들렸다. 집을 수리하는 사람들이었다.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저 살아있는 거 맞죠?"

"그래 맞아. 아직 살아있어."

"좋은 오후 되세요!"

드디어 도착하기로 한 마을에 도착했다. 오늘 힘들게 오르막을 걸었던 만큼 하늘과 가까운 곳에 있었고 그곳에서 하루 캠핑하기로 했다. 캠핑을 위해 찾은 곳은 식당을 같이 하는 곳이었는데 그 식당 마당에 텐트를 칠 수 있었다. 정신없이 텐트를 치고 샤워를 하고 텐트 문을 활짝 열고 풍경을 봤다. 그때 알았다.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을 바라보며 잠들 수 있는지. 부지런히 움직인 덕에 이브라힘의 따뜻한 마음을, 오르막을 한참 오른 덕에 그림 같은 풍경을, 땀 흘려 친 텐트 덕에 소중한 것들을 되새기며 잠들 수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취중진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